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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 인연보다 애틋한 시절 장소

가슴에 품고 카르페디엠

by 미세스쏭작가

온 가족의 집합소였던 공원 놀이터가 있다.

"우리 거기야. 엄마 교회 옆 놀이터." 날이 좋으면 삼대가 약속이라도 한 듯 그곳으로 모였다. 아지트로 가는 길엔 필히 단골 분식집에 들렀다. 통통한 김밥 몇 줄을 사서 가족들에게 건네면 마음에 뜨뜻한 볕이 스몄다. 햇살이 쨍하게 비추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조카의 모습을 풍경 삼아 김밥을 먹으면 마음까지 불렀다. 최고의 소풍날이었다.


봄이 우거진 호수를 걸으며 우리 동네에 이렇게 예쁜 공원이 있어 좋단 말을 참 많이 했다. 땅에선 노란 별사탕 같은 개나리가 손바닥을 쫙 편 채 우릴 환영해 주었고 하늘엔 함박웃음을 띤 벚꽃들이 만연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자연 속에 녹아드는 일상은 최고의 호사였다. "영원히 지금만 같아라."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시간들이었다. 이토록 정겨운 장소에 최대한 오래, 모두 함께 머무를 수 있길 바랐고 그럴 것이라 믿었다.


시간은 바삐 흐르고 여동생 부부가 보금자리를 옮겼다. 부모님도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셨다. 누구보다도 우리의 아지트를 사랑했던 반려견 자두는 야속하게 하늘나라로 떠나 버렸다. 아지트를 홀로 찾거나 새 식구가 된 하임이와 걸을 때면 어김없이 마음이 뭉클하다.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시절 장소엔 다신 오지 않을 우리의 젊은 추억이 묻어 있다. 키가 큰 해바라기 옆에서 꽃보다 해사하게 웃던 엄마와 조카 담이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인다.

"하임아. 자두 언니가 여길 엄청 좋아했어. 저기가 엄마가 다니시던 교회야." 공허한 마음을 달래고자 하임이에게 말을 걸면 세상 물정 모르는 강아지는 얼른 똥이나 치우라고 한다. 자기를 안고 가라고 떼를 쓴다. 다른 곳도 가보자고 배를 깔고 엎드린다. 덕분에 외로울 틈은 없다.


시절 장소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라고 말한다. 한때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단골 가게와 공원과 카페를 구태여 다시 찾지 않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충실히 오늘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일까. 그 시절 우리를 안온하게 품어 준 장소를 생각하면 고맙고 애틋하고 정겹다. 언제 꺼내 보아도 시절 장소가 아름다운 이유는 장소가 아니라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음으로써 카르페디엠(carpe diem)은 현재 진행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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