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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B May 12. 2024

자발이 아닌 강제 미니멀리스트입니다.

보트에 살면서 가장 큰 변화는 나를 미니멀리스트로 칭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딱히 사치를 하거나 소비가 크지 않았기에 한창 미니멀리스트가 트렌디하게 세상에 소개되었을 때 나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여기에 속하는 건가, 괜스레 뿌듯해했다. 하지만 보트에 살게 된 후로 미니멀리스트의 기준이 달라졌다. 이전보다 강압적이다. 모든 물건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고, 다른 물건에 비해 의미가 적으면 가치를 잃는다. 12미터의 작은 공간 안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아예 놓을 장소도 없으니. 이곳에서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거나 아니면 떠나거나, 두 가지 선택뿐이 없다. 아, 하나 더 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어질러진 장소에서 살거나.



보트로 이사를 결정한 건 2021년 봄이었다. 그전부터 이사 가는 날을 계속 이야기를 해왔지만 이번에는 두리뭉실하게 넘어가지 않고 11월 1일로 날짜까지 정했다. 육 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음에도 나는 벌써부터 초조해졌다.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집은 누가 봐도 물건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소에 정성을 들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혼을 하고 처음 캐나다에서 시작하는 홀로서기였다. 오롯이 나와 고양이들이 지낼 집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외롭고 우울해질 거라는 걱정이 들었던 나는 가구 하나하나에 며칠이고 고민해서 가장 만족스러운 물건으로 골랐다. 가구를 다 받기까지도 몇 달이 걸렸다. 꼭 필요한 물건이니 오래 사용할 거라는 기대감으로 부엌용품이나 작은 장식장에도 애정을 담아 구매했다. 이제야 내 소유가 되어 사용한 지 막 일 년이 지났을까, 모든 물건을 중고로 팔거나 기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법정 스님이 그렇게 외치시던 무소유를 삶의 방향으로 삼고, 그의 지혜를 얻기 위해 여러 번 책을 읽은 보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소중히 다뤘던 아이들을 보낼 생각을 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배를 타고 이 도시를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가꿔온 나의 성을 흔적도 없이 무너뜨리기가 싫었다. 그 순간 내 머리를 치고 들어온 생각은 ‘어디에 창고를 구하지? 산 지 얼마 되지 않는  가구들은 보관하려면 창고는 얼마나 커야 할까? 창고비는 얼마나 드려나? 몇 년을 보관하고 다시 사용할 수 있을까?’ 다시 땅에 거주지를 구한다고 해도 밴쿠버가 아닐 확률이 높으면서 나는 다시금 놓아버린다는 행위에 적대적이었다. 보트에서 살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내가 사랑하던 물건은 아끼던 마음만큼이나 짐이 되어있었다.



가구만 날 괴롭히는 게 아니었다. 지난 7년 동안 키운 식물들을 보면 답답한 마음에 ‘아아!!!!’ 하고 고함이라도 지르고 지르고 싶었다. 10센티미터로 시작해서 1.5미터는 족히 자라 자랑거리가 된 나의 푸른 아기들은 이제 더 이상 내가 키울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가져가라고 할 수는 없었다. 방을 둘러보았다. 구석에 자리 잡은 작은 담요 하나까지도 누군가에 넘길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아직 미니멀리스트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미니멀리스트이고 싶었지만 그건 그저 희망사항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결정을 했고 다른 선택지는 없다. 나에게 주어진 장소는 고작 12미터가 전부.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가지고 갈 수 있는 물건은 옷 몇 가지와 신발 그리고 책 몇 권이 다다.



제대로 요리를 해보겠다며 구매한 스테인리스 냄비 세트여 안녕,  너 없이도 계속 맛있는 요리를 만들도록 도전해 볼게. 겨울을 트렌디하게, 하지만 따뜻하게 보내겠다고 구매했던 캐시미어 코트여 안녕, 너는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지만 더 이상 너의 자리는 없단다. 큰 마음먹고 구매했던 통나무 서랍장아, 네가 있어 짧은 시간이나마 나의 장소가 잡지에 나오는 방처럼 멋스럽게 보이도록 꾸밀 수 있었지. 한 달이 넘게 발품 팔아 찾은, 나의 오랜 염원이던 진짜 스푸루스 나무 같던 2미터짜리 크리스마스트리야, 너는 지난 이년의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나의 자랑이었단다. 그동안 고마웠다. 모두 안녕.


부비가 고양이 타워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줘서 더욱 고마웠던 책장아, 너도 안녕.


꼬박 5개월 동안 날마다 두세 시간씩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꺼내고, 간직할 물건과 기부할 물건 그리고 판매할 물건으로 구분했다. 크리스마스트리 포함 가구들은 페이스북 마켓 시장에 올리자마자 십분 안에 모두 판매되었다. 가구를 사려고 메시지를 보낸 사람들은 자기가 본 포스팅이 진짜 인가 의심하며 대박 할인 기회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기 전에 물건을 소유하려고 판매를 재촉했다. 물건을 가지러 온 사람들은 전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았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이걸 왜 파세요?" 그들의 횡재에 벌겋게 상기된 얼굴과 호기심을 뒤로하고 나는 묵묵히 정리를 진행했다. 집이 조금씩 비어갈 때마다 나의 욕심과 미련도 조금씩 비워졌다.



더 이상 줄일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남은 짐은 여섯 박스였다. 7년 전 캐나다로 이민 올 때 가지고 온 짐보다 훨씬 적은 양이었다. 여섯 박스까지 짐을 줄인 내가 그렇게도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짐을 가지고 보트에 도착한 후 좌절로 감정이 폭발하기까지는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보트에는 짐을 풀기 위해 박스를 둘 공간도 부족했다. 박스를 겹겹이 쌓아두고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물건을 꺼내고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미 포기할 만큼 포기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섯 박스는 여전히 너무 많았고, 여기에서도 사분의 일은 더 줄여야 했다. 깨끗이 정돈되어 있던 보트가 무질서하게 물건으로 뒤덮이자 속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고 있었다. 순간 이 모든 걸 다 접고 극도로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야 했다. 쓸데없는 걸 왜 가지고 왔냐며 짜증을 내는 T를 뒤로 하고 보트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순간, 소리 없이 밤공기가 얼굴을 시원하게 스쳐 지나갔다. 불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밤바다가 내 눈앞에 있고 그 건너 자리 잡고 있는 다운타운에는 수많은 빌딩이 솟아 있었다. 그들은 늦은 밤에도 꺼지지 않은 불빛들에 감싸여 자기 존재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물 건너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다운타운은 마치 티브이 속의 한 장면처럼 내가 속한 세상과 너무 다른 장소로 느껴졌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다녀왔건만 그곳에 나의 장소는 없다. 나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다.



아, 순간 깨달았다. 다시 돌아갈 장소는 없지만 자유를 얻었구나. 보트가 가는 모든 장소가 집이 되는 자유.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자유.


창고 없이 모든 물건을 정리해서 다행이었다. 짐을 정리하며 함께 보냈지만 아직까지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욕심과 미련은 빌딩 숲에 남겨 두기로 했다.


보트에서 보이던 다운타운






보트로 이동하다 보면 종종 다른 보트로 여행 중인 세일러들을 초대해서 저녁 식사 대접을 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김없이 건네는 질문이 있다. 지금까지 보트로 이동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이 뭐였냐고. 그때마다 무섭게 보트를 흔들어재끼던 바람이나 삼킬 듯 후려치던 파도는 내 기억 저 멀리 사라지고 없다. 가장 힘들었던 날은 바로 보트로 이사하던 날 아직 조금 남아있던 미련과 추억 속에서 꺼이꺼이 울던, 새롭게 미니멀리스트로 태어났던 그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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