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누이와 <brown & rosybrown>
노벨상도 인정한 탁월한 이야기꾼, 토마스 만. 정작 그는 문학을 ‘저주’라고 규정합니다. 세상과 더불어 평화로이 살 수 없게 하는 ‘낙인’이라고요. 슬픔의 베일 속에서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을 작가의 숙명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그가 남긴 <토니오 크뢰거>는 자전적 성장소설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스러운 단편이네요. 예술가와 일반인 사이에서 고뇌하는 작가의 내적 고백을 엿들을 수 있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붙들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다 잠정적인 답을 구해냅니다.
예술가란 경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이랍니다. 이쪽 밝은 세계에도, 저쪽 어두운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죠. 삶을 환멸할 뿐 아니라, 삶을 너무나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환멸과 사랑의 변증법에서 어떤 균형점, 그가 머물 작은 점(혹은 선)을 찾아내는 것으로 <토니오 크뢰거>는 얽힌 실타래를 풉니다.
경계에서 선 자는 카페를 ‘판문점’스럽게 규정하네요. 자신의 정체성을 아늑한 공간에 투영합니다.
나로 말하자면 이제 카페로 갑니다. 거기는 계절의 변화와는 무관한 중립적인 지역이니까요. 아시겠어요? 말하자면 그곳은 문학적인 것을 위한 선경(仙境)이며, 고귀한 착상들만을 떠올릴 수 있는 고상한 영역이란 말입니다.
중립적인 지역이자 고상한 영역이 도심 곳곳에 즐비합니다. 그 밥에 그 나물인 카페들이 수두룩하죠. 그 와중에 선경(仙境)에 가까운 아지트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brown & rosybrown>. 아내 일터 근처라 자연스레 자주 들르게 되네요. 대문 밀고 들어가면 구수한 빵내음이 일단 나그네를 홀립니다.
빵 굽고 커피 내리는 청년들도 선남(善男)에 가깝습니다. 훈훈한 장정들이 뽑아내는 커피들 중에서 전 아인슈페너를 즐겨 마십니다. 고소한 크루아상과 고상하게 어우러집니다. 시집까지 곁들어지면 금상첨화죠. 아내 진료실에서 집어온 <詩누이>를 홀짝홀짝 삼킵니다. 시인과 웹툰 작가 경계를 오가는 신미나 선생의 글과 그림이 고귀한 착상들을 던져주네요.
아인슈페너와 <詩누이>는 둘 다 기분 좋게 달달합니다. 책의 첫 시가 무려 박소란 시인의 ‘설탕’이네요.
커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오 어쩌면
테이블 아래
새하얀 설탕을 입에 문 개미들이 총총총
기쁨에 찬 얼굴로 지나갑니다 개미는
다정한 친구입니까 애인입니까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
달콤한 입술로 내가 가본 적 없는
먼 곳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당신을 위해
오늘도 나는 단것을 주문하고
마치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웃고 재잘대고 도무지 맛을 알 수 없는
불안이 통째로 쏟아진 커피를 마시며
단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다정을 흉내내는 말투로
한번쯤 묻고도 싶었는데
언제나처럼 입안 가득 설탕만을 털어 넣습니다.
그런 내게 손을 내미는 당신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오 제발 다정한
당신의 두발, 무심코
어느 가녀린 생을 우지끈 스쳐 지나가고
“살인은 간단해. 설탕의 맛을 잊어버리면 돼.”
우라사와 나오키, <몬스터>
나른한 봄날 오후, 단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웅변하며 꽃잎은 분분히 흩날립니다. 새하얀 설탕을 입에 문 개미들 같은 시간도 흩날립니다. 총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