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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hum Jan 23. 2020

마로니에 공원과 김철민 아저씨

스무 살, 기억 속 보물



 10대 시절엔 강원도에서 자랐고 스무 살 때 제대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누나 집에 얹혀살았는데 그 당시엔 경제적인 문제, 학교, 군대… 따위의 상황들에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기였다.  집은 수유역이었기 때문에 늘 동대문역사공원(당시엔 '동대문운동장'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 혜화역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번화가로는 가장 가깝다 보니 친구와의 약속은 혜화역으로 자주 정했었다.


 서울로 오기 전에는 ‘대학로’라는 명칭을 어린 시절 티비나 잡지에서 얼핏 접한 적이 있다. 영상에서는 길거리에 젊은이들이 춤을 추고 웃으며 노래를 하는 등 생생하고 역동적인 청춘들의 풍경이 흘러나왔다. 그곳이 서울 어디에 붙어있는지는 몰랐어도 그저 어린 시절 환상의 테마파크를 상상하듯 그런 이미지로 대학로는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자리 잡았다. 혜화역이 대학로라는 사실도 서울에서 제법 지내고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그 역이 대학로라 이거지…” 어느 날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혜화역을 향했다. 2번 출구 방향으로 나서자 ‘마로니에 공원’이라고 언젠가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 안내표에 적혀있었다. 역사 내에는 사람들로 붐볐고 출구 밖으로 나오자 중후한 분위기의 백발에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근처 극장에서 연기를 하는 노인처럼 보였다. “과연… 예술의 거리!” 속으로 생각하며 난 그 신비로운 노인 앞에서 걸음 속도를 늦췄다. 근데 갑자기 그가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내밀며 말했다. “500원만.” 가까이 다가오자 오줌 지린내가 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그냥 노숙자였던 것이다. 난 완전히 대학로라는 상상 속 테마파크에 취해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 이후로 대학로에서 알바도 구하고 조금씩 그곳의 풍경에 익숙해졌다. 



 주말 대학로를 걷다 보면 마로니에 공원 앞 아르코 예술극장 앞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두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노래를 대단히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중간 던지는 멘트나 관중과 함께 호흡하면서 펼치는 공연이 정말 재밌었다. 박명수처럼 버럭 하면서 관객들에게 짜증도 내고 칭얼대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유쾌한 공연이었다. 공연은 무료이고 중간에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서 자발적인 모금을 하고 있었다. 두 분은 벌써 20년 전부터 대학로에서 이 일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가끔씩 마주쳐 공연을 보면 레퍼토리는 거의 같았지만 늘 재밌었다. 그 공연을 볼 때면 여러 근심이나 고민 같은 것들은 전부 잊어버리고 웃을 수 있었다. 적어도 나 한 사람에게 만큼은 이렇게 큰 행복을 주고 있으니…  나 이전 그리고 또 그 이후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통해 즐거움을 얻었으리라. 내 눈에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나도 저런 어른으로 늙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4,50대가 되면 내가 어떤 직업을 가졌든 상관없이 주말에 나가 노래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꿨다.


2014년 대학로에서 오랜만에 마주친, 두 기타 아저씨의 공연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흘렀다. 어느 날, 네이버에 김철민이라는 이름이 검색어에 오른 것을 보았다. 눌러보니 개그맨 겸 가수인 김철민 씨가 폐암 말기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사진을 보니 마로니에 공원에서 봤던 두 아저씨 중에 한 분이었다. 짧게 올려 깎은 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 정말 건강해보인다고 생각했던 분이었는데, 오랜만에 사진으로 접한 그는 야위고 수척한 모습으로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천천히 그의 근황을 SNS를 통해 읽어내려갔다. 그는 병을 발견하기 전에도 그 후로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치료는 물론이고 힘이 닿는 대로 계속 공연을 하고 SNS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공유해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있다. 역시 그 답다는 생각을 했다. 병이 생기기 전 2018년에 발표한 음반의 제목이 ‘괜찮아’이다. 발랄한 트로트 노래지만 어딘지 구슬프면서도 강력한 힘 같은 것이 느껴진다. 새로운 치료법에 도전 중이시라고 들었는데 부디 좋은 소식이 들리길... 그리고 다시 대학로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대학로와 마로니에공원의 아저씨. 잃고 싶지 않은 20대의 소중한 기억의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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