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점심시간 내내 교실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던 성호는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얼굴로
앉아 있었다.
작은 손에는 색연필이 쥐어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파인애플, 딸기, 수박 등이
한가득 그림으로 펼쳐져 있다.
"성호야!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구나."
나는 칭찬을 해주었다.
그리고 발그레해진 성호의 얼굴을 보면서
"성호는 딸기를 닮았구나.
딸기도 한 개 그려보렴."
성호는 딸기를 그리면서 색칠대신 까만
씨앗을 먼저 그렸다.
“왜 씨앗을 먼저 그리니?”
내 질문에 성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빨강을 먼저 칠하면, 그 위에 검정을
칠해야 하는데 씨앗이 잘 안 보여요.”
그 순간 나는 멈춰 섰다.
성호는 색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색을 ‘계산’하고 있었다.
겹쳐질 색의 농도와 대비를 예측하고,
결과를 미리 떠올린 뒤 순서를 정한 것이다.
놀이처럼 보이는 색칠 안에 사고의 구조가
숨어 있었다.
잠시 후, 성호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원장 선생님은 복숭아를 닮았어요."라고
한다.
나는 웃으며 종이를 건넸다.
그러자 성호는 코를 살짝 움찔거리며,
집중한 표정으로 복숭아를 그리기 시작했다.
“저는 복숭아랑 자두가 좋아요.”
성호는 말하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분홍색을 고르고, 다시 조금 더 진한 분홍을
덧칠했다.
복숭아의 둥근 몸통을 따라 색을 겹겹이
쌓아 올렸다.
한쪽에는 햇볕이 스민 듯 밝게 남겨 두고,
다른 쪽에는 조금 더 깊은 색을 눌러 담았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그릴 때 전혀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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