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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작가 Jul 23. 2024

교토에서 윤동주시인 생각하기

  비행기 이륙 지연(遲延)으로 시작되어 비행기 연착(延着)으로 끝이 난 오사카의 2박 3일의 여행이었다.

지연(遲延)은 '일 따위가 더디게 진행되거나 늦어지는 것'을 일컬으며, 연착(延着)은 '정한 시각보다 늦게 도착함'을 말한다.

서울에서 오사카로 가는 비행기 지연은 시스템 장애, 서울에서 오사카로 승객을 태우기 위해 오는  비행기는 서울의 기상악화가 원인으로 연착이  된 것이다.

비행기 지연으로 처음 계획된 여행 일정은 부분적으로 변경되었고, 비행기 연착은 월요일 오후 일정이 있던 분들의 오후시간을 낭비해야 했다.

 오사카 지역은 워낙 날씨가 습하고, 더운 관계로 몇몇은 일정표대로 동행하는 것을 힘들어하기도 했으며, 쉼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단체관광은 항상 변수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 더 편한 방법들을 찾아서 의견을 나누고 50여 명이 같은 곳을 둘러봐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관광'이라는 단어를 영어 표현을 찾아보면 다양한 단어로 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단어로는 'Tourism'을 들 수 있다.

관광의 총체적인 의미로 '여러 나라를 순회여행한다'라는 뜻으로 사용하며, tour는 사회적 현상의 여행으로 쓰인다.

이외에도 journey라는 단어는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여행하는 것'을 의미하고, travel은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trip은 1박 정도의 단기 여행, sightseeing 은 눈으로 보는 것, voyage는 항해 여행을 뜻한다.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라면 '여행은 사람들이 일상의 생활권을 떠나서, 다시 돌아올 목적으로 이동하며, 영리 목적이 아닌 다른 나라의 생활 상, 풍물 등을 관람하는 것'이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교통의 발달과 더불어 자동차산업의 발달은 호텔과 리조트 등을 생겨나게 했으며, 여가와 문화에 관심이 많아졌다.

가족, 친구, 동료 등과 함께 여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시간과 돈을 소비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로 관광산업은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관광마케팅은 날개를 달았으며, 관광은 부가가치가 있는 산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세계를 핸드폰 하나만 달랑 들고도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관광산업이 주춤하였지만, 코로나가 종식되면서 각종 포럼을 개최하면서 다시 관광산업은 서서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88 올림픽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관광산업의 흐름은 변화되기 시작하며, 그 당시에 '호텔&관광마케팅'을 전공했던 나의 동기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그 당시 관광이 붐으로 자리 잡기 전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컨벤션호텔의 웹사이트의 실행도와 중요도'를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으니 나 또한 신학문의 선두주자였음에 틀림이 없다.

결혼과 함께 30대 후반에 직종을 변경하면서 나는 어린이집 원장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나의 선택은 탁월하였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달라졌지만 어린이집 원장을 하면서 좋았던 것은 매 학기마다 방학이 있다는 것이다. 

역마살이 있는 나는 방학이 있거나 빨간 글씨의 공휴일이 많으면, 어딘가를 향해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전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녔지만 그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후 나는 혼자 다니는 여행을 택하였다.

물론 금전 + @였다.

혼자 다니는 게 더 유리했다.


 오사카 여행이야기가 잠시 다른 이야기로 흘러갔지만 다시 인천 국제공항으로 돌아가야겠다.

인천 국제공항 제1터미널 3층 N카운터 0000 피켓 앞에서 일행들을 만났다.

여행사에서 오전 6시 30분까지는 모두 집결해 주기를 당부하였기에 우리는 서둘러서 집결했다.

짐을 부치고 입장하는 데까지 서너 시간, 비행기 지연으로 오전 9시 10분 비행기는 오후 1시가 넘어서 겨우 탑승하였다.

너무 늦게 도착하였기에 간사이 공항에서 만난 가이드는 일정을 변경할 수밖에 없음을 설명하였다.

오늘 일정상 청수사가 원래 관광코스로 되어있으나 시간관계상 청수사는 내일 둘러보기로 하고, 오늘은 다리를 건너 교토의 상징물 중의 하나인 '금각사'를 먼저 구경시켜 주겠다고 하였다.

금각사(긴카쿠지)는 조용한 정원 속의 사원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자면 건축학적으로 웅장함이 있고, 구조물 전체가 금빛으로 칠해져 석양빛과 맞물리는 시점에서 더욱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다.

건축양식은 층별로 시대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고 가이드는 설명하였으나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1397년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은퇴 기념으로 세운 별장으로 1층은 후지 와라기, 2층은 가마쿠라기, 3층은 중국 당나라 양식으로 각 시대별로 일본의 독창성을 반영하여 세워졌으며, 교토 시민들이 내고 있는 세금으로 금칠을 한다고 한다.

아시카가 요시미츠는 산장을 사들여 별장으로 사용하다가 그의 유언에 따라 사후에 별장을 사찰로 개조하였다.

우리는 금각사의 황금빛 외관만을 보면서 각개전투를 하듯이 사찰을 한 바퀴를 돌고 땀범벅이 되어 입구를 향해 나왔다.

정원의 연못과 금각사가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모습은 아주 아름다웠다.


 

 교토에 오면 윤동주시인을 떠올려야 한다.

윤동주 시인은 1942년 일본 도쿄의 릿쿄대학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였으나 릿쿄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을 수학을 하고서 다시 도시샤 대학으로 편입을 하였다.

윤동주 시인은 이때 도시샤대학으로 편입한 것은 릿교대학에서 교련시간에 고초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도쿄의 릿쿄대학 재학생들은 모두 학도병으로 강제로 끌려가는 분위기였으므로, 한국인인 윤동주 시인은 동기들과 함께 도시샤 대학으로 편입을 하였던 것이다.

일본 유학시절의 혹독함은 윤동주 시인을 우울감에 시달리게 하였고, 서정 시인으로 탄생하게 하였다

1년 뒤인 1943년, 윤동주시인은 대한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후쿠오카 감옥에 강금되었다.

옥중에서 생체실험 대상으로 주목되어 매일 주시를 맞았다고 했는데 그 주사는 바로 '바닷물'이었다고 한다.

광복을 앞두고 1945년 뇌일혈로 향년 27세의 청년은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요절하였다.

윤동주 시인이 체포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대학동기들과 함께 갔었던 교토 남부 우지강변 백홍교 다리 아래에 시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그가 다닌 교토 도시샤대학에도 시비가 세워져 있다고 하였다.

또 한 개는 어디에 있는지 독자들이 찾아봐 주기를 바란다.


 슬픈 운명의 윤동주시인을 교토 시내를 여행하면서 꼭 떠올려야 했다.

5년 전 교토에 왔을 때 윤동주시인의 시비를 못 보고 온 것을 후회하였다.

다음에 교토에 가게 되면 꼭 윤동주시인의 시비를 찾아보리라 다짐했었는데, 나는 이번 여행에서 윤동주 시인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쉬운 대로 독자들은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한 '윤동주 문학관'을 찾아가 보기 바란다.

광화문에서 7022, 7212 버스를 타고 청와대 옆길을 지나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하문고개>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한양 도성 <창의문>이 있다.

창의문 바로 건너편에 있는 흰색 건물이 윤동주 문학관으로 창의문 쪽으로 올라가면 부암동 전체를 둘러볼 수 있으며, 길을 건너 '윤동주 문학관'을 관람하고 나와서 언덕으로 계속 올라가다 보면 인왕산과 청운공원이 나온다.

 부암동과 청운동이 맞붙어 있는 이곳은 서촌의 끝자락이다.

서촌은 1930년대에 조선시대 이중섭화가와 노천명시인, 윤동주시인 등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서촌은 근대 문화예술의 중심지였고, 서촌에서 보낸 이 시기에 윤동주시인의 작품 '별 헤는 밤'이 이 탄생되었다.

지금의 서촌은 윤동주시인과 무관한 곳이다.

이곳 언덕 입구에 '윤동주 문학관'을 세운 이유는 2009년까지 수도가압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에 잠시나마 서촌에 머물렀던 윤동주시인을 지자체에서 지역 활성화의 일환으로 '윤동주 문학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위대한 윤동주시인의 서사를 이곳에 들러서 잠시나마 느껴보기 바란다.


to be continude osaca......




별 헤는 밤

            - 윤동주(1941. 11. 5)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들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폐,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푸랑시스 잠'><라이나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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