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폴 세잔

지난주에 이어서 이정우 에디터로부터 폴 세잔의 그림 해석, '예술가의 예술가가 된 아웃사이더'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회화의 근본적인 방식을 변화시킨 인물이었다.

그는 프랑스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그의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재현이 아니라, ‘구성’과 ‘구축’의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같다'라는 표현은 세잔의 회화적 접근 방식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이다.

세잔의 회화적 특징은 사물의 본질을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태로 분석하는 것이다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자연을 ‘재현’하는 전통적 회화 방식과는 달랐었다.

세잔의 생각에는 자연은 원통과 구, 원뿔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상을 단순히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건축가가 구조를 설계하듯 쌓아 올리고 구축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전통적인 명암법(Chiaroscuro) 대신, 색채의 차이를 통해 입체감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발전시켰다.

그림에서 형태를 ‘그리는(drawing)’ 것이 아니라, 색을 겹쳐 쌓아 올리며 형상을 ‘만드는(building)’ 방식을 사용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그의 풍경화에서 산과 나무는 단순한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색의 배치를 통해 입체적이고 견고한 구조를 형성하였다.

르네상스 이후 회화에서 사용되던 ‘단일 소실점 원근법’(Linear Perspective)을 부정하고, 다시점을 도입했던 것이다.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

그는 하나의 시점에서 본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시점에서 본 형태를 한 화면에 동시에 조합하였다.

세잔의 대표작인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을 보면 사과와 오렌지가 단순한 형태로 배열되어 있고, 사물들이 기하학적으로 배치된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후에 입체파(Cubism)로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과일들은 자연스럽게 배치된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씩 쌓아 올린 듯한 구조적인 형태다.

색채를 층층이 쌓아 올리며 형태를 구성하여 다양한 시점을 결합하여 사물을 조형적으로 해석하였다.

전통적 원근법을 버리고, 화면을 건축하듯 ‘만드는’ 방식 채택하였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세잔의 그림은 마치 건축가가 벽돌을 쌓아 집을 짓듯 ‘구성’되는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그의 대표작 중 풍경화 '생트 빅투아르 산' 연작에서는, 산과 나무, 건물 등이 색과 형태의 블록처럼 쌓여있는 구조를 보인다.

하늘과 산, 나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독립적인 조형적 단위로서 존재하며, 마치 ‘건축된’ 듯한 화면을 형성한다.

즉, 풍경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회화적 논리를 통해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세잔의 방식은 단순한 인상주의적 묘사가 아니라, ‘조형적 질서’였다.

그의 혁신적인 접근 방식은 '근대 회화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현대 미술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세잔의 다시점 기법과 기하학적 분석을 발전시켜, 사물을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형태로 재구성하였다.

생트 빅투아르 산

세잔 이후, 회화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대상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 요소를 쌓아 올려서 만들어내는 것'으로 변모하였다.

이후에 몬드리안의 추상 미술,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등 20세기 미술의 '구축적 조형언어'로 발전하였다.

파블로 피카소는 폴 세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화가 중 한 명으로, 특히 입체파를 창시하는 데 있어 세잔의 작품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피카소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아비뇽의 처녀들'이 있으며, 입체파로 가는 길을 열어 준 작품이다.

세잔의 구조적인 형태 해체 기법과 입체적인 구성 방식을 반영하여, 인물들을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하였다.

특히, 세잔이 정물화에서 사물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화면 위에서 형태를 단순화했던 방식은 이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세 명의 여인(1908)'은 피카소가 세잔의 기법을 더욱 발전시켜, 형태를 입체적으로 분해하고 재구성한 초기 입체파 작품이다.

세잔이 사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하나의 화면에 통합하는 기법을 피카소가 극대화하였다.

세 명의 여인(1908)

정리해 보면, 세잔은 자연을 단순한 형태로 분석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고, 한 시점이 아닌 여러 시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실험하였으며, 피카소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완성했다.

세잔은 색채보다는 형태의 구조적 배치를 중요시했으며, 피카소 역시 색보다는 형태의 해체와 재구성을 강조하며 입체파의 기반을 마련하며, 미술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게 되었다.

따라서 피카소의 초기 입체파 작품을 보면 세잔의 후기 작품과의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세잔이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