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간의 놀이 과정에서 한 아이가
던진 놀잇감이 다른 아이의 입술에
부딪혀 붉어졌다.
의도적인 행동은 아니었지만, 다친 아이는
억울함을 느낀다.
이 상황을 지켜본 담임교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친 아이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상황을
보고 했다.
하원할 때,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동일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는 '하인리히 법칙'을 언급하며
'작은 사고를 방치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구조적인 안전관리를
요구하였다.
부모님 말씀처럼 작은 사고가 반복되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깊이
공감한다.
작은 균열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결국 더 큰 파손을 부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상황은 ‘깨진 유리창의 원리’
를 닮았고, 작은 사고의 방치가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하인리히 법칙'과도 통한다.
나는 부모님과 통화 후 이번 일을 교실의
관리 체계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기로
했다.
그러나 부모는 일상적인 말보다 구체적인
개선사항을 요구했다
놀잇감은 아이들의 일상적인 교구다.
그러나 놀잇감을 들고 놀이하는 행동은
충돌 위험 또한 높다.
그래서 위험 놀이 시 아이 간 최소 거리를
설정하는 일은 무리지만 가급적 유지해
보겠다고 했다.
또한 유사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관리를 하겠다고 했다.
이런 대답이 부모가 보기에는 기관의
소극적인 대처로 보였나 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요?”
때린 아이를 퇴소를 시킬 것인지,
우리 아이를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인지,
반을 분리할 것인지 등의 구체적인 답을
원했다.
같은 교실에서 두 반을 보육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모두 쉽지 않은 선택들이었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따로 있었다.
그 질문이 단순한 해결책 요구가 아니라
책임의 구조를 묻는 질문이다.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장면 중 하나다.
던지고, 스치고, 부딪히고, 잠깐 울다가
다시 웃는 일상이다.
그러나 부모는 그 장면을 다르게 볼 것이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기에 늘 위험적인 요소로
느끼게 된다.
부모에게 그것은 '한 번의 사고'가 아니라
이미 여러 번 반복되어 온 '패턴'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종종 ‘최선’을 말한다.
"더 잘 보겠습니다, "
"더 신경 쓰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듣는 부모에게 아무런 기준이
되지 않는다.
부모가 원하는 것은 노력의 약속이 아니라
명확히 가능한 구조를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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