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시대의 새로운 정보 소비 방식
지난번에 순간의 시선들에서 이런 이야기로 시작했다.
숏폼을 관찰하다 보면 신기한 상황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최근 들어 많이 보이는 현상은 1분짜리 숏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반응들이 많이 보인다.
"요약 좀."
혹은 끝까지 보면 결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반 10초 정도만 콘텐츠를 소비하고 이런 댓글을 남긴다.
"왜 결말이 없음?"
그리고 이런 댓글도 많이 보인다.
"해석 좀."
그리고 뭔가 궁금한 게 있으면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댓글에 질문을 남긴다.
그럼 사람들은 비난한다.
"댓글 쓸 시간에 찾아봐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숏폼이라는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하는 인류의 새로운 생존방식이 아닐까..?
숏폼 콘텐츠를 그 자체로 즐기는 것도 있지만, 난 댓글을 통해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해 보기도 한다. 어쩌면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사람들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각자 나름의 관심을 갖는 분야의 영상들이 알고리즘에 의해 사용자들의 추천 영상에 뜨게 될 것이고, 댓글이라는 것은 그 사람들이 익명의 시스템 뒤에 숨어 남기는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댓글을 직접 남기지는 않지만 댓글들의 스타일을 살펴보면서 흐름을 느껴보려고 하는 편이다.
실제로도 조금만 비유적인 표현으로 내용이 진행되는 영상의 경우에는 해석을 요청하는 댓글을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다. 잠깐만 생각하면 되는 영상이지만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1분짜리 영상이에도 불구하고 그 영상을 끝까지 시청하지 않아서 1분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결말을 놓쳐 댓글에 결말을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특정 영화나 드라마의 리뷰를 숏폼 형식으로 요약해 놓는 영상들도 자주 접할 수 있다. 분명 영상 상단이나 하단에 영화나 드라마의 제목이 적혀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상들의 댓글에는, “제목 좀“이라는 댓글을 너무나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댓글에는 그런 사람들에게 골탕 먹이려는 건지, 전혀 다른 내용의 영화의 제목을 적어 놓기도 한다. 이런 댓글들을 보면 왜 저렇게 짧은 숏폼 형태의 영상 하나를 보더라도 집중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런 댓글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달리는 것을 보고 이런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단순히 게으른 것일까? 이들은 너무나 쉽게 질리는 것일까? 혹시나 이런 현상은 어쩌면, 숏폼과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인해 바뀐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한 인류의 새로운 생존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을까?
흔히 ‘핑프’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았다.
1분짜리 숏폼 형태의 영상들을 돌려본다.
첫 장면에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는 영상을 발견했다.
하나, 둘, 셋.
느낌이 좋다. 도파민이 느껴진다. 화면을 빠르게 더블탭해서 좋아요를 남긴다.
넷, 다섯.
충분히 즐겼다. 다음 영상으로 넘어간다.
다음 영상은 딱 봐도 싫어하는 주제다.
바로 넘긴다.
다음 영상이다.
이건 흥미롭지만 잘 모르겠다.
뭔가 모르지만 궁금한 점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다.
다음 영상으로 빨리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호기심은 충족시키고 싶다.
어떻게 하지..?
좋아. 댓글을 남기자.
“해석 좀”
누군가 대댓글로 정보에 대해 알려줄 것이다.
그럼 다음 영상.
딱 봐도 중국산 드라마의 토막영상이다.
어 근데 유치하지만 결말이 궁금하다.
하지만 이것도 찾아보고 드라마를 정주행 할 시간이 없다.
숏폼 영상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알려줄 것이다. 댓글을 남기자.
“결말 좀”
다음 영상으로 넘어간다.
앗 이번엔 모르는 정보에 관한 이야기이다.
댓글을 확인한다. 검색해 보라는 이야기만 있다.
검색을 하라고..?
1. 이 앱을 끄고 나가서 웹브라우저를 킨다.
2.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사이트를 접속한다.
3. 검색어를 입력한다.
4. 검색이 완료된 페이지들의 목록을 본다.
5. 가장 상위에 노출된 페이지를 접속한다.
6. 광고가 너무 많다.
7. 이 글 역시 정확한 답이 없이 뭉뚱그려진 채로 끝난다.
8. 얻은 정보 없이 시간만 허비했다.
9. 다시 뒤로 간다.
10. 검색 완료된 페이지를 다시 살펴본다.
11. 가장 믿을만한 페이지로 들어간다.
12. 장문의 설명이 나와있다.
13. 꼼꼼히 읽어본다.
14. 내 나름의 이해를 얻는다.
15. 웹브라우저를 종료한다.
16. 다시 영상 플랫폼으로 돌아온다.
지금 이 과정을 하라고 이야기하는 건가?
지금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기도 바쁜데 이 짓을 하라고?
차라리 댓글로 전문가의 답변을 기다리겠다.
아까 남긴 댓글의 대댓글이 달렸다.
해석이지만 너무 길다. 다 읽을 시간이 없다.
다시 댓글을 남긴다.
“요약 좀”
그리고 또 다른 영상을 소비하기위헤 엄지를 굴린다.
아마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숏폼 콘텐츠 소비패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정말 게으른 것일까?
이렇게 놓고 보니 현시대는 정말 거짓 정보와 광고가 넘처나는 시대이다.
정보를 얻기 위해 들어간 블로그도, 결국 정보를 주는 듯하면서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요소라는 걸 깨닫게 된다. 어떤 글들은 제대로 된 결말도 맺지 않은 채 글이 끝나기도 한다.
과연 이런 정보 과 시대에서 직접 정보를 찾아서 거짓 정보를 분별해 내는 것이 숏폼 형태의 생태계에 맞는 행동일까? 이들에게 있어서 그런 사고방식은 시대에서 뒤처지며 퇴화되는 길이라고 느낄 것이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새로운 생테계에 적응한 합리적인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핑프'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성향 문제나 게으름으로 치부하기보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과 그 속에서 적응해 나가는 인간의 정보 소비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단순히 정보를 '찾는' 행위만을 강조할 수 없었다. 오히려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획득하는' 새로운 생존 전략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보았다.
이제 '핑프'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디지털 환경이 낳은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행동은 표면적으로는 게으름처럼 보였지만, 실은 극도로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숏폼 생태계에 최적화된 새로운 정보 탐색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정보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그리고 우리는 정보 탐색이라는 행동을 어떻게 새롭게 정의해야 할까? 단순히 '검색'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같은 도구와 결합하여 '질문'과 '즉각적인 답변'이 새로운 정보 습득의 표준이 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었다. '핑프'의 행동은 어쩌면 미래의 정보 탐색 방식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