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내가 되는 점심시간
전업주부 겸 글쓰기를 수입 없는 본업으로 삼다가 자발적으로 직장인이 되었다. 가족 모임이 있던 날 식탁에 모여 가족들과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훗날 나와 동업하여 창작활동을 하겠다는 조카 담이가 악의 없이 뼈 때리는 질문을 던졌다.
“이모 왜 작가 하다가 다시 직장인이 됐어요?” 곁에 있던 가족들은 일동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았다.
“음. 작가는 돈을 못 벌어서.” 거의 동시에 담이의 엄마 나의 둘째 여동생이 외쳤다. “이모가 작가 활동하면서 돈을 못 벌었어.” (넌 빠져 인마.) 담이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지금은요? 지금은 작가 때보다 돈을 잘 벌고 있어요?” 아니. 작가 때는 수업이 거의 없었다니까? 나는 나긋이 답했다. “응. 두 달 일하고 이 년 동안 작가 활동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이 벌었어.”
담이는 내가 작가이던 시절이 좋았다고 했다. 이모가 유치원 하원 버스도 기다려 주고 함께 그림 그리던 그때가 좋았다는 담이. 감수성이 풍부한 이모는 눈물을 글썽이며 답했다. “이모도 그때가 정말 좋았어. 나 직장 관두고 담이랑 놀까?” 일곱 살 조카의 대답은 칼 같았다. “아뇨. 그래도 돈은 계속 벌어야지.” 폭소를 터뜨리는 가족들의 대열에 나도 합류했다. 그래. 이모도 돈 버는 게 좋다.
일을 쉬는 동안의 글쓰기는 꿈길로 가는 동아줄이었다가 나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썩은 동아줄이 되기도 했다. 글을 향한 반응, 댓글, 조회수, 구독자 수에 따라 기뻤다가 슬퍼지는 스스로에게 신물이 났다. 글쓰기를 계속 사랑하기 위해서 안정적인 수입과 정서를 확보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난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어.’가 아닌,
‘난 내 진심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자신 있게 답하기 위해서 오히려 잠시 글과 멀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라고 늘 365일 내 가슴을 뛰게 할 수는 없다. 가슴이 뛰지 않는 일을 하면서 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삶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물론 워라밸이 좋은 직장이라 가능한 현실이다.
간단히 도시락을 싸 와서 빠르게 먹고 점심시간에 회사 도서관으로 가거나 사무실에 앉아 글을 쓴다. (같이 밥 먹을 동료가 없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이었다니 여태 몰랐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정갈한 도서관은 예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이다. 거대한 통창을 등진 노트북 좌석에 앉아 에세이를 쓰면 시간이 물 흐르듯 간다. 소중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만큼 글도 술술 써진다. 독서가 당기는 날엔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서서히 책장을 넘긴다.
요즘 나의 독서 친구는 깊은 바디감의 뜨거운 아메리카노이다. 예전에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못했다. 얼음을 가득 넣은 시원한 커피만을 선호했고 뜨거운 커피엔 전혀 기호가 없었다. 한 해가 바뀌니 얼죽아 찾다가 정말로 골로 가겠다 싶어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면 몸에 오한이 한 시간 이상 들면서 정신이 다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수족냉증이 도는 손을 엉덩이 밑에 깔고 덜덜 떨면서 다짐했다. 겨울엔 아아와 이별하자. 올해 마신 핫 아메리카노 잔 수가 평생 마셨던 뜨거운 커피의 양보다 더 많다.
마찬가지로 예전엔 못 했던 것이 또 하나 가능해졌다. 과거엔 일과 나를 분리하지 못했다. 일 잘하면 내 자아가 춤을 췄고 일에 실수를 범하면 나 스스로가 미웠다. 일에 대한 모든 평판이 나의 전유물이었고 일 자체가 나였다. 하지만 이젠 일과 나를 분리할 수 있게 됐다.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하면 월급 받으니까 당연히 제대로 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난관에 봉착하면 집중해서 해결하고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일과 글보다 나란 존재가 훨씬 더 중요하다. 꿈에 매이지 않기 위해 직장에 나가서 돈을 벌고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 사람을 살리는 작가 강사가 되겠다는 오랜 꿈을 서른 끝물에 정정했다. 나부터 즐겁고 평안해야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다들 똑똑하게 잘 살고 있으니 내 앞가늠이나 잘하고 볼 일이다. 황금 같은 직장인의 점심시간과 함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