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부건 Apr 16. 2019

토니오 크뢰거와 아인슈페너

詩누이와 <brown & rosybrown>


노벨상도 인정한 탁월한 이야기꾼, 토마스 만. 정작 그는 문학을 ‘저주’라고 규정합니다. 세상과 더불어 평화로이 살 수 없게 하는 ‘낙인’이라고요. 슬픔의 베일 속에서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을 작가의 숙명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그가 남긴 <토니오 크뢰거>는 자전적 성장소설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스러운 단편이네요. 예술가와 일반인 사이에서 고뇌하는 작가의 내적 고백을 엿들을 수 있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붙들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다 잠정적인 답을 구해냅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온 첼시 언니랑 낮과 밤의 경계에 지하철 탑승.         정지선 셰프의 연남동 <중화복춘 골드> 만찬 만끽.

예술가란 경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이랍니다. 이쪽 밝은 세계에도, 저쪽 어두운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죠. 삶을 환멸할 뿐 아니라, 삶을 너무나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환멸과 사랑의 변증법에서 어떤 균형점, 그가 머물 작은 점(혹은 선)을 찾아내는 것으로 <토니오 크뢰거>는 얽힌 실타래를 풉니다.  

경계에서 선 자는 카페를 ‘판문점’스럽게 규정하네요. 자신의 정체성을 아늑한 공간에 투영합니다.


나로 말하자면 이제 카페로 갑니다. 거기는 계절의 변화와는 무관한 중립적인 지역이니까요. 아시겠어요? 말하자면 그곳은 문학적인 것을 위한 선경(仙境)이며, 고귀한 착상들만을 떠올릴 수 있는 고상한 영역이란 말입니다.


중립적인 지역이자 고상한 영역이 도심 곳곳에 즐비합니다. 그 밥에 그 나물인 카페들이 수두룩하죠. 그 와중에 선경(仙境)에 가까운 아지트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brown & rosybrown>. 아내 일터 근처라 자연스레 자주 들르게 되네요. 대문 밀고 들어가면 구수한 빵내음이 일단 나그네를 홀립니다.

빵 굽고 커피 내리는 청년들도 선남(善男)에 가깝습니다. 훈훈한 장정들이 뽑아내는 커피들 중에서 전 아인슈페너를 즐겨 마십니다. 고소한 크루아상과 고상하게 어우러집니다. 시집까지 곁들어지면 금상첨화죠. 아내 진료실에서 집어온 <詩누이>를 홀짝홀짝 삼킵니다. 시인과 웹툰 작가 경계를 오가는 신미나 선생의 글과 그림이 고귀한 착상들을 던져주네요.



아인슈페너와 <詩누이>는 둘 다 기분 좋게 달달합니다. 책의 첫 시가 무려 박소란 시인의 ‘설탕’이네요.

​커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오 어쩌면

​테이블 아래
새하얀 설탕을 입에 문 개미들이 총총총
기쁨에 찬 얼굴로 지나갑니다 개미는
다정한 친구입니까 애인입니까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
달콤한 입술로 내가 가본 적 없는
먼 곳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당신을 위해
오늘도 나는 단것을 주문하고
마치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웃고 재잘대고 도무지 맛을 알 수 없는
불안이 통째로 쏟아진 커피를 마시며

​단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다정을 흉내내는 말투로
한번쯤 묻고도 싶었는데


언제나처럼 입안 가득 설탕만을 털어 넣습니다.
그런 내게 손을 내미는 당신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오 제발 다정한
당신의 두발, 무심코
어느 가녀린 생을 우지끈 스쳐 지나가고


설탕 같은 토요일에 선암 호수공원 산책. 개미와 매미의 경계를 오가는 초딩과 더불어.
“살인은 간단해. 설탕의 맛을 잊어버리면 돼.”
우라사와 나오키, <몬스터>


나른한 봄날 오후, 단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웅변하며 꽃잎은 분분히 흩날립니다. 새하얀 설탕을 입에 문 개미들 같은 시간도 흩날립니다. 총총총!



작가의 이전글 그러는 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