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전화

대동맥 박리, 대통령 박리

by 하일우


응급실로 걸려오는 전화는 대부분 불길하다. 날 찾는 경우엔 특히 그러하다. 맞짱 뜰 시간과 장소를 타진하려는 연락이 태반이다. 직무가 정지되는 시각, 퇴진을 서두르는데 수간호사의 통화 육성이 스테이션에 울려퍼진다. "하 과장님 근무 끝나셨는데요. 다음 출근은 14일이구요. 찾아오실 거면 그날 오세요."

이번엔 또 뭐지? 매도 빨리 맞는 게 낫잖아. 쌩까고 튀려는 마음 돌려 세워 수화기를 거머쥐었다. "응급의학과 하민석입니다. 무슨 일로 절 보려고 하시는지요?" "선생님 저 기억하시나요? 등이 너무 아파서 찾아갔던 사람입니다. 죽을 뻔했는데 덕분에 살았습니다. 9시간 넘게 수술했어요. 잘 마쳤고, 한창 회복 중입니다."

아, 그 환자분! 선명하게 기억한다. 한 달 전, 건장한 30대 청년이 새벽 응급실에 들이닥쳤다. 등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과 호흡곤란으로 좌불안석坐不安席. 심전도 파형은 지극히 정상이었고, 단순 흉부 방사선 사진도 멀쩡했다. 그렇다면 그건가. 심증에 물증을 더하고자 흉부 CT를 서둘러 찍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심장에서 뻗어나가는 하이웨이에 균열이 심했다. 예상대로 대동맥 박리(Aortic dissection). DeBakey I/Standford type A였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증상의 원인을 설명하고, 모 병원의 24시간 대동맥 전담팀에게 즉각 인계했다. 추후 경과가 무척 궁금했는데, 방가방가 피드백. 탄핵 표결에 버금가는 복음福音이다.

좋은 소식이 1+1으로 당도하니, 병원을 벗어나는 발걸음이 가볍다. 기나긴 수술에 힘써준 의료진들께 감사하다. 기나긴 촛불에 힘 보탠 시민들도 고맙다. 길게, 깊게 찢겨나간 국정 대동맥 깁는 일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한 땀 한 땀 줄기차게, 흔들림 없이 맞짱 뜬다면 언젠간 기필코 온전히 회복하리라.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이 나라 안팎, 나란 사람 안팎의 풍경이었는데 오늘은 구름도 웃는 듯하다. 살짝 혹은 활짝. 아내가 공유해준 조안이 그림처럼.

첫눈 오던 날, 서울의 호텔에서 작품활동

작품명, '예쁜 할머니와 웃는 구름'



여러모로 응급상황

골든타임 필히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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