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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샤 Mar 23. 2018

고정금리는 정말 '고정'된 금리일까?

금융업의 민낯과 속살 #4

뭐가 좋을까?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은행의 대출금리도 올라간다니

고정금리 변동금리 중 무엇이 유리할까 관심이 높아집니다.


대출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금리가 올라간다 생각하면 고정금리가 좋고

금리가 내려간다 생각하면 변동금리가 좋겠죠.


그런데 고정금리는 변동금리보다 높고 비싸서

아까운 이자 더 내는 느낌이고,

그렇다고 변동금리 쓰다가 진짜 파바박 오르게 되면

큰 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특히 아파트 구입에 주로 사용하는 10년 20년짜리

장기대출은 상당히 고민스러운 주제일 겁니다.

2억 대출에 1%면 매년 2백만 원을 더 내야 되니까요.


그런데

고정금리는 정말 '고정된' 금리일까요?

처음 약속한 금리 그대로 10년 20년 안 바뀌는 걸까요?



은행 여신거래 기본약관의 비밀

예나 지금이나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엔 오만가지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아마 그 서류들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 본 은행원도 별로 없을 거예요.

그런데 A4에 12 폰트로 정리하면 거의 수십 장이 될 만한 어마어마한 서류들, 일반적인 인간의 독해능력(?)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을 그 방대한 내용을 불과 몇 초만에 쓱싹쓱싹 설명하고 도장 쾅 받아 냅니다.



그런데 그렇게 쓱~하고 동의해 준 서류들 중에

'은행 여신거래 기본약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거 말고 별도로 받는 서류의 내용이 무엇이 되었건

이 기본약관에서 정한 커다란 틀을 벗어날 수 없지요.

거래 당사자간의 개별적인 계약이 있다 하더라도

이 기본약관의 내용과 충돌하게 되면,

법적 다툼의 측면에선 대부분 약관을 우선하게 됩니다.

모든 은행들이 여신거래와 대출약정을 할 때

공통으로 적용하는 헌법이자 바이블 같은 겁니다.


그런데 그 안에 어떤 내용이 적혀있는지

혹시 읽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약관은 주택자금 기타의 가계자금 대출과 이에 준하는 가계 부업 자금 대출, 지급보증 등의 가계용 여신에 관련된 은행과 개인인 채무자 사이의 모든 거래에 적용됩니다


어떤 대출이건 이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선전포고입니다.

대출고객과의 계약에 있어 분쟁이 생겼을 때에는

이 약관을 근거로 법적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대출금리 즉 이자와 관련해 다음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이자의 율과 계산방법, 지급시기 및 방법에 관해 은행은 법령이 정하는 한도 내에서 정할 수 있고 이자의 율은 거래 계약 시에 다음 중 하나를 선택하여 적용할 수 있습니다


1. 채무의 이행을 완료할 때까지 은행이 그 율을 변경할 수 없음을 원칙으로 하는 것

2. 채무의 이행을 완료할 때까지 은행이 그 율을 수시로 변경할 수 있는 것


쓸데없이 복잡하고 길게 설명했지만

1번이 곧 고정금리이고

2번은 변동금리를 말하는 것이죠.

요기까지는 매우 합리적이고 상식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기까지는 다 알고 있지요.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고정금리를 선택한 경우, 채무이행완료 전에 국가경제나 금융사정의 급격한 변동 등으로 계약 당시에 예상할 수 없는 현저한 사정변경이 생긴 때에는 은행은 채무자에 대한 개별통지에 의하여 그 율을 인상 혹은 인하할 수 있기로 합니다



어머나!

이걸 모르셨을 겁니다.

은행이 그 율을 변경할 수 '없는' 것이 아닌

변경할 수 '없음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라는

미묘한 차이의 본뜻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국가경제나 금융사정의 급격한 변동이 생기면

은행은 고정금리 대출의 경우에도

금리를 자의적으로 변경할 수 있다...


이게 뭡니까?


국가경제나 금융사정의 급격한 변동은

'누가' 판단하지요?


그리고 그 변동이 생기면

'얼마나' 올리겠다는 것이죠?


은행이 고정금리 이자를 변동금리보다 높여 받는 명분은

미래에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리스크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댓가를 '미리'  받아두겠다는 것입니다.

금리 변동의 리스크를 대출고객이 부담하는 구조인 거죠.


그런데 정작 '중요하고 위급한'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에,

그동안 받아 먹은 리스크의 추가 비용은 나 몰라라 하고

은행은 그 모든 책임을 몽땅 고객에게 넘겨버립니다.



도대체 이런 걸 고정금리라 할 수 있나요?



상식의 관점

누가 봐도 좀 이상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약관입니다.

당연히 이에 대한 논쟁이 있을 법 하지요.


우리나라에서 경제위기라고 할 만한 상황은

IMF와 리먼사태 정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진실은 늘 위기의 순간에 선명해지기 마련...


아니나 다를까 IMF 직후인 2000년 즈음,

어떤 사람이 금융기관에서 주택자금을 대출받았는데

약정서에는 임의로 금리를 변경하지 않는다 기재했지만

여신거래 기본약관상 '금융사정의 변화' 등을 이유로

금융기관이 일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자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1심에서는 이른바 '개별약정 우선의 원칙'을 존중하여

대출고객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2심을 거치고 대법원에 올라가면서

판결이 뒤바뀌게 됩니다.

대법원의 판결은 다음과 같습니다.


계약자 일방에게 금리나 그 결정방법 등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이른바 금리 변경권 약정은 고정금리 방식 또는 변동금리 방식에 의한 금리 결정방식을 보완하여 예측하기 곤란한 경제사정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서...고정금리 방식으로 금리를 결정하기로 합의하였다고 하여 금융기관에게 금리 변경권을 부여하는 약관의 적용이 당연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인바...


경제사정의 불확실성이 발생하여

금융 '시장'이 흔들리게 되면

일반 고객보다 금융기관을 먼저 보호한다는 논리입니다...


과연 금융시장의 주인공은 누구인가요?

'은행'인가요 '고객'인가요?


역시 상식은 관점에 따라 바뀌나 봅니다.

'기관'의 안녕을 중시하는 BOSS적 관점에서는 

금융시장의 주인은 당연히 은행일 겁니다.

하지만 금융'소비자'인 대중들의 관점에서는 

이상하고 억울한 논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럴 바에야 아예 고정금리라는 말을 하질 말던가...

역시 대중은 은행에서 마저도 개 돼지 취급당하는 걸까요?




모든 현상에는 맥락이 있다

그런데 정말 희한하게도

인간 세상의 맥락은 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듯합니다.

이 판결을 주도한 당시의 대법관이

최근 이슈가 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면죄부'와

또다시 연결되어 있었던 겁니다.


4조 원이 넘는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를 찾았는데

그 차명계좌는 금융실명제에 위배되므로

1천억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금융실명제를 수호해야 할 금융위원회의 수장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차명계좌는 비실명 자산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실명제에 따른 실명전환 대상이 아니다


차명도 누군가의 실명이기 때문에 비실명 자산은 아니다.

따라서 실명전환 대상도 아니고 금융실명제 위반이 아니다.

삼성에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겠다.

이런 논리입니다.

 

그런데 금융위원장의 이 황당무계한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1997년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판례를 끄집어내었는데

이 판례의 주인공이 바로 '금융기관의 고정금리 변경권'을 주장한

그 그 그 대법관이었습니다.


그 대법관의 판결 성향은 여러 스펙트럼을 띠겠습니다만,

유난히 정치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일반 사람들의 평범한 상식보다는

중앙과 권력과 체제와 기관을 보호하려는 

보수적 관점이 짙게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변하면 상식도 바뀌고

상식이 바뀌면 법도 바뀌기 마련인데

2018년 지금 대한민국의 상식은

'고정금리도 변동한다'는 궤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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