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첫 문장> 묵상
9월을 열자마자 푸꾸옥(富國)으로 들어갔습니다.
1년에 한 번 떠나는 피서避暑, 아니 피인避人.
사람 성긴 틈으로 자연이 스밉니다.
숙소에서 내려다본 바다가 故 최인훈 선생의 <광장> 첫 문장을 실어 나릅니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소설의 첫 문장: 다시 사는 삶을 위하여>의 저자 김정선은 한국 소설 첫 문장 가운데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유명한 문구에 딴지를 겁니다. 모두 세 개의 쉼표가 전체 문장을 네 부분으로 나누고 있는데, 각각의 성분이 서로 호응하지 않는다는 거죠.
“바다는”과 “크레파스보다 진한” 그리고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와 “숨을 쉰다”를 따로따로 늘어놓고 보면, 마치 각자 다른 문장에서 뽑혀 오기라도 한 듯 서로를 철저히 외면하는 형국이랍니다.
바다와 크레파스도 연관이 없지만 육중한 비늘 또한 크레파스와 관련이 없는 데다 마지막의 “숨을 쉰다”도 앞의 어떤 부분과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몇 번을 읽다 보니,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것들이, 쉼표를 통해, 묘하게 스며드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고 교정의 숙수가 고백합니다. 쉼표에 충분히 머물며 다시 읽어보세요. 그러고 보니 그렇죠?
쉬고 보니 그렇습니다. 최고존엄 쉼표의 위격에 새삼스레 눈 뜹니다. 어우러지지 않을 것들이 쉼표 하나로 하나 되네요.
무술년이 부추긴 일상의 모순을 富國의 쉼표로 호이짜 뛰어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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