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살리기 #5
서울 토박이지만 어찌어찌 지방에서 15년을 살다가 올해부터 다시 서울시장 투표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치나 선거에 대해 아주 높지도 아주 낮지도 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소심한 보통사람 중 하나인데요,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왔던 매우 신선한 공약 하나 때문에 박원순이라는 인물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서울페이.
서울에서 장사하는 소상공인들에게 수수료 제로의 무신용카드 결제시스템을 제공한다는 공약입니다. 박원순 후보가 이 콘셉트를 시장선거의 공약으로 선언하자, 경남페이, 인천페이, 전남페이 등 서울페이와 동일한 콘셉트로 지역 단위 제로 수수료 결제시스템을 시행하겠다는 이야기들이 줄줄이 뒤를 이었죠.
신용카드를 이용하지 않고도 물건을 구매하는 방법은 현금, 송금, 체크카드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신용카드 결제 비중이 높은 나라를 찾기 어렵습니다. 신용카드가 없으면 아예 물건을 못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니까요. 이러다 보니 박원순 시장의 무신용카드 결제시스템, 게다가 수수료를 제로로 제공하겠다는 반자본주의적(?) 공약에 대해 매우 뜨거운 찬반 논란이 불타오르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논란의 진행 방향이, 현 정부의 서민지향 정책에 대한 반감과 박원순 시장 개인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섞어, 애써 "실패한 정책"으로 만들기 위해 왜곡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른바 쫌 안다고 하는 금융전문가들과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공격을 더욱 신이 나서 하고 있는데, 카드업과 은행업을 수십 년간 눈 앞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서울페이와 관련된 여러 논란에 대해 매우 자본주의적이고 시장원리적인 관점으로 짚어볼까 합니다.
내용이 길어질 겁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나시면, 우리나라 금융업의 숨겨진 비밀은 물론 핀테크의 핵심 영역인 "페이먼트 비즈니스"에 대해 눈을 뜨실 수 있으리라 감히 생각합니다.
정책은 그 효과의 "크기"가 중요합니다.
가급적이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능하다면 보다 큰 영향을 주는 정책이 의미 있겠죠.
1년에 13조 원.
신용카드사가 1년 동안 가맹점으로부터 받아내는 돈입니다.
한국은행이 발간한 2017 지급결제 보고서에 의하면 신용카드로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해 결제하는 금액이 1일 평균 1.76조 원입니다. 365일을 곱하면 1년에 642조 원이죠.
여기에 여신금융협회가 발표한 2017년도 평균 신용카드 수수료율 2.08%를 곱하면 13조 3천억 원이 됩니다.
크죠.
개별 소비자들이 편리하게 물건을 사는 대가로 가맹점(매장)은 1년에 13조가 넘는 수수료를 물품 결제를 위한 비용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이 국내에서 사용하는 카드 사용액을 무시한다면, 한국의 경제활동인구 2천7백만 명이 1인당 매년 50만 원 가까운 수수료를 카드회사로 꼬박꼬박 주고 있는 거죠.
가맹점의 입장에서 이 수수료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점이나 편의점 같은 오프라인 매장은 물론, G마켓이나 11번가에서 물건을 파는 온라인 오픈마켓의 셀러들은 카드 결제 비중이 90%가 넘습니다. 결국 이들 소상공인들은 매출액의 거의 2%를 결제비용으로 지출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들 업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어느 정도인가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NABO 경제동향에 의하면 도소매업의 영업이익률은 2006년 7.5%에서 2016년 4.2%로 둔화되었고, 숙박 및 음식점업의 영업이익률은 25.1%에서 11.4%로 둔화되었다고 합니다.
10년 만에 반토막 난 겁니다.
만약 도소매업종이 카드결제 수수료 2%를 제로(0%)로 면제받게 되면 영업이익률 4.2%의 50%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고, 숙박 및 음식점업은 11.4%의 20%가 증가하는 기댓값을 갖게 됩니다.
모든 자영업자들이 이와 같은 효과를 보지는 못 하겠지만, "평균적"으로는 이에 수렴하는 고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요.
가뜩이나 요즘 장사 안된다고 난리인데 자영업자들의 매출액을 평균적으로 20~50% 증가시키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기대되는 이 정책이 정말 잘못된 것일까요?
"영세"의 기준을 연매출 3억으로 정하는 법적 기준이 있는데요, 동네 웬만한 피자집이나 장사 좀 되는 치킨집들은 아마 이 정도 매출이 나올 겁니다. 그런데 연매출 3억의 2%면 6백만 원입니다. 파트타임 알바 1명은 충분히 구해서 사장들이 조금이나마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내는 돈이고, 대학 다니는 자식의 1년 등록금에 해당하는 큰돈입니다. 매출 규모가 크고 카드결제 비중이 높은 주유소나 여행사의 경우에는 절감액의 크기가 1천만을 훨씬 웃돌 수 있겠지요.
서울페이는 그 기대효과와 파급범위가 매우 큰 획기적 정책인 것입니다.
신용카드 수수료의 부과 근거로 VAN 비용을 드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 부분에 대한 원가부담은 크지 않습니다. 카드수수료 2%에서 VAN 수수료의 비중은 끽해야 그 10% 정도인 0.2% 내외에 불과하고 카드자재 발급과 배송 비용은 무시해도 될 수준입니다.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입장료 할인, 항공 마일리지 적립과 같은 우대혜택 제공에 들어가는 비용이 꽤 발생하지만 그건 카드회사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지 "원가"라고 보기에는 어렵지요.
신용카드 수수료의 근원적 부과 근거는 "30일 무이자 외상"의 대가입니다.
지갑을 늘 가슴에 품고 다니던 옛날(?)에는 플라스틱 카드 한 장만 있으면 아무 불편 없이 상품구매가 가능했고 신용카드 시스템은 여기에 딱 들어맞는 매우 편리한 결제수단이었지요. 그 편리함 만으로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에 충분했고 가맹점들은 카드 구매를 선호하는 소비자의 힘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손에 모두 쥐어진 이후, 플라스틱 카드 기반의 신용카드는 편의성 측면에서 그 경쟁력을 현저히 상실하게 됩니다.
요즘 버스나 지하철 탈 때 별도의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사람 많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NFC와 연동시켜 "물리적 플라스틱 카드" 없이도 삑~하고 결제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갤럭시 사용자는 삼성페이를 이용하여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얼마든지 물건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굳이 지갑을 들고 다니거나 신용카드를 꽂고 다닐 이유가 없어진 겁니다.
스마트폰이라는 요술 단지는, 전자사전과 카메라와 내비게이션 제조의 비즈니스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림은 물론, 무려 70년간 신용카드가 자랑해온 "편리함"이라는 경쟁요소도 날려 버린 것이죠.
남은 것은 오직 "외상의 금융비용" 뿐입니다.
신용카드는 "단기 소액 무이자 대출"을 함께 제공하는 일종의 대출 상품으로서, 편익은 소비자가 취하고 대출이자는 가맹점이 대신 부담하는 기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용카드가 처음 세상에 선보일 당시의 슬로건이 "Buy Now, Pay Later"입니다. 소비자의 가수요(외상)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핵심 콘셉트임을 스스로 천명한 것이죠.
그간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SSG페이, L-페이, 페이코 등 수많은 비금융 플레이어들이 결제시장 진출에 도전했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이 "외상시스템"을 만들어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출"이라는 라이선스 비즈니스를 커버할 수 없는 업종 자체의 한계에 기인한 것이죠.
신용카드사가 가맹점으로부터 취하는 2%의 수수료는 소비자에게 1달간의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신용"의 대가입니다. 그런데 1개월 동안 대출해주고 2%를 받는다면 1년이면 몇% 가 되는 걸까요?
네 맞습니다.
신용카드 수수료를 대출이자로 환원하여 계산해 보면 월 2% x 12개월 = 연리 24% 나 되는 초고금리 이자의 대출상품이 됩니다.
너무 비싼 거죠.
수수료율이 지금 많이 떨어져서 이 정도지 옛날엔 3%가 넘었고 연리로 환산하면 30% 넘어가는 사채업의 일종이었습니다.
요즘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19세 이상 전 국민의 90%가 300만 원까지 신청 가능하다는 카카오뱅크의 비상금 대출이 최저 연 3.64%를 제공합니다. 신용도가 좀 낮은 분이라 하더라도 10%까지 올라가지는 않겠죠. 그런데 신용카드회사는 고작 한 달에 300만 원~500만 원 빌려주는 대가로 무려 연 24%의 이자를 뒤로 챙기고 있던 겁니다.
사회적 신용시스템이 미흡한 국가는 이러한 외상 서비스에 대한 부실이 크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는 신용카드 비즈니스 자체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공짜 외상을 섣불리 주기엔 떼어 먹힐 위험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우리나라는 전 국민에 대한 ID(주민등록번호)가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고, 이 ID를 바탕으로 금융거래의 신뢰도를 측정하여 "역사에 남기는" 신용평가시스템이 매우 잘 갖춰져 있습니다. 고작 카드대금 몇백만 원 떼어먹고 평생 동안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 살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실제 우리나라 카드회사의 연체율은 2%를 넘지 않습니다. 1년 내내 공짜 외상 뿌려줘도 끽해야 2% 정도의 손실만 발생할 뿐이지요. 명색이 대출이니 종잣돈이 필요할 텐데 평균 조달금리도 연 3%를 넘어가질 않습니다.
반면에 가맹점 수수료라는 간접 이자로 벌어들이는 돈은 24%나 되니 어지간한 부대비용이나 마케팅비 감안해도 이건 완전히 남는 장사인 거죠.
그렇다면 서울페이는 어떤가요?
서울페이에는 외상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통장에 돈이 있을 때에만 결제가 되니 외상값 못 받아서 돈 떼일 걱정이 전혀 없지요. 외상의 대가로 지불해야 할 리스크와 자금조달의 금융비용이 없다는 이야기고, 서울페이가 제로 수수료를 제공할 수 있는 가격산정의 원리가 내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정책이라 마케팅비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 외상의 가치를 무시하고 나면 수수료 제로를 만들기 위해 남는 것은 오직 이 시스템을 돌리기 위한 "인프라" 비용뿐입니다.
서울페이의 인프라는 기존 신용카드회사의 VAN을 이용하지 않고, 우리 국민이 수십 년간 늘 이용해 온 은행 간 송금 시스템을 활용합니다.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으로 누군가에게 송금을 보내는 것과 똑같이, 물건을 살 때 나의 통장에서 매장 사장의 통장으로 물품대금을 직접 송금하는 방식이죠. 이른바 계좌 to 계좌 결제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으로 송금하면서 수수료 내는 분들 있으신가요? 만약 그러시다면 TOSS라는 앱을 사용해 보시지요. 한 달에 5번까지는 공짜로 돈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맘에 안 드시면 주거래은행 한번 바꿔 보면 어떨까요?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는 송금수수료 완전 무료이니까요.
은행의 송금수수료는 이미 제로가 된 지 오래입니다.
은행들이 온라인 상에서 고객의 송금 요청을 처리해 주는 거래 원가를 무시한다면, 서울페이가 지향하는 제로 수수료의 논리적 근거는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입니다. 서울페이가 과연 활성화될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결제수수료 제로는 자본주의 시장원리는 물론 금융의 메커니즘에 충실히 부합하는 매우 상식적인 정책임이 분명합니다.
서울페이는 은행의 송금 인프라를 사용합니다. 만약 은행들의 송금 거래 원가가 높다면 서울페이는 은행들의 희생을 강압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면 은행의 송금 거래 원가는 도대체 얼마일까요?
금융결제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은행과 증권사들이 서로서로 돈을 주고받을 때 이용하는 온라인 네트워크인 "금융공동망"을 관리하지요. 은행들은 이 금융공동망을 이용해서 돈을 주고받습니다.
A은행을 거래하는 사람이 똑같은 A은행을 거래하는 친구에게 1만 원 보낼 때에는 이러한 금융공동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A은행의 내부 시스템에서 한쪽 통장은 1만 원 줄이고 또 다른 통장에 1만 원 늘려주면 끝나니까요.
이건 그야말로 원가 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A은행에서 B은행으로 돈을 보낼 때에는 서로 다른 2개의 은행을 연결해서 쌍방의 거래장부를 동시에 바꿔주는 기능이 필요합니다. 이 기능을 처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요, 가장 간단한 것은 2개의 은행이 미리 약속된 방법으로(프로토콜이라고 합니다) 통신망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SK텔레콤 고객이 KT 고객과 무선 통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양 회사가 서로 같은 프로토콜의 교환기를 설치해서 상대방의 전화요청에 대응해 주기 때문인데, 은행도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국에는 은행이 너무 많습니다.
A은행이 B은행 하고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C, D, E, F, G, H, I..... 수십 개의 은행과 거래를 터야만 하고, 다른 은행도 또 다른 은행과 서로서로 각각의 통신망을 연결해야만 하죠.
비효율적입니다.
그래서 금융결제원이라는 공동 교환소를 만들어 낸 것이죠. 어떤 은행이건 금융결제원이 정한 프로토콜을 따르기만 하면 수십 개의 다른 은행과 자동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으로 송금거래를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은행들의 송금거래 원가는 이 금융결제원이라는 공동 교환소를 이용하는 비용이 얼마인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이용해서 처리되는 서울페이 시스템에 은행 직원들의 인건비나 오프라인 영업점 운영비를 갖다 붙일 명분은 전혀 없을 테니까요. 이조차도 꼭 원가에 넣어서 받아야겠다는 탐욕스러운 은행이 있다면, 차라리 그 은행의 예금과 대출을 몽땅 빼서 다른 은행으로 옮겨 타는 캠페인을 하는 것이 옳아 보입니다.
뭔가 매우 정부기관 같은 느낌이 강합니다만 금융결제원은 수십 년 전에 은행들끼리 모여 만든 사단법인입니다. 재미있게도 최대주주는 한국은행이고요. 그런데 일반 법인이 아니다 보니 재무제표 같은 자료들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인데, 다행히 구글을 통해 몇 가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금융위원회가 4월에 발표한 금융결제원 종합감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금융결제원은 금융기관들로부터 갹출하는 회비가 주요 수입원인데 이중에 어음교환, 지로, 전자금융과 관련된 실적 회비라는 것이 있더군요. 각 금융기관들이 처리한 건수에 따라 적당히 분배하는 모양인데 2017년도에 약 866억 원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이 회비 중 거래량이 가장 많은 것은 역시 금융공동망을 이용한 송금(은행 용어로는 이체) 거래인데요, 한국은행의 지급결제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기간에 약 60억 건 정도 되더군요. 어음교환과 지로라는 또 다른 항목이 있습니다만 최대한 보수적으로 보기 위해 그냥 무시하겠습니다.
866억원을 60억건으로 나누어 계산한 송금거래 1건당 은행의 지급비용은 약 14원이 됩니다. 실적 회비를 보다 세부적으로 분류하고 은행 간 송금거래만을 따로 떼어내서 계산하면 이보다 훨씬 싸게 계산될 것이고 아무리 후하게 원가를 쳐줘도 은행 간 송금거래 원가는 10원 언저리가 될 겁니다(관심 있는 국회의원 분께서 은행들이 금융결제원에 납부하는 실적 회비 현황에 근거하여 은행 간 송금거래 원가를 조사해 보시면 아마 10원보다 훨씬 낮은 숫자가 나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여기에다 서울페이를 이용하는 고객도 A은행이고 가맹점의 입금계좌도 A은행으로 서로 같은 경우에는 아예 0원의 원가가 발생하므로 평균적인 거래 원가는 10원보다 훨씬 낮아지겠죠.
고작 10원입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도 3천 원은 되고, 식당에서 밥 먹으면 5천 원 훌쩍 넘으며, 온라인에서 물건을 사도 1만 원은 넘습니다. 실제 신용카드 1건당 평균 거래금액은 2017년 기준 5,400원 정도 하는데요, 이를 기준으로 은행의 송금거래 원가 10원을 대입하면 약 0.2%에 해당하는 수수료율이 나옵니다.
신용카드 수수료율의 10분의 1인 것이죠.
0.2%라는 숫자는 매우 의미 있고 상징적인 숫자인데요, 유럽연합에서는 은행이나 신용카드회사가 독점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함에 따르는 소비자 관점에서의 부정적 효과를 제거하고, 핀테크 등 신기술 기반 금융서비스의 확산을 장려하기 위해 PSD2(Payment Services Directive 2)라는 지급결제 가이드라인을 법제화하여 시행 중에 있습니다.
PSD2에서는 금융기관이 아닌 핀테크 사업자가 지급결제 서비스를 하고자 할 때 기존 금융기관이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하여 진입장벽을 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용카드 및 직불카드(Debit Card) 기능을 사용하는데 따른 수수료 상한선을 명시해 두었습니다.
신용카드는 0.3%, 직불카드는 0.2%입니다.
서울페이는 신용카드 인프라가 아닌 은행의 인프라를 사용하는데 직불카드가 바로 은행 인프라를 이용한 지급결제 시스템의 대표적인 것으로서, 유럽연합의 경우 은행 인프라를 이용한 지급결제 최대 원가를 0.2%로 보고 있는 것이죠.
박원순 시장과 서울페이 추진팀은 아무래도 아이템을 보다 선명하게 설명하기 위해 "제로,0%"라는 자극적인 슬로건을 붙였겠지만, 불필요한 마찰과 오해를 줄이기 위해 0.2%로 낮추거나 아예 "10원 페이"로 바꾼다 하더라도 정책 효과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제로 페이 정책을 계속 유지해도 특별한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되는 것이, 은행들은 2017년에 무려 11조 원이 넘는 세후 당기순이익을 쓸어 담았습니다.
고작 866억(당기순이익의 0.8%) 밖에 안 되는 금융결제원 분담금 때문에 은행이 망하니 어쩌니 하는 말을 하기엔 무척 쑥스러울 것이고, 금융결제원 입장에서도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아 낸 돈(1,285억)의 절반을 인건비(639억)로 지출하는 구조에서 수수료를 올려 받기에는 스스로 많이 부끄러워질 겁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돈을 벌어 온 은행들이 진정 따뜻한 금융이나 고객과의 동반을 원한다면, 이 정도는 사회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나누어 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제로 페이처럼 은행들이 기존에 관행적으로 수취하던 수수료를 새로운 시대정신에 근거하여 소멸시키거나 대폭 감면시킨 사례가 또 있습니다. 바로 아파트 대출받을 때 발생하는 "근저당 설정비"입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은행에서 부동산 담보대출받는 금융소비자들은 너무나 당연스럽게 수백만 원의 설정비를 스스로 부담했습니다.
그런데 2008년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은행 여신거래약관을 개정하며 근저당 설정비는 소비자가 아닌 은행이 부담하는 것이 "새로운 상식이다"라고 정의하였고, 이후 은행들은 법정 소송까지 하며 저항했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은행의 "이익 추구를 위한 필요 비용"으로 흡수되어 시장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때 당시의 은행 분위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손실비용만 2,000억... 공정위 결정에 불복 행정소송 제기]
16개 시중은행들이 부동산 담보대출의 근저당 설정비를 은행에서 부담하도록 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일부 특수은행들을 제외한 모든 은행들이 공정위 결정에 불복한다는 행정소송을 냈다... 고객 요청과 필요에 의해 대출이 이뤄지는데도 관련 비용을 은행에서 부담하는 것은 ‘사용자 부담원칙’에 어긋난다... 선진국 어디에서도 담보대출에 대한 설정비를 은행이 부담하는 사례는 없다... 은행들은 이 약관이 시행되면 연간 1,000억~2,000억 원가량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결국 그 비용은 대출자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은행 관계자는 신용이 부족한 고객들에게 담보를 설정하고 대출을 해주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은행이 부담하라는 것 자체가 금융시장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경제]
선진국의 사례니, 사용자 부담원칙이니, 금융시장의 원칙이니 하며 온갖 엄살을 부렸지만 이 제도가 생기고 나서 은행들이 다 망하게 되었나요? 은행은 이 정도 푼돈에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버티는 강력한 "이익 모델"을 가지고 있는 라이선스 산업입니다.
서울페이는 은행들의 팔을 비트는 무리한 관치 사업이 아닙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흥해야 같이 흥하는 중개업자라는 숙명을 가진 은행업이, 저성장이 노멀화 된 세계 경제 상황 속에서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물어보는 시대의 화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장의 소소한 손실에 우왕좌왕하기보다는, 새로운 시대변화를 이용하여 고객에 대한 금융서비스의 가치를 어떻게 높일지 고민하는 것이 은행 스스로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상식적인 전략이 아닐까 보이네요.
서울페이에 대한 가장 타당하고 의미 있는 공격논리는, 신용카드의 "무이자 외상" 습관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이 과연 서울페이로 갈아탈 것인가 입니다.
QR코드는 사용자 경험이 조금씩 쌓이면 풀릴 가능성이 있고, 우대 및 할인 혜택도 여러 사업자들과의 제휴를 통해 맞춰 나갈 수 있겠지만, 외상은 아예 해결책이 없습니다.
소규모 가맹점의 숫자가 몇백만이고 그들의 가족들이 우호적으로 사용할 것이라 주장하여 억지로 사업 성공의 당위성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만, 신용카드가 제공하는 핵심 서비스가 사라지는 부분은 사용자 확대를 어렵게 하는 명백한 결점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시죠.
발급받은 시점에 딱 한 달어치 먼저 사는 것이 신용카드입니다. 그거 딱 한번 하고 나면 어차피 매달 비슷한 금액을 쓰는 관성만 남아 있을 뿐 특별한 메리트가 없습니다. 딱 한번 시작한 외상거래가 영원한 외상거래로 강제화 되는 구조인 거죠.
우리는 대출을 받는 행위 자체를 금융기관으로부터 수혜를 받는 것으로 오랫동안 생각해 왔습니다. 승용차나 집을 살 때 목돈을 모아 단번에 사는 것은 매우 어렵지요. 해당 재화나 서비스의 사용가치를 생각해 보면 다소의 이자를 부담하더라도 지금 당장 내 손에 넣고 그 가치를 향유하는 것이 훨씬 가성비 높은 소비방식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필요할 때 대출을 받아 현금을 유통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혜택이라 할 수 있고 대부분의 금융 소비자들은 은행에 대출 신청할 때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지요. 대출의 공급량보다 수요량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이른바 대출 권유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요. 은행을 가도 대출상품 안내장이 도배되어 있고, 카드사는 카드론이나 리볼빙 서비스를 강권하다시피 하고, TV에서는 대부업체의 CM송이 늘 흘러나옵니다.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돈을 빌릴 수 있는 세상이 된 겁니다.
여기에 수십 년간 이어진 아파트 투자 붐으로 가계부채는 GDP 규모에 맞먹는 1,400조를 넘어섰고 빚이 없는 가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빚과 대출에 대한 관점은 다를 수 있지만 현재의 상황이 "과도하다"는 점에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신용카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매달 매달의 카드 사용액이 월급보다 항상 많아서 계속 빚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면 모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한 달짜리 외상 없이도 캐시플로우에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IMF 이후 소비 증가를 통한 경제활성화와 과세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소득공제 혜택까지 주면서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했지만, 이로 인해 만성화된 과도한 외상 문화에 대해 이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타이밍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https://brunch.co.kr/@humaneheart/25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입니다.
신용카드사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우대 및 외상 혜택은 가맹점 사업자들에게 매달 2%씩 뜯어가는 수수료에 기반합니다. 연리로 따지면 24%에 달하는 고금리의 이자를 누군가는 부담해야 하는 것이고, 그 이자부담은 결국 상품 가격에 전가되어 소비자에게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너무 쉽게 빚을 권하는 금융회사를 "약탈적"이라 주장해 온 제윤경 국회의원은 "대한민국의 빚을 해결해야 빛이 보인다"는 말도 했더군요. 주로 부동산 투기와 연관된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이슈를 들었지만 사실 이러한 빚 권하는 사회문화는 신용카드 외상거래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신용카드는 빚입니다.
그것도 매우 비싼 고금리를 물리는 제2금융권의 빚입니다. 나는 이자를 내지 않지만 누군가 그 이자를 대신 내야만 합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우리의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인 동네 가게 사장님인 것이죠. 국가적 성장이 정체되고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그 동네 가게 사장님들의 생계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생계가 어려워지면 결국 나의 가족과 나의 친구와 나의 지인들이 무너지는 것이고, 그 피드백은 결국 나에게 돌아옵니다.
서울페이는 이러한 약탈적 외상 문화를 바로 잡는 "건전 소비 캠페인" 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과소비가 부자를 만든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통장의 잔고 내에서만 돈을 쓰는 합리적 소비문화를 권장하는 서울페이는 여러분이 부자가 될 확률을 분명히 높여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결제에는 외상이 들어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 페이는 외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일까요?
서울페이가 사용하는 은행 간 계좌 이체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자동이체와 자동납부를 지원합니다. 은행의 자동이체와 자동납부는 "결제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미리 정해두는 기능이지요.
특정한 서울페이 가맹점이 매출 증대 등의 자기 이익을 위해 일주일이건 한 달이건 물건이나 서비스는 먼저 주고 돈은 나중에 받겠다고 선언 하면 어떻게 될까요? 실시간 이체가 아닌 후불 자동이체 기능을 이용해서 거래일로부터 30일 이후에 입금을 받겠다 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서울페이의 계좌 이체 기반 시스템은 가상계좌를 부여받아 물품대금을 입금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가상계좌 입금 방식은 구매자가 돈을 보내는 행위를 입금 시점에 적극적으로 결정해야 하므로 이 방식을 이용해서 나중에 돈을 받겠다고 하면 아마 대부분 망하고 말 겁니다. 돈을 보내는 사람이 일정표에 적어 두고 딱 그 날에 맞추어 보내야 하므로, 잊어버리기도 쉽고 변심의 가능성도 높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계좌 이체 후불 방식은 이미 "지급 및 인출 지시"가 완료된 상태에서 해당 지시의 수행 시간을 특정 시간 이후로 잠시 미루어 두는 것입니다. 보이스피싱 등을 막기 위한 지연인출 제도와 똑같은 것이라 보시면 되지요.
이 경우 해당 인터벌 내에 적극적인 "지급 및 인출 거절"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하지 않으면 은행은 해당 시점에 자동적으로 돈을 인출하여 판매자의 계좌로 입금해 줍니다.
이 방식이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지금 사용하시는 신용카드 대금의 납부방법은 어떠한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카드 결제일 직전에 결제계좌의 잔액을 또 다른 자신의 계좌로 옮겨 놓으면 카드사는 돈 못 받는 것 아닌가요?
이 방식의 경우 해당 외상기간 동안 별도의 이자나 수수료를 추가로 받거나 가격에 전가시키면 대부업을 영위하는 것으로 판정되어 법률 위반의 소지가 있겠습니다만, 단골 고객이나 첫 구매 고객 등 특정한 판매 목적이 있는 경우 별도의 이자 없이 무료로 외상을 제공해 주는 것은, 일반적인 경상거래 관행에 비추어 보아 법적인 문제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해당 시점에 구매자의 계좌 잔고가 부족하여 입금되지 않을 경우 페이 사업자가 대신 보상하지는 않겠습니다만,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민상법상 계약관계는 명백히 존재하므로 별도의 방법을 통해 채권을 회수할 수 있겠지요.
아무리 구조를 잘 짜도 떼어 먹힐 가능성은 분명히 상존하겠지만, 판매가 증진되어 영업이익이 증가한다면 해당 손실을 커버하는 BEP 구간은 분명히 존재할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신용카드의 손실률은 2%가 채 안되고, 요즘은 은행보다 개인의 신용평가를 더 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핀테크 기업이나 P2P 대출 회사들이 있으니 누군가는 은행의 도움 없이도 적절하게 가동되는 "외상 스코어링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서울페이 활성화를 위한 대안 제공 차원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지만, 건전한 소비문화를 추구한다는 원론적 관점에서는 굳이 이러한 편법 없이 "즉시결제"가 보편화되기를 희망합니다.
최근 쿠팡은 로켓페이라는 자체 간편 결제 시스템에 대한 프로모션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로켓페이로 결제하면 2% 적립이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지요. 그런데 로켓페이 프로모션의 내용을 제대로 살펴보면 "계좌이체" 방식으로 결제해야만 2% 적립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신용카드 결제분에 대해서는 적립 혜택을 주지 않고 오직 계좌이체 방식의 경우에만 적립금을 주는 거죠.
이 로켓페이 계좌이체 방식이 바로 서울페이의 계좌 to 계좌 방식과 동일한 겁니다. 카드거래 수수료 2%를 카드사에 갖다 바치느니 차라리 고객 혜택으로 돌려주는 정책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쿠팡은 서울시처럼 공적 권한을 등에 업고 은행과 협상할 수 없어서 거래 건당 몇백 원의 비싼 계좌이체 수수료를 부담하고 있겠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PSD2와 같은 시대정신이 현실에 녹아들어 건당 10원이나 0.2% 수준의 "상식적인" 계좌이체 수수료가 정착되면 엄청난 수익성 개선 효과를 거두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카드사들은 얼마 정도의 혜택을 회원들에게 돌려주고 있는 걸까요?
카드사들이 내부자료의 공개를 꺼려하고 있어서 거래금액당 몇 %의 혜택을 회원들에게 환원시키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대략 0.5%~1.0%의 범위 내에 들어올 것으로 보입니다. 연체로 인한 손실률이나 VAN사용료, 신규 유치 영업에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과 인건비를 감안하면 이보다 높은 수준을 제공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테니까요.
반면 서울페이는 제로 수수료를 구현하므로 개별 가맹점 단에서 제공할 수 있는 우대와 할인의 폭을 최대 2%까지 확장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여러 이유들로 인해 연매출 5억 원 이하인 영세사업자인 경우에만 0%를 제공하고, 10억 원 이하는 0.5%의 수수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는 듯한데, 굳이 영세나 소상공인 같은 "서민" 필터링을 하지 않아도 이론적으로 대한민국의 카드 가맹점들은 제로페이로의 전환을 통해 평균 2% 수준의 우대와 할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룸이 열리게 됩니다. 카드사에 2% 빼앗길 바에야 차라리 판매 가격을 2% 싸게 해서 직접적인 고객 혜택을 늘리는 것이 매출을 늘리는 상식적인 마케팅 전략 아닐까요?
카드사가 제공하는 우대와 할인 혜택은 앞으로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고, 쿠팡처럼 카드수수료에 민감한 대형 사업자들은 서울페이와 같은 대안적 결제 수단에 대해 더욱 강한 프로모션을 진행할 겁니다. 어쩌면 신용카드 엑소더스의 연합군이 형성될지도 모르죠.
연간 13조 원에 이르는 신용카드 수수료는 거꾸로 얘기하면 대한민국 가맹점들이 1년에 투하할 수 있는 할인 마케팅의 투자액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딱 1년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용카드 수수료가 완전히 없어지는 그날까지 수년간 계속 누적적으로 발생하는 수십조 원짜리 마케팅 종잣돈인 것이죠.
서울페이는 딱 한 줄의 슬로건만 강조하면 됩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온오프라인 가맹점 사업자 여러분~
1년만 손 잡고 함께 하시면 평~생 카드수수료 사라집니다!
서울페이의 시작은 영세사업자와 소상공인들로부터 시작하겠지만, 이로 인해 소비자들의 사용경험이 조금씩 쌓이고 일상적인 결제 방식으로 정착된다면 1건당 결제금액이 큰 주유소와 여행업계 같은 소매형 대량거래처는 알아서 발 빠르게 도입할 것이고 대형마트나 백화점들도 언젠가는 "정직하고 상식적인" 결제시스템에 동참하게 될 겁니다.
서울페이의 콘셉트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무렵 상당히 많은 수의 전문가들이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 상의 신용카드 차별 불가 조항을 들어 서울페이는 시행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법적으로 신용카드 거래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1) 신용카드 이외의 수단을 강제로 권유하거나,
2) 가격을 이원화 하여 보다 싸게 팔거나,
3) 타 결제수단에 특별한 혜택을 주면
법 위반이 된다는 주장이지요.
여전법에 있는 문제의 조항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제19조(가맹점의 준수사항) ① 신용카드 가맹점은 신용카드로 거래한다는 이유로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신용카드 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한다.
제70조(벌칙) ④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19조 제1항을 위반하여 신용카드로 거래한다는 이유로 물품의 판매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거절하거나 신용카드 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한 자]
법조항만 보면 정말 신용카드로 거래 안 하면 징역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이런 법은 왜 생겨난 것일까요?
신용카드 사용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 여전법 자체가 개선이 필요한 '낡은 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법은 가맹점이 탈세 목적으로 현금 사용을 강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최근 도입되고 있는 간편 결제는 탈세 등의 목적이라기보다 결제 기술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서비스로 볼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존의 신용카드 결제보다 간편하면서도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이에 따라 결제 기술의 발전을 감안해 해당 법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G마켓이 도입하려다 보류한 계좌이체 방식의 페이 서비스를 이미 하는 곳도 있다. 예를 들어 쿠팡은 계좌이체 방식의 '로켓페이'를 운영하면서 2% 적립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쿠팡 관계자는 "로켓페이는 출시 당시 마케팅 차원에서 적립금을 제공했고, 현재는 첫 사용 고객에게 한시적으로 혜택을 준다"며 "로켓페이가 가능한 수단으로 신용카드를 추가하고 있고, 무통장입금 고객 등에게는 혜택을 주지도 않는 만큼 현금결제를 유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도 "해당 법의 위반 여부는 가맹점이 신용카드 사용을 막고 현금결제를 유도하기 위한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여전법이 계좌이체 방식 등 새로운 서비스와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신용카드사 입장에서야 나쁘지 않지만, 결제 시장의 발전 측면에서는 또 하나의 규제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여전법 이슈를 매우 잘 정리해 놓은 기사입니다. 계좌이체 방식의 새로운 결제 방식은 소비자의 편의와 혜택을 제공하는 하나의 "기술"일뿐 매출 누락이나 부가세 회피를 위한 "탈세"가 그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설명하고 있지요.
게다가 신용카드와 계좌이체 방식 간의 수수료 차이를 고객 혜택으로 환원시키는 모델은 국가 기관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전력의 자동납부 시스템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전이 주식시장에 상장된 민영기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한민국 정부 18%, 한국산업은행 33%, 국민연금공단이 6%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대주주"인 공기업입니다.
이런 한전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전기요금 자동납부 안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전기요금 자동납부]
예금계좌 또는 신용카드 자동납부를 하실 수 있습니다.
신청방법 : 한전 사이버지점에서 공인인증서로 신청
할인 혜택 : 전기요금 1% 할인 (1,000원 한도)
신용카드 자동납부는 전기요금 1% 할인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국가가 주인인 공기업에서 "신용카드 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는 명백한 여전법 위반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사례는 우리에게 2가지 사실을 분명히 인지시켜 줍니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가맹점(매장) 입장에서는 공기업이건 영세사업자건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이 생각보다 매우 크며, 계좌이체 방식을 통한 결제는 탈세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여전법의 입법 취지는 "투명한" 결제수단을 정착시키기 위해 "소비자" 입장에서의 사용권을 보장한 것이지, 신용카드 회사들의 영구적인 나와바리를 보장하기 위함은 아닐 겁니다.
우리나라에 신용카드가 본격적으로 보급될 무렵, 용산전자상가처럼 판매단가가 큰 사업장에서는 공공연히 "현금 할인"을 외쳤고, 동네 구멍가게나 조그마한 식당에서는 굳이 POS기를 설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며, 카드깡과 같은 어둠의 비즈니스도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종이 지폐의 완벽한 익명성을 이용하여 매출을 누락하고 부가세를 탈세하려는 세력들이 많았겠지요.
정부는 이러한 부정적 효과를 통제하기 위해 여전법이라는 법적 근거를 만들고, 신용카드의 활성화를 통해 종이 현금을 이용한 음성적 거래를 막으려 한 겁니다.
그런데 이게 계좌이체 방식의 결제시스템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요?
우리나라처럼 금융의 실명거래가 확실하게 자리 잡힌 나라가 없습니다. 계좌 개설 시에는 국가가 발급한 신분증을 이용하여 은행원들이 까다롭게 본인 확인을 하고, 금융정보 분석원에서는 은행 계좌에서 현금 인출이 과다하게 발생하면 해당 내용을 보고받아 거래 내역을 추적합니다. 일단 은행 계좌에 돈이 꽂히면 그 돈의 흐름과 출처는 신용카드와 똑같은 거래 투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서울페이의 계좌이체 방식 결제시스템은 "종이 지폐"로 거래하는 것이 아닌 "은행 계좌"의 기록을 바탕으로 합니다. 은행 계좌는 금융실명제에 의해 소유자와 거래자의 확인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요. 우리가 은행 계좌로 송금을 하면 받는 사람은 물론 보내는 사람의 계좌 정보가 자연스럽게 은행 시스템에 기록됩니다. 신용카드사는 오직 카드대금을 납부했느냐 아니냐의 단순한 정보에 의존해 사용자의 신용 상태를 확인하지만, 은행은 사용자의 예금과 대출 상황을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음은 물론, 계좌에 입금된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통해서 탈세를 할 수 있다고요?
여기에다 사용자가 소득공제 인정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현금영수증 발급이 수반되므로 서울페이로 매출누락이나 뒷주머니 챙기는 방법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여전법의 입법 취지가 탈세 방지에 있다면, 서울페이는 신용카드보다 훨씬 더 강화되고 진화된 솔루션입니다.
서울페이의 구현을 위해서는 은행 말고 또 다른 사업 파트너가 하나 필요합니다. 구매자와 가맹점과 은행을 이어주는 운영주체인 페이 사업자가 그것이지요.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SSG페이, 토스처럼 스마트폰 간편 결제에 주력하는 신흥 세력도 페이 사업자고, KG이니시스나 LG유플러스, 다날 같은 전업 PG 들도 페이 사업자입니다.
Payment Gateway를 줄여서 말하는 PG는 오프라인 POS 단말기를 기반으로 하는 VAN 사업자와 달리, 웹브라우저 채널의 온라인 결제를 처리하는 사업으로 출발했고 스마트폰의 폭발적인 성장에 힘입어 이제는 VAN 사업자를 능가하는 시장지배력을 가지게 되었죠. 이 글에서의 페이 사업자는 PG 라이선스를 가지고 결제사업을 하는 모든 회사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이들은 구매자와 가맹점간의 거래 정보를 연결하고, 기록하고, 보고하는 업무를 수행합니다. 거래 내역이 오류 없이 잘 기록되고 보고되어야 청구서도 보낼 수 있고, 세금계산서도 만들 수 있고, 현금영수증도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오프라인에 기반한 VAN 사업 보다는 운영비용이 아무래도 싸겠지만 어찌 되었건 이들도 최소한의 인건비와 시스템 유지비는 필요합니다.
서울페이도 PG 시스템에 의존하기 때문에 누가 되었건 이 업무를 수행할 사업자가 있어야 하고 이들을 위한 이익 창출 구조가 만들어져야겠지요.
그런데 수수료 제로인 서울페이의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이들을 위한 수익모델은 거의 이슈가 되질 않습니다. 은행들의 계좌이체 수수료 면제가 쟁점이 될 뿐 페이 사업자를 위한 별도의 수수료는 아예 언급조차 되질 않네요.
왜일까요?
PG 비즈니스는 온라인에서의 구매와 결제 정보를 이어주고 연결하는 목적으로 탄생하였습니다. 그런데 결제라고 하는 비즈니스는 필연적으로 돈이 오고 갈 수 밖에 없습니다. PG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페이 사업을 하면 단순히 결제 정보의 유통만이 아닌 돈의 유통에도 개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 돈의 유통과 관련된 파생 비즈니스가 바로 에스크로 Escrow 서비스입니다.
눈 앞에서 거래가 완성되는 오프라인 상점과 달리, 주문하면 한참 후에 물건을 배송받는 온라인 쇼핑몰은 서로가 서로를 믿기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사는 사람은 파는 사람이 제대로 된 물건을 보내줄까 의심이 들고 파는 사람은 사는 사람이 제대로 돈을 치를까 못 미더워 하는 거죠.
페이 사업자는 이러한 온라인 거래에서의 신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에스크로라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일단 구매자가 먼저 돈을 지불하면 물건이 제대로 도착해서 구매자가 확인할 때까지 잠깐 동안 구매대금의 지급을 유보시켜 놓는 방법이지요.
초창기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이러한 "구매확정" 프로세스를 타이트하게 가져갔고 구매확정이 완료되지 않으면 상당히 오랫동안 대금지급이 유보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잠깐 대기" 상거래 관행이 일반화되고 보편화되면서, 지금은 주문 후 5일~10일 정도 후에는 자동으로 구매대금이 판매자에게 입금되는 구조로 진화하였지요. 대한민국에서 어떠한 물건을 주문한다 하더라도 1주일 이내에는 물건이 도착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이 잠깐 대기하는 과정에서 구매자가 먼저 지급한 "돈"은 어디로 가 있는 걸까요?
만약 구매자가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매하면 신용카드사는 보통 1일~3일 후에 가맹점으로 거래대금을 입금합니다. 고객이 구매를 취소하는 경우도 있고, 부정거래 대응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자금 처리를 위한 은행과의 프로세스도 수반되므로 일정 정도의 인터벌을 가져가는 것이죠.
또한 온라인 상거래에서는 반드시 PG 시스템을 경유해야 하는데 신용카드회사는 구매대금을 직접 온라인 판매자에게 주지 않고 PG 회사로 지급을 합니다. 그러면 PG 회사는 다시 그 자금을 1일~2일 정도 "잠깐 대기" 시킨 후 판매자에게 입금해 주지요. 온라인 판매자가 실제 판매대금을 받아가는 타이밍은 구매가 발생한 날로부터 아무리 빨라야 5일~7일 이후입니다.
그런데 만약 판매자가 G마켓이나 11번가와 같은 오픈마켓 셀러라면 그 돈은 또다시 오픈마켓 사업자의 계좌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일단 물건이 배송되는 시간 동안은 무조건 묶이게 되고 구매확정이 등록되지 않으면 또 1주일 정도는 대금지급을 유예시키지요. 쿠팡은 이러한 대금정산 인터벌이 길기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결론은, 페이 사업자는 거래대금의 일부를 자기 자신의 계좌에 유동성 자금으로 파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일평균 거래대금의 1일~3일 치 정도는 항상 "자신의 돈처럼" 들고 다닐 수 있는데, 만약 어떤 페이 사업자가 1달에 1,000억 정도의 거래를 핸들링한다면 하루에 평균 30억 이상의 거래가 발생하게 되고, 이 일평균 거래금액의 1일~3일 치인 30억~100억 정도는 항상 페이 사업자의 법인 계좌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 돈에 손을 대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횡령이지만, 이 돈에 대한 "이자"를 은행과 협상하는 것은 별개의 이슈입니다.
현재 에스크로 결제대금 예치계좌에 대한 별도의 감독 체계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은행들은 유동성 자금 유치에 대한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거액이 들어와 놀고 있는 계좌에 이자를 안 줄 수 없고, 어떤 은행들은 이 돈의 일부를 떼어 내어 정기예금으로 예치할 수 있게 편의를 봐주고 있을 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유동화나 파생상품의 잔기술로 원금을 "재활용"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겠지요. 이 돈은 결국 물건을 판매한 판매자의 돈이지만 중간에 "잠깐 대기"하는 에스크로의 본질적 기능 때문에 페이 사업자들은 공짜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러한 에스크로 계좌의 간접이익을 고객에게 모두 돌려준 사람이 바로 알리바바의 마윈입니다.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몰은 알리페이를 통해 결제가 이루어지고 알리페이는 에스크로 시스템으로 백업됩니다. 위에 설명한 "노는 돈"의 규모가 천문학적 수준으로 확장된 것이 바로 알리페이인 것이지요.
중국의 온라인 마켓 규모가 4천조 원 정도 된다고 하는데 알리바바가 50%를 차지했다 가정해서 매일 5천억 원의 거래가 일어나 3~5일 정도 묵혀있게 되면, 알리바바의 통장에는 평균적으로 1.5조 원에서 2조 원 되는 돈이
매일매일 완전 공짜로 쌓여 있게 됩니다.
보통의 깜냥을 가진 사업자에게 이런 공돈이 생기면 엉뚱한 데에 쓰거나 굴려 먹을 궁리를 하기 십상입니다. 중국은행의 예금 금리가 5% 정도 한다고 보면 가만히 앉아서 1년에 1천억 원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지요.
그런데 마윈은 이걸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우리나라의 MMF와 같은 단기 펀드 상품인 "위어바오"를 만들어 그동안 놀고 있던 돈에 이자를 주기 시작한 겁니다.
그것도 아주 많은 이자를요.
그랬더니 사람들은 딱히 물건 살 일이 없어도 알리바바에 돈을 맡기기 시작합니다. 인터넷 쇼핑몰 업자가 졸지에 은행 노릇을 하게 된 겁니다. 이 위어바오 통장에 쌓여 있는 돈이 얼마인가 봤더니 2017년 상반기에 무려 240조 원. 우리나라 어지간한 은행보다 규모가 더 커버린 거죠.
이러한 압도적인 페이먼트 플랫폼을 통해 알리바바는 소비자 구매행태에 대한 빅데이터를 수집하여 개개인에 특화된 상품 추천 비즈니스를 선도하고 있음은 물론, "결제"라는 금융행위에 대한 데이터 기반의 통찰을 바탕으로, 중국 정부도 성공하지 못했던 개별 소비자에 대한 신용평가 시스템 "즈마신용"을 성공적으로 런칭시켰습니다.
페이 사업자 입장에서는 서울페이를 통해 알리바바의 금융모델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더군다나 서울페이는 구매자 계좌에서 페이 사업자의 계좌로 지체 없이 실시간으로 입금되는 구조입니다. 신용카드사가 잡아먹고 있던 1일~3일의 대기 시간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요. 또한 기본적으로 선불형 결제구조이기 때문에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구매대금의 미입금 문제도 전혀 발생하지 않습니다. 연체나 부도 같은 위험 비용을 제로로 만들 수 있지요.
천지 사방에서 빅데이터를 외치고 있지만 실제 어떤 상품을 누가 얼마나 사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인 "결제 데이터" 보다 유효한 것은 찾기 어렵습니다. 이 데이터만 축적해도 페이 사업자의 투자비용은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을 겁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우리 정부는 굳이 신용카드를 이용하지 않아도 "현금영수증"이라는 제도를 통해 투명한 상거래가 가능하도록 친절하게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현금영수증은 중간에서 이 거래내역을 처리해 줄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거래의 원천이 무비용 기반의 종이 화폐이다 보니 신용카드처럼 원천적인 이익을 취하는 사업자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사업자를 위한 당근이 있어야 했지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정부가 가진 권력의 원천인 "세금"을 조금만 손 보면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정부는 조세특례 제한법을 통해 현금영수증 사업자에 대한 과세특례 조항을 만들고 다음과 같은 먹거리를 만들어 줍니다.
[조세특례 제한법]
제126조의 3(현금영수증 사업자 및 현금영수증 가맹점에 대한 과세특례)
① 현금영수증 결제를 승인하고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사업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세청장으로부터 현금영수증 사업의 승인을 받은 현금영수증 사업자는... 현금영수증 결제 건수 및 지급명세서의 건수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을 해당 과세기간의 부가가치세 납부세액에서 공제받거나 환급세액에 가산하여 받을 수 있다.
현금영수증 1건 처리해주면 일정한 수수료를 주되 그 수수료는 국가가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페이 사업자가 원래 납부해야 할 부가가치세에서 깎아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수료가 얼마인지도 친절하게 정해 놓았지요.
[현금영수증 사업자가 지켜야 할 사항, 국세청 고시]
제6조(현금영수증 사업자 공제금액 등)
1. 종이발급이 있는 현금영수증 9.4원
(2019년 6월 30일 이전 발급분까지는 12.5원)
2. 종이발급이 없는 현금영수증 8.4원
(2019년 6월 30일 이전 발급분까지는 11.5원)
올해는 아직 2018년이니까 종이발급을 하지 않는 온라인 상에서의 현금영수증 1건당 11.5원의 수수료가 국가로부터 지급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세청 자료에 의하면 2016년 현금영수증 발급 건수는 50억 2천4백만 건이었고 대충 10원씩만 계산해도 연간 약 500억에 해당하는 수수료가 세금 면제라는 방식을 통해 페이 사업자에게 지급되었겠네요. 물론 이 사업의 비용 효율성과 기대수익은 그들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이겠습니다만, 서울페이를 통해 기존의 신용카드를 이용한 물품거래건수가 서울페이의 사업자로 이전되면 1건당 10원씩은 현금영수증 수수료를 받아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앞서 언급한 2017 지급결제 보고서를 다시 인용하면, 물품 및 용역 구매를 목적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한 건수가 1일 평균 3천2백만 건입니다. 1년에 무려 119억 건입니다. 여기에 10원을 곱하면 1190억이 되는 거지요.
만약 서울페이가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날려버리고 중국의 알리페이처럼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페이 플랫폼이 된다면 여기에 참여한 페이 사업자는 1년에 무려 1190억의 수입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쯤 되면 국세청은 수수료 수준을 하향 조정하겠지만, 현 단계에서 서울페이에 참여하는 페이 사업자는 1건당 10원이라는 확실한 수익원을 확보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안 통하는 아이템이 바로 QR코드입니다. 중국을 위시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QR코드 기반의 모바일 서비스가 다양하게 펼쳐지는 것에 비하면 한국은 무풍지대라 할 정도로 사용률이 저조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한민국의 교통카드시스템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신용카드는 일단 지갑에서 플라스틱 카드를 꺼낸 다음 이걸 매장 점원에게 전달하고 그 점원은 마그네틱 리더기가 부착된 POS 단말기에 "긁어서 접촉하기" 방법을 통해 결제를 완료합니다. 그런데 교통카드는 RF 혹은 NFC를 이용하여, 지갑에 들어있는 상태 그대로, 혹은 스마트폰에 내장된 기능을 이용하여 그냥 삑~ 하고 근처에 갖다 대기만 하면 결제가 끝나버리지요. 비밀번호 입력 등 별도의 인증 없이 즉시 처리되기 때문에 소액 결제에 국한되어 있긴 합니다만,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이보다 더 편한 방식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대한민국 소비자들에게 이미 익숙해진 이 "비접촉 무선 거래" 방식은 지하철, 버스, 택시, 자판기 등 일상생활의 많은 영역에 스며들어 궁극적인 사용자 경험을 점점 더 강화시키고 있지요. 삼성페이도 결국 이 방식을 최대한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QR코드는 일단 내 스마트폰의 전원을 켜서 어떤 앱을 하나 가동한 다음, 내 결제정보가 담긴 QR코드를 리더기에 갖다 대거나 혹은 매장의 QR코드를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인식해야 하는 복잡성이 가미됩니다. 시간상으로 오래 걸리진 않지만 교통카드보다 몇 단계를 더 거쳐야 하고 아무래도 복잡하다는 느낌을 제거할 수는 없겠지요. 사용자들의 기대 수준이 높아진 대한민국에서 QR코드 방식은 왠지 기술 측면에서의 레벨이 떨어지는 것으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로는,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 QR코드를 이용한 모바일 결제방식의 선행특허가 등록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그 특허권자는 일반 개인이나 페이 사업자가 아닌 "비즈모델라인"이라는 특허전문법인 이었습니다.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한 실시간 무선 결제 서비스를 제공받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2007년에 출원된 이 특허의 내용은 그야말로 포괄적이고 근원적입니다. 특정 부호를 디지털카메라로 읽어서 모바일로 결제하는 모든 방식에 대해 특허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짜여 있지요. 지금 서울페이가 적용하는 방식도 QR코드라는 부호를 스마트폰에 내장된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하여 모바일 상에서 결제하는 구조로서 이 선행특허의 권리 범위를 완전히 회피하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특허전문법인들을 "특허괴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고 해당 특허의 사용권을 획득하거나 공동사업을 진행하는 등의 "공식적 비용 지출"은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다행히 요즘 이 회사는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의 새로운 사업을 자신들이 보유한 특허로 보호해 주는 "특허 천사"를 지향하는 것으로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더군요. 서울페이에 부정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 페이 사업자들은 이와 같은 현실을 고려하여 기존 마그네틱 방식 신용카드 결제시스템에 대한 대항마로 "NFC"를 선택하여 많은 도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지요.
신용카드를 중심에 두고 새로운 간편 결제 시스템을 구상해 봤자 가맹점 입장에서는 특별한 가격 메리트가 생기질 않았고, 외상거래에 대한 솔루션 없이 결제 편의성만을 제공하는 낯선 시스템에 소비자들이 호의적일 이유는 전혀 없었을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QR코드에 대한 인식은 대충 이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QR코드가 중국의 알리바바에 의해 완전히 환골탈태 되어 4차 산업혁명의 필수 아이템으로 갑자기 부각하게 됩니다.
QR코드 결제시스템은 "부호+카메라"라는 간단한 연결고리를 바탕으로 최상의 범용성을 제공합니다. 정사각형의 QR코드 하나에는 4천 개 문자에 해당하는 매우 큰 정보를 가변적으로 담을 수 있고, 전 세계 공통의 생성 규칙으로 누구나 간단히 만들 수 있으며, Quick Response이라는 이름처럼 매우 빠른 인식속도를 제공할 뿐 아니라, 가맹점에서는 별도의 디바이스 구입 없이도 A4 용지에 프린터로 인쇄하면 바로 적용되는 초저원가 방식이며, 무엇보다 모든 스마트폰에 기본 장착되어 있는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하므로 소비자에게 어떠한 추가적 사양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알리페이가 처음에 배포한 QR코드 결제 방식은 가맹점 스스로가 "입금받을 계좌번호"를 QR코드로 만들어 인쇄한 후 매장 계산대에 붙여 놓으면 끝나는 방식이었습니다. 구매자가 매장에 붙어 있는 QR코드를 핸드폰으로 인식하면, 구매자의 알리페이 송금 화면에 해당 매장의 입금 계좌를 자동으로 입력시켜 줍니다. 얼마를 보낼지는 구매자가 스스로 입력해야 합니다.
판매자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알리페이 입금 확인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날아오기 때문에 결제의 완성을 즉시 확인할 수 있구요.
물건 살 때 매장 사장님 계좌번호 불러 받아서 일반 모바일뱅킹 앱으로 결제금액 송금해 주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단순 무식한 방법입니다.
현재 카카오페이가 오프라인 매장에 배포하고 있는 QR 키트라는 것도 노란색으로 예쁘게 만든 종이 껍데기에 가맹점 사장님의 카카오페이 입금 계좌를 QR코드로 만들어 달랑 인쇄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언뜻 보기엔 정말 허접해 보이는 시스템입니다만, 경제적 빈곤층이 많았던 중국에서 인프라 비용이 제로라는 점은 그 모든 불편함을 소멸시키는 파워풀한 소구력을 가질 수 있었지요. 특히 소형식당과 택시를 이용할 때 굳이 현금을 준비하지 않아도 결제가 가능한 알리페이 QR 시스템은 신용카드가 보급되지 않았던 중국 소비자들에게 빠르게 침투해 나갔습니다.
일단 소비자들의 경험이 충분히 쌓이고 나면 후속 시스템 투자는 관대해집니다. 매장이 생성하여 보여주는 QR코드에 결제금액을 연동하는 방식도 등장했고, POS기기에 연결된 QR코드 리더기를 통해 구매자가 자신의 알리페이 계정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면 결제금액을 자동으로 인출해 나가는 반대 방향의 시스템도 만들어졌습니다. 편의성 개선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지요.
서울페이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신용카드수수료를 제로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초창기 일부 사용자들의 불편함은 큰 변수가 되지 않습니다. 핸드폰으로 은행 계좌도 개설할 수 있는 시대이니 전국 수백만의 영세 매장 사장님들이 은행이나 서울시청에 직접 방문할 필요는 없지요. 본인 명의 핸드폰으로 본인 명의 은행계좌만 등록하면 서울페이의 QR코드가 생성되고 이걸 이쁘게 인쇄해서 계산대 옆에 붙여놓기만 하면 됩니다. 이후 사업이 조금씩 돌아가게 되면 조금 덩치가 큰 매장이나 서울시와 제휴를 맺은 가맹점들에서는 기존 POS기기와 연동되는 시스템을 도입하겠죠.
소비자가 왕이니까요.
서울페이가 꼭 QR코드 방식만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오직 기존의 신용카드 거래시스템만 회피하면 되는 것이므로, 누군가는 NFC를 이용한 결제 모듈도 개발할 것이고 누군가는 블루투스를 이용한 모듈을, 누군가는 음파(스피커와 마이크)를 이용한 모듈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겁니다. QR코드는 결제 정보를 교환하는 하나의 랭귀지일 뿐 이걸 어떤 매체를 이용하여 교환하는가는 무한대의 방법론이 있는 것이죠.
참고로 이 3가지 방식의 공통점은 이미 스마트폰에 장착된 기본 사양을 그대로 이용한다는 점입니다.
일단 사용자의 생활 속에서 익숙해지고 나면 4천 개 문자에 해당하는 대량의 정보를 하나의 코드 안에 집어넣을 수 있는 QR코드의 내재 기능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우리가 신용카드로 물건을 살 때에 매장에 제공하는 정보는 오직 나의 신용카드 번호를 암호화 한 소량 정보에 불과합니다. 매장에서 청구한 금액에 대해 내가 소유하고 있는 카드번호로 승인해 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교류되지 않지요.
그런데 QR코드를 이용하면 보다 4차산업혁명스러운 결제문화로의 진화가 가능해집니다.
온오프라인 매장에서는 구매자에 대한 속성정보가 중요합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청년인지 장년인지, 단골고객인지 첫 고객인지, 같은 동네 사람인지 뜨내기인지 등등 구매자와 소비자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정보가 주어지면 보다 세련된 마케팅과 맞춤 서비스의 제공이 가능해지니까요.
거꾸로 구매자 입장에서도 오늘 내가 주문한 짜장면이 이 가게에서 얼마나 잘 팔리는 메뉴인지, 이 메뉴의 칼로리는 얼마나 되는지, 짜장면과 같이 주문한 서브메뉴로는 뭐가 인기가 있는지 등등의 정보가 제공되면 보다 가치 있는 소비생활을 즐길 수 있지요.
그런데 지금의 신용카드 결제 인프라로는 이게 불가능합니다. 오직 얼마를 결제해야 하고, 그 결제에 필요한 한도가 충분한지 아닌지만 체크하는 기능 밖에는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용카드회사는 이 중간에 딱 들어앉아서 고객 정보를 틀어 쥐고 있고, VAN이나 PG사는 매장에서의 주문 정보를 독점하고 있지요. 정작 결제 데이터를 창출해 내는 소비자와 매장은 어떠한 부가가치 정보도 획득할 수 없습니다.
바코드 Barcode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용량 문자 정보를 한 번에 교환할 수 있는 QR코드는 이러한 문제를 한방에 풀어버립니다. 주문과 결제 행위 자체가 구매자와 판매자의 정보를 교환하는 빅데이터 플랫폼이 될 수 있지요. 구매자는 특정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상품 할인을 요구할 수도 있고, 매장 점주는 보다 가치 있는 서비스 제공으로 매출과 판매단가를 높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비즈니스가 한국에선 아예 싹도 트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플라스틱 카드와 마그네틱 리더기로 도배된 신용카드 결제 인프라의 후진성 때문입니다.
혹자는 QR코드가 해킹에 취약하다고 하는데, 중국발 기사로 간간이 들려오는 이른바 큐싱(피싱 사기에 QR을 합성한 단어) 사건들은 대부분 오프라인 매장에 인쇄해 놓은 종이 QR코드를 좀도둑들이 임의로 바꿔치기하는 수법들입니다. 기껏해야 한 두번 속여 먹을 수 있을 뿐 사회적 문제가 될 만한 치명적 결함은 아닌 것이지요.
QR코드 리더기나 스마트폰 앱 자체가 해킹되는 문제는 현존하는 모든 결제 방식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보안 이슈와 동일합니다.
반면 QR코드 방식은 구매자의 결제 매체가 제삼자의 손으로 전달되는 과정이 생략됩니다. 신용카드는 내 손에서 떠나 매장 직원의 손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도용이나 복제의 위험성이 있지만, 오직 스마트폰만을 이용하는 QR코드 방식은 어떤 경우에도 나의 소유물이 제3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또한 QR코드 방식은 글로벌 확장에 있어서도 매우 탁월한 범용성을 제공합니다. 실제 우리나라 명동이나 제주에서는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불편함 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QR코드 리더기 배포와 같은 일부 비용이 발생할 수는 있겠지만 NFC나 BEACON처럼 막대한 인프라 비용이 요구되지 않을뿐더러, 특허가 무료 공개되어 전 세계 어디에서나 QR코드 생성과 해독에 제한이 없다는 점은 글로벌 비즈니스 추진에 커다란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대다수 아시아 국가에 진출한 알리페이의 비즈모델을 잘 연구하면 서울페이를 모태로 한 코리아페이의 출범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되네요.
박원순 시장이 QR코드 방식을 선택한 것은, 짧게 보면 비용 최소화를 위한 현실적인 양보인 듯 보이지만 길게 보면 대한민국의 결제 인프라를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신의 한 수" 일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서 왼쪽 편으로 여겨지는 박원순 시장을 통해 공론화되어서인지, 가맹점 수수료 제로를 목표로 하는 서울페이는 마치 진보 진영의 포퓰리즘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제가 기억하는 서울페이의 원류는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입니다.
2016년 12월 8일, 남경필 지사 휘하의 경기도는 다음과 같은 보도자료를 배포합니다.
[중기(中企) 도우미 경기도 주식회사, 동대문에 1호 매장 열고 공식 출범]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추진하는 공유적 시장경제의 핵심사업인 경기도 주식회사가 8일 첫 번째 매장을 열고 공식 출범한다. 이날 개소식에서는 경기도 주식회사 출범에 맞춰 경기도 주식회사와 신한은행, 카카오 간 중소기업지원 협약도 이뤄진다... 먼저 경기도 주식회사와 신한은행은 이날 중소기업의 카드 가맹점 수수료 부담을 0%로 낮춰주는 ‘경기도 착한 결제시스템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신한은행이 개발 중인 신개념 결제수단 ‘신한 계좌 to계좌 결제시스템’은 결제자의 계좌에서 매장 점주의 계좌로 직접 돈이 입금되는 계좌이체 방식의 결제시스템으로 가맹점 수수료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사용자들은 써니뱅크앱을 설치한 후, 매장에 설치된 결제 패드에 QR코드를 인식시키고 직접 결제금액을 입력하면 된다. 입력된 금액은 즉시 매장 주인의 계좌로 이체가 되고, 현금영수증 발급과 자동연계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앱 설치와, 신한은행 계좌를 개설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영업점 방문 없이 5분 정도만 투자하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경기도 주식회사 관계자는 “기존 신용카드 기반 결제시스템의 경우 카드매출의 평균 2% 정도를 가맹점이 수수료로 부담해야 한다.”면서 ‘신한 계좌 to계좌 결제시스템’은 계좌에 들어있는 만큼만 소비할 수 있는 일종의 체크카드 개념이지만 실제로는 카드가 없는 결제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2년 전에 대외적으로 오픈된 이 사업이 어떠한 이유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장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박원순 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서울페이의 내용과 다른 점이 보이질 않습니다. 무료, 은행, 계좌이체, QR코드, 현금영수증, 중소기업, 착한 결제 등 서울페이의 시대적 당위성은 물론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판박이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경기도 사업의 카운터 파트너였던 신한은행이 서울페이 사업에 있어서도 주간은행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 실패의 경험이 "학습된 무기력"으로 서울페이 추진에 반작용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스펙트럼을 나누기에 앞서 남경필 전 지사는 박원순 시장과 똑같은 시대적 소명을 공감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장의 생계를 어려워하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해 과도한 카드수수료를 없애 보자는 뜻을 좌와 우의 대표주자 들은 똑같이 느꼈을테지요. 그런데 남경필 전 지사가 추진하면 서민사랑이 되고 박원순 시장이 추진하면 포퓰리즘이 되는 것일까요? 만약 남경필 전 지사가 이번 선거에서 서울페이와 똑같은 경기도페이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요?
200년 전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할 1840년 당시, 언론에 나타난 유럽의 사회상은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노동시간은 길어지고 경쟁강도는 점점 세어지지만, 생활은 나날이 궁핍해지고, 양극화는 심해져만 간다."
2018년 지금, 최대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트럼프 신드롬은 물론, 유럽, 중국, 일본 등 주변 모든 나라에서 국수주의를 지향점으로 하는 보호무역과 자국 이기주의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현상의 근본적 원인이, 먹고살기 힘들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 이제 그 수가 정치적 임계점인 과반수를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돈 잘 버는 시절에는 소소한 카드 수수료 따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요. 하지만 모두가 결핍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삥 뜯어먹는 놈은 천하의 역적"이 되고, 불필요한 거래 비용을 줄이거나 없애려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과 서울시민, 그리고 경기도민이 모두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박원순 시장도, 남경필 전 지사도 여와 야의 모든 정당도 모두 똑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울페이는 영세 소상공인 지원을 통해 양극화를 완화시키려는 정책적 도구이기에 앞서, 너무 쉽게 빚을 내는 외상문화를 바로 잡는 경제 건전화의 첫 걸음이며, 자본주의적인 이해관계와 소비자 중심의 금융시장 원칙에 매우 충실한 핀테크 비즈니스입니다. 중국에서는 진부하지만 한국에서는 너무나 참신한 이번 시도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혁신 엔진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기원하며, 서울페이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선언하는 바입니다.
@포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