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국정화 단상

#국사국정화 #인사동 #청소년행동

by 하일우

'박근혜 대통령님,
가족사를 한국사로 바꾸지 말아주세요.'
'사실과 다른 답을 적게 하지 마세요.'
'대한민국 역사교육은 죽었습니다.'
'정부는 역사를 건드릴 권한이 없습니다.'
'국정교과서 통과는 역사를 버리는 겁니다.'

국정 교과서 반대 청소년 행동
소속 학생들이 인사동에 모였다.

그들이 양손에 쥔 피켓 문구들을 찬찬히 훑는데,
나이 지긋하신 부부가 지나가며 혀를 차신다.
"니들이 뭘 안다고 여기에 튀어나와!"

노부부를 향해 튀어나오려는
육두문자를 꿀꺽 삼키고,
저 꼰대의 근대와
이 꼬마들의 현대 사이에서 나를 돌아본다.

뭘 알든, 얼마나 알든
아는 만큼, 아는 대로
행동할 줄 아는 '니들'이
어정쩡한 나보다 백만 배 낫다.

행촌 이암 선생께서
단군세기 서문에서 밝히신
'선비의 기개'마저 느껴졌다.

爲國之道(위국지도)가
莫先於士氣(막선어사기)하고
莫急於史學(막급어사학)은 何也(하야)오.

나라를 위하는 길에는
선비의 기개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사학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음은 무엇 때문인가.

史學(사학)이

不明則士氣(불명즉사기)가 不振(부진)하고
士氣(사기)가

不振則國本(부진즉국본)이 搖矣(요의)오
政法(정법)이 歧矣(기의)니라.

사학이 분명하지 않으면
선비의 기개를 진작시킬 수 없고
선비의 기개가 진작되지 못하면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蓋史學之法(개사학지법)이
可貶者(가폄자)는 貶(폄)하고
可褒者(가포자)는 褒(포)하야
衡量人物(형량인물)하고 論診時像(논진시상)하니
莫非標準萬世者也(막비표준만세자야)라.

대개 역사학의 정법이, 폄하할 것은 폄하하고
기릴 것은 칭찬해서 인물을 저울질하여 평가하고,
시대의 모습을 논하여 진단하는 것이니,
만세의 표준이 아닌 것이 없다.

-檀君世紀(단군세기) 序(서) 중

오늘날의 국무총리격인
'수문하시중'에까지 오른 정치가요
그의 필체가 여말선초의 국서체가
될 정도로 명필가였던 이암 선생은
충혜왕이 등극하고 다시 충숙왕이 복위하는
난세 속에서 강화도로 귀양을 간다.

당시 고려의 왕권과 국권은
작금의 한국처럼 형편없었다.
원의 내정 간섭과
그에 야합한 간신배의 횡포로.

당대 최고의 지성인 그가
망해가는 국운에 비분강개하여
동북아의 종주였던

옛 조선의 영화로운 역사를
만천하에 드러내고자 저술한

역작이 바로 단군세기다.

그가 단군세기 서문에서 밝힌 바대로,
역사적 위인들을 엄정히 저울질하고
시대상을 정확히 진단하는 게 역사학의 정법이다.

아무리 내 편이어도, 내 우상이어도
띄울 건 띄우고 깔 건 까야 한다.

왼쪽으로 기울어졌다는 핑계로
역사책을 국가가 손질하려 한다면,
가운데로 반듯하게 옮겨놔야지
오른쪽으로 확 비틀면 쓰나.

황지우 시인의 '꽃말'을 인용한
천만 배우 오달수의 말처럼,
버스 운전수의
급격한 우회전은
승객들을 좌편향시킨다.

치우치지 않은 역사 서술,
진정 '만세의 표준'이 되는
공정하고 분명한 사학만이
국민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다.

지금 이대로라면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가
갈기갈기 갈라질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필귀정(事必歸正)!
역사는 반드시
정의를 향해 나아간다.

부패한 헬조선에도
정의는 엄연히 살아있고,
우리 모두는 정의를 향해 꿋꿋하게
나아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 근거에 저 청소년들도 포함된다.

역사의 정의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진실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역사 속 크고 작은 모든 비리는
잘못된 역사인식의 변태 유전자 때문이다.

그 진실이 온전히 담겨야
가히 '국사'라 명명할 수 있다.
무지막지한 역사 해석, 천치들의 합창에
앵콜~ 외치는 민폐는 더 이상 역사에 끼치지 말자.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국사 교과서 품고
유구한 국통맥 더듬는 그날을 갈망한다.
천지가 개벽되기 전엔
절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P.S.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끄시는
이덕일 소장님의 이 사설이
국사 국정화 논란을 지켜보는
내 심정을 150% 대변한다.

[이덕일 천고사설] 국사 서술
http://me2.do/5BEMoJXZ

현재의 국사 교과서 논란이
일제 식민사학에 의해 왜곡된 고대사 부분을
고치겠다는 뜻이라면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대다수 국민이 쌍수 들어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사라지고 극심한
국론 분열이 불 보듯 환한 현대사만 부각되고 있다.

역사는 교훈을 얻는 거울이다.
자신의 얼굴에 얼룩이
묻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역사를 체제 유지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국정 체제의 북한과
닮아가고 있지 않은지 비춰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