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에 기대어 잠시 쉬어가려 한다.
우리는 늘 멈추지 못하는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다.
해야 할 일,
책임져야 할 관계,
놓치면 안 될 기회들.
그 모든 것들이 등을 떠밀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비는 잠깐 멈추어도 괜찮다고,
속도를 늦춘다고 해서 삶이 무너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빗소리는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들이 하나둘
풀리고,
당장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들은
조용히 뒤로 물러나게 한다.
남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숨소리와
나 자신에 대한 감각뿐이다.
그래서 사람은 비 오는 날에 더 솔직해진다.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의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쉬는 것을 미루며 산다.
쉬면 뒤처질 것 같고, 멈추면 잊힐 것
같아서다.
그러나 쉬지 않는 삶은 결국 방향을 잃는다.
속도는 유지되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멈춤이 있어야 다시 정확하게 나아갈
수 있다.
빗소리는 그런 시간을 허락해 준다.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도, 결과를 증명할
필요도 없이, 그저 존재하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 정리하게 된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계속 붙들고 가야 하는지를.
순례길을 걷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알베르게에서 춥다며 건네받은
물주머니가 밤사이에 터졌고,
100도의 물이 식지 않은 채로 다리에 닿아
화상을 입었단다."
그녀는 타국에서 병원을 찾고,
낯선 언어 속에서 치료를 받으며 결국
알베르게에 계속 머물게 되었다.
예정에 없던 일주일의 멈춤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쉬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계속 걷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길은 때로,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사람을 대신해 멈춰 세운다.
머무는 곳은 자선으로 운영되는 작은 숙소
라고 했다.
이곳의 시작은 한 남자였다.
가족 없이 살다 암을 자연치유로 견디던
그는, 마지막에 이 공간을 남겼다.
어머니를 돌봐줄 것,
그리고 비건 음식을 제공할 것.
그것이 그가 남긴 조건이었다.
그녀는 또다시 소식을 전했다.
"어제저녁에 셰프 경력의 직원 (한국인 아내)
이 정성껏 제공하는 아침식사도
제공받고, 다양한 홈메이드 잼과 꿀도
제공받았단다.
이곳은 아흔아홉의 자선가의 어머니가 바로
옆집에 살고 있고,
세 명의 직원과 이름 없는 봉사자들이
그 뜻을 이어가고 있어.
식사는 가격이 정해지지 않았어.
고인의 뜻에 따라 정원에서 키운 야채로
비건 식사 제공인데 기부금으로 내고 싶은
만큼 상자에 넣는단다."
각자가 먹은 뒤,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
통에 넣고 가니까
누군가는 많이 두고,
누군가는 적게 두고,
어떤 날은 아무도 넣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곳은 늘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나는 지금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고 있어.”
걸을 때는 몰랐던 감각이 멈추자 비로소
또렷해진다고 말한다.
혼자 걷는 길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수많은
손길 위를 지나고 있었다는 것.
내가 지불하지 않은 것들로 이미 많은 것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날, 그곳에도 비가 내렸다고 했다.
알베르게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졌고, 걷지 않아도 되는 하루,
도착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보낸다.
누군가 그랬다.
비 오는 날 마음이 가라앉는 건 세상의
소음이 잠시 멈추길 기다리는 거라고.
바쁘게 달리느라 지친 영혼이,
빗소리에 기대어 잠시 쉬어가려는 거라고.
하늘이 대신 울어주는 시간이라고.......
그녀의 멈춤은 사고였지만,
그 안에서의 시간은 결코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멈춰야 할 순간을.
다만 스스로 멈추지 못할 뿐.
그래서 어떤 날은, 길이 우리를 대신해
멈추게 한다.
비를 내리고, 발걸음을 붙잡고, 누군가의
손을 내밀게 하면서.
그녀는 지금도 그곳에서 쉬고 있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그리고 다시 걸어갈 준비를 하면서.
나도 오늘은 빗소리에 기대어 잠시
쉬어가려 한다.
멈춤은 후퇴가 아니라,
더 멀리 가기 위한 준비이기 때문이다.
☆ 알베르게(Albergue)는 스페인어로
순례자용 숙소를 의미한다.
특히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에서 사용되는 용어다.
공용 공간 사용 (도미토리 형태 침대,
공동 샤워실) 등.
https://suno.com/s/dKbJinqFsj1qpYxl
빗소리에 기대어
작사:콩새작가
작곡:수노
1
창문 위로 떨어지는 작은 리듬 속에
지친 하루가 조용히 풀려가고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젖어들면
나는 나를 다시 바라보게 돼
멈추지 못해 달려온 시간들 사이
숨 쉴 틈 없이 쌓인 생각들
비에 씻겨 내려가듯 흐려지면
조금은 가벼워진 나를 느껴
우~~~
빗소리에 기대어 잠시 쉬어가
괜찮아, 이대로도 충분하니까
흐르는 시간 속에 나를 맡기면
다시 걸어갈 힘이 생기니까
빗소리에 기대어 눈을 감아
흔들리던 마음도 잠잠해져
지금 이 순간, 나를 안아주듯
조용히, 다시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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