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아인(ein)과 빚짜
아담한 와인바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김 원장이 한 작가님과 함께 가봤다던 곳이다. 예약이 꽉 찼다며, 문전박대. 서촌을 누비다 다시 들이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또 까였다. 대안을 찾아 카페들을 들쑤셨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길목을 벗어나 발길 닿는 대로 방황했다.
방황이 방향을 잡는다. 하염없이 표류하다 마침내 정박. 한적한 '아인(ein)'에 닻을 내렸다. 외딴섬의 명당혈에 둥지 틀고 메뉴 투어 스타트. 우선 까넬로니. 감자와 버섯으로 속을 채웠다. 그리고, 베이컨 야채 볶음밥. 태국식 소스가 풍미를 더한다. 더불어, 알리오 올리오와 오징어튀김까지 소환했다.
귀인들과의 재회. 이런 순간에 와인이 빠지면 쓰나. 관상을 면밀히 살핀 뒤 한 녀석을 골랐다. 베라몬테 리저브 까베르네 쇼비뇽. 칠레에서 건너왔다. 허우대도 그럴 듯하고 내실 있다. 맥주도 엄선했다. 브렉시트(Brexit)로 뒤숭숭한 시국에 맞춰 '런던 프라이드' 음미. 자존심을 버린 만큼 자존감은 올라간다. 그게 생의 묘미다.
서촌의 한옥에 똬리 튼 컬러리스트 서 선생. 한 작가님과 첫 만남인데, 오랜 지인 같다. 역시 패밀리가 될 운명이었던가. 정유정 작가께서 <종의 기원>에 언급한 바, '운명은 제 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올 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왠지 느낌이 좋다. 흡족한 결실이 결국 다가오리라. 함께 누릴 좋은 일들도 끝내 벌어질 테고. 미리 축배를 든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