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꿈의 제인>
소현은 세상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혼자 떠도는 소녀입니다. 어느 날 꿈처럼 제인이 나타납니다. 함께 ‘시시한 행복’을 꿈꾸자며 손을 내밀죠. 제인 집에는 소현 같은 아이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난 인생이 엄청 시시하다고 생각하거든. 태어날 때부터 불행이 시작돼서, 그 불행이 안 끊기고 쭉 이어지는 기분? 근데 행복은 아주 가끔, 요만큼, 드문드문, 있을까 말까. 이런 개같이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 뭐 하니.”
제인이 가출팸을 만든 이유랍니다. 그가 근무하는 이태원 클럽 ‘뉴월드’에 들어가려면 손목에 ‘UNHAPPY(불행)’라고 쓰인 도장을 찍어야 해요. 세상 불행한 이들이 그 공간에서 ‘어쩌다 한 번’ 행복을 느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꿈의 제인>은 한국 사회, 혹은 인간 사회 전반의 외면하고픈 단면을 날것으로 드러냅니다. 배우 구교환이 열연한 제인은 근래에 만난 캐릭터 중에 제일 강렬하네요. 그의 말들이 고막을 드럼처럼 두드립니다.
“사람은 4명인데 이렇게 케이크가 3조각만 남으면 말이야, 그 누구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선 안 돼. 차라리 다 안 먹고 말지. 인간은 시시해지면 끝장이야.”
끝장에 가까운 시시함을 요사이 곳곳에서 목격합니다. 혼자 살겠다고 발악하는 작태가 능력처럼 치부되는 세상이네요. 타인에 대한 무관심만큼이나 자기 걱정에만 매몰돼 마구 흔들립니다.
인생락재상지심(人生樂在相知心). 서로를 알아주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왕안석의 시 명비곡明妃曲의 이 구절로 <꿈의 제인>을 요약할 수 있겠네요. 저 문구를 처음 마주한 곳은 제주 애월이었습니다.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가 이끈 ‘방랑강기 제주유랑단’에 합류했었어요.
제주의 독립서점들을 둘러보는 발랄한 투어였습니다. <살아야겠다>, <대소설의 시대> 등을 최근에 내신 김탁환 작가님과 <제주 과학 탐험>을 펴낸 문경수 탐험대장과도 교감했습니다. <서른아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를 읽고 이메일로 교신했던 서진 작가님과도 뜻밖의 장소에서 반갑게 조우했어요.
애월의 꽃서점, 디어마이블루(Dear, My BLUE)에 들러 김소연의 <한 글자 사전> 구입하고, 권 대표님 및 유랑단원들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눴습니다.
혈관에 스며든 맥주가 ultrafiltration(초미세여과) 되어 방광을 터트리기 직전에 잠시 서점을 벗어났고요. 사나운 견공이 경계심 실어 뿜어내는 왈왈 사이렌 들으며 대지에다 요강을 비웠습니다. 그리고 돌아섰는데, 한 가옥 대문에 ‘人生樂在相知心’가 딱 박혀 있더군요.
보자마자 제 가슴에 딱 박혀서, 지금은 제 삶의 모토가 되었습니다. 아득바득 경쟁하는 세류를 거슬러, 아름다운 동행을 지향합니다. 제인은 시시한 행복을 노래했지만, 전 시시時時로 행복하고자 노력합니다.
더불어 숲을 이루어 시시하지 않게.
선천에서 지금까지는
금수대도술(禽獸大道術)이요
지금부터 후천은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이니라.
피차 마음을 알아야
인화(人和) 극락 아닐쏘냐.
道典 11:25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