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 같아서 중독되어가는 걸지도.
30대 초입이긴 하다만 20대와 다른 점이 있다. 극단적인 성격이 사라져 간다. 죽을 만큼 좋아하는 건 옅어졌다. 여전히 난 모 아니면 도 성향이지만, 간극이 좁아지는 것 같다. 예전처럼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죽을 만큼 좋아하는 것도 없고 '이게 아니면 안 돼' 같은 생각도 없다. 20대는 좋으면 좋다고 직진했는데 이젠 좋으면 진심을 숨긴다. 유학을 마치고 와서 개인적인 생각은 안 한채 일만 생각해왔다. 30대가 넘었으니 돈을 모아야 했다. 요 근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생각이 복잡해서 처음으로 정리해보고 싶다.
나와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한 명 있다. 15년을 알고 지냈다. 매일 봤던 사이는 아니지만 분기별로 만나서 같이 여기저기 다녔고 추억도 많다. 그 친구와 내가 포함된 무리와 가까워서 늘 같이 만난다. 서론을 덧붙이자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편이다. 그 친구가 여행하고 교환학생 갔던 곳을 내가 가봤고 내가 유학했던 곳을 그 친구가 여행했다. 작년 8월에 2년 만에 다시 만났다. 오래된 친구가 그렇듯 어제 만난 것처럼 즐거웠고 재밌었다. 그러다가 카페에서 화장실 다녀오다가 그 친구와 우연히 마주쳤는데 순간 되게 이상했다. 서로 말없이 5초 정도 보고만 있었다. 그 후에 그 친구를 다시 봤는데 몸이 더 커진 것 같았다. 뜬금없지만.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그 후로 일 구하느라 그 친구는 잊었다. 매일 3시간 잘 정도로 정신없었는데 이상하게 그때 마주쳤던 순간이 생각났다. 왜 생각나는지 모르겠고 무슨 마음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친구인데. 자주 만나면 알아질까 싶어서 그 후로 자주 만나려고 했다. 괜히 부담 느낄까 봐 무리로 만나왔다. 만나도 모르겠더라고.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설레는데 만나면 너무 편하다. 모순된 감정 같아서 혼란스러웠다. 이런 감정을 느껴봤어야지.
사실 만나면 별 얘기는 안 한다. 일상 업데이트하고 고민 얘기도 많이 하긴 하지만 거의 아무 말이나 한다. 깊은 얘기는 안 하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말했던 것 같은데 여운이 남는다. 잘 안 지워져. 지우고 싶지 않은 자국인 걸까? 분위기, 향수 향, 눈빛, 배려, 별 것 없는 이야기가 나한테 많이 스며들었다. 다정한 눈빛과 몸 부딪치면서 귓속말했던 순간들도. 없으면 허전할 만큼 여운이 남는다. 이렇게까지 생각날 줄은 몰랐는데.
그 친구와 같이 갔던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그 친구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어보기도 한다. 이제는 나도 좋아한다. 그 친구가 추천해준 카페는 처음 갔는데도 가본 것 같은 데자뷔가 있었다.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고 자리부터 잡아야겠다며 피했는데 더는 피할 수 없게 됐다. 1년 정도 지났는데 이제야 내 마음을 알기 시작했다.
그 친구와 나 사이에 뭐가 있다고 말하기엔 애매하다. 나는 왜 확실하지도 않은 것에서 확신을 갖게 되는 걸까? 마치 그러길 바라는 듯이. 이번엔 '이래 저래서 달라' 안일한 생각이 반복된다. 잡으려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봐 조마조마하다. 이러다 해보지도 못하고 놓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조급해진다. 무엇보다 혼자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서 공허해진다. 동시에 내 마음은 더 뚜렷해진다. 그 친구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매일 만나서 장난치면서 아무 얘기나 하고 싶고 더 가까워지고 싶다. 어쩌면 2년 만에 카페에서 말없이 마주쳤을 때부터 알았을지도 몰라. 내가 조금 더 안정적으로 살면, 누구를 책임질 수 있을 자신이 있으면 더 다가갈 텐데. 알고 지낸 시간이 긴 만큼 앞으로도 계속 인연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조금만 더 인내하면서 기다리다 보면 타이밍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