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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B Apr 22. 2024

나의 꿈은 모험가

T에게 물었다.  "너는 꿈이 뭐야?" 그의 대답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답이었다.



모험가. 보트를 타고 이동하면서 세계를 볼 거야. 당장 내일 죽더라도 후회 없도록.




대답을 하며 환하게 나를 보며 웃는 T의 반짝 빛나는 눈이 마주치자 문득 교실 안 책상 앞에 긴장한 채로 서 있던 초등학교 5학년이던 내가 생각났다. 파란 하늘에 살짝 구름이 들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햇살이 빠져나와 창가에 앉은 책상을 살포시 비추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아이들 모두에게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지시한 일 외에는 특별할 것 없이 흔한 하루였다. 아쉽게도 그날 선생님의 특권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오늘은 14일이니 14번이 발표해."가 아니라, 1번부터 끝번호인 43번까지 차례대로 한 명씩 분명하게 자신의 꿈이 대해서 공유해야 했다.


나는 교우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부끄러웠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경상남도 통영으로 전학 갔다 3학년 여름에 다시 서울로 돌아온 후, 흐미하게 남은 사투리는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기 충분했다. 발표를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난 얼굴을 최대한 숙이고, 선생님과 눈빛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했다. 평상시라면 선생님이 날 지목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기라도 할 수 있었지만 이번은 피해 갈 수 없었다.


지금이야 꿈과 직업은 다른 거라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꿈이 뭐야?'라는 질문은 '네가 가지고 싶은 직업이 뭐야'와 같았다. 당대 최고의 인기 직업이었던 대통령과 선생님이 내 귀에 여러 번 들렸지만 그들의 발표는 그저 웅웅 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긴장하면 더 강해질 사투리 억양에 혹시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말할 단어를 쉴 새 없이 반복해 되새김 질 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발음이 세게 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말했다.


나는 모험가가 될 거야


아이들의 반응은 나의 예상과 달랐다. ‘가'가 한 옥타브가 올라가진 않았나, 긴장이 풀리기도 전에 질문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듣기만 하던 경청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엉뚱한 꿈에 묻혀 더 이상 관심사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게 뭐야'라는 반응부터 '모험가는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여행가를 잘못 알고 말한 거지?' 모험가에 대한 서술적인 발언까지 거침없이 늘어놓았다.



“나는 남들 다 하는 여행이 아니라 모험을 할 거야. 보통 사람들이 휴가로 여행가지 않는 장소로 갈 거거든. 그건 여행이 아니라 모험이야. 그러니까 난 여행가가 아니라 모험가가 되고 싶어.”



신기했다. 무려 약 삼십 년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꿈을 가진 이가 내가 열두 살 때 가지고 있던 반짝이는 눈으로 날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같은 꿈을 가진 T에게 대부분이 보여줬던 반응과 같이 속과 겉이 다른 대답을 할 필요는 없었다. “와, 재밌겠다.” 고 말하며 속으로는 ‘꿈이 참 크네. 현실에 치이다가 시작이나 하겠어.’로 끝나는 현실적인 답안말이다. 대신에 나는 흥분에 가득 차 소리를 질렀다. “뭐? 내 꿈이 모험가인데! 그래 하자!” 소리를 지르는 나의 모습이 우스웠던지 아니면 같이 하자는 나의 답변이 좋았던지 T는 하하 웃기 시작했다. 웃음은 전염이 된다는 말은 진리임이 틀림없다. 그의 웃음을 보고 나도 웃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꿈이 현실이 된 거 마냥 행복함과 기대감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마 그때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가 꿈으로만 생각하던 삶을 현실로 가져오기 시작한 순간이.


보트에 살기 시작한지 3년이 되어간다. 남들이 아무리 바보 같다 비웃을지라도 꿈을 꾸는 우리 모두에게 응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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