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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Feb 07. 2021

물질세계의 풍요로움이란

[내가 만난 휴먼 디자인]21. 내가 진정 원하는 것 ②

(이전 글 :  내가 진정 원하는 것 ① 풍요(abundance)


■ 에고이즘  vs 풍요   


우리는 물질세계에 살고 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만 한 것도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풍요로운 삶'에 대해 말한다면 자연스럽게 '돈'이 떠오르는 것은 무척 자연스럽니다. 나 역시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자꾸 더 원하고, 누구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소유하려고 한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이렇게 무언가를 더 가지려는 것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 말이다. 사실 무언가를 자꾸 소유하려는 마음에는 무언가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 가난해질 것이라는 두려움,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등이 뿌리 깊이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이 소유한 무언가를 줄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상 주는 것을 원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두려움이 존재하는 한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자연스레 최소화된다. 이를 흔히 이기심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에고이즘(egoism)'이라고 부른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무언가를 주기 위해선 먼저 갖고 있어야 한다. 아주 상투적인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만일 내면에 '사랑' '기쁨' 이 가득하다면 우리는 이것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잃고, 가난해지고, 통제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는 이 사랑은, 주면 줄수록 결코 줄거나 잃어버리는 법이 없다. 그래서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주면 줄수록 자연스레 더욱 커진다.  이를 흔히 '풍요(abundance)'라고 부른다.


■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정말로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돈일까? 아니면 내면의 풍요로움일까?  


그리고 진정으로 무언가를 '갖는다'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잃어버릴까 봐 두려움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꽉 쥐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주고 또 주는데도 줄지 않고 오히려 차고도 넘치는 내면의 풍요로움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물질세계에서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무언가를 잃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주는 긴장 대신, 주고 주고 또 주어도 줄지 않는 '사랑' '기쁨'이라는 근본적인 자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마인드는 항상 물질(돈)과 정신(사랑)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아마도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질세계에서 진정 풍요로운 것이 무엇인지, 물질세계에서 진정으로 갖고자 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를 말이다.  


■ 모든 건 개인의 선택일 뿐 


코로나 19로 취약계층부터 차례로  타격을 받고 있다. 생존 자체가 화두가 되고 있는 때다. 집값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는 와중에 졸지에 벼락 거지가 된다. 주식으로 수익을 냈다는 지인의 말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다. 대기업, 공무원 아니면 다 죽어나간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면의 풍요로움을 말하는 이 자칫 사치로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또한  풍요로움이란 것이 '돈'과 '내면의 사랑'과 같은 이분법적인 구도로 설명할 있을 만큼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극도의 초복잡성을 가진 이 세상에서 풍요로움이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쫓든지 간에 이 터프한 물질세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생존하는 것 자체가 무척 고된 일이라는 것은 진실에 가깝다. 더군다나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길, 내면이 풍요로운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몇 곱절 더 고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쫓든지 간에 모든 건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외부의 어떤 상황에도 상관없이 자신의 내면을 고요한 가운데 깊고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사실 자신만의 답은 이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풍요로움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갔어야 했는지 말이다. 아주 어린 시절, 기억조차 희미했던 그 어린 시절부터 이미 완벽하게 외면해버린 그 길이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보다, 앞으로의 내가 만끽할  풍요로움에 더 집중해보고, 미리 감사를 해본다. 


나와 당신의 풍요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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