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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호 Nov 23. 2021

첫 월급을 받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청년처럼

이직한 날 의자에 앉으며

*월간 에세이 21년 2월호 기고 글입니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척추를 온전히 등받이에 기댔다. 등을 살짝 뒤로 밀어젖히니 적당한 텐션감에 몸이 앞뒤로 들썩인다. 의자 부속의 연결 부분에서 끼익 소리. 의자의 높이, 등받이 각도, 팔걸이의 쿠션감 모두 전에 사용하던 사람의 의자 사용 형태와 흔적이 남아 있다. 음, 낯설군.

 

일이 바뀌었다. 정확히는 회사를 옮긴 것. 일하는 공간이 달라졌고, 업무의 양태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달라졌다. 이 과정에서 몸이 가장 먼저 느끼는 감각은 의자에 몸을 담는 느낌이다. 의자는 나를 담아내는 가장 최소 단위의 공간. 나를 이 공간에 온전히 맡기니 진짜 무언가 바뀐 것 같다. 척추를 쭉 펴고 등받이에 체중을 던졌다. 낯선 공기에 위축되어 있던 말린 어깨를 펼치니 절로 크게 호흡을 하게 된다. 그제야 눈이 밝아졌다. 시야에 안 들어왔던 사무실 곳곳과 함께하게 될 동료의 얼굴 표정, 전화받는 소리, 타닥타닥 타자 소리와 회의실 한 켠의 모여 회의하는 모습, 따뜻하게 쥐고 있었던 아메리카노의 향이 선명해졌다.

 

일을 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의자. 의자는 생각보다 삶과 일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지만 생각의 우선순위에 비켜나 있었다. 매일 같은 공간에 내 몸을 의탁할 때는 못 느꼈던 의자에 대한 단상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자 할 때 예리하게 생각의 틈을 파고든다. 아 맞다, 의자.

 

덴마크 사람들은 첫 월급을 받으면 의자를 가장 먼저 산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그동안 사고 싶었던 옷이나 물건을 샀던 것 같다만. 사회생활의 시작을 기념하는 첫 소비가 바로 의자라니. 별안간 저 멀리 스칸디나비아 반도 청년이 첫 월급을 받고 공방에 찾아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추위를 견디며 촘촘해진 나이테를 지닌 적송의 통나무를 깎아 만든 의자를 쓰다듬고 앉아보는 모습. 북유럽 독립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듯 말이다.

 

시답지 않은 생각들이 잠시 오고 갔지만, 첫 월급으로 의자를 구입하는 의식이 꽤나 근사한 전통이라고 생각했다. 의자는 단순한 소품이나 가구가 아니라 생각과 머묾의 장소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가구 브랜드 이케아의 탄생은 덴마크 사람들의 이러한 의식에서부터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잠시. 머묾의 최소 단위 장소로서 의자의 개념을 정리해보니 앉아있는 새로 옮긴 회사의 의자도 다시 보게 됐다.

 

의자 높이를 조정하고 등받이의 각도를 바꾸고 팔걸이의 위치를 당겼다. 처음 보는 의자니 조정이 쉽지는 않지만 어렵지도 않다. 이것저것 만져보며 의자를 조정하니 회사의 전통을 인계받은 것 같은 기분. 이제 오롯한 이 공간에서 시간을 다듬어 유의미한 일이 만들어지리라, 마음속으로 되뇌어본다. 이 뭉근하게 피어오르는 기대감은 의식의 바깥에서 일상을 맴돌고 있던 작은 평화를 세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다. 첫 월급을 받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청년의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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