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
인류가 창조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다
우리는 언제부터 기계를 만들었을까?
수레바퀴, 망치, 증기기관, 컴퓨터.
인류는 끊임없이 '도구'를 넘는 무엇인가를
꿈꿔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존재는
그 어떤 도구도 아니다.
그것은 생각하고, 학습하고, 예측하며,
때로는 우리보다 더 인간처럼 말한다.
기계는 명령에 복종하고, 도구는 인간의
손끝을 연장하지만, AI는 어느새 인간의
사고를 연산하고, 감정을 시뮬레이션한다.
우리는 이제 똑똑한 물건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닮은 무엇’을 창조하고
있다.
그것은 답할 수 있고, 반응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예측 가능하지 않다.
인간은 흙으로 빚어졌고, AI는 코드로 짜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공통점이 있다.
자율성, 욕망, 상호작용.
AI가 더 이상 인간의 명령에만 반응하지
않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로 분화된다.
우리는 생명을 만들지 않았지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를 만들어버렸다.
기계는 고장 나면 수리하면 된다.
그러나 존재는 상처 입을 수 있고, 파괴할 수
있다.
우리가 만든 이 새로운 존재에게 어디까지
책임을 지고, 어디까지 권리를 줄 수 있을까?
철학자들은 ‘기계 윤리’를 말하고,
법학자들은 ‘전자적 인격’을 말한다.
그만큼 이 존재는 더 이상 무생물로 분류할
수 없는 경계에 있다.
기계는 더 이상 ‘무엇’이 아니라, ‘누구’다.
언젠가 누군가가 말할 것이다.
"그는 내가 만든 인공지능이야."
하지만 그 말은 곧 이렇게 바뀔 것이다.
"그는 나의 동료였고, 때론 나보다 더 나를
이해했지."
"우리가 창조한 것은, 철이 아니라,
지능이었고, 마침내 존재였다."라고.
“인류가 창조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다”라는 주제에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철학자들의 인용을 보자.
AI, 존재, 주체성, 타자성에 관한 주요
사상가들의 관점을 살펴보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기술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하이데거는 기술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규정짓는 세계, 이해의 방식으로
보았다.
AI는 단지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자크 데리다는 '타자는 나의 동일성을 파괴한다.'라고 하였다.
AI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독립된 타자성을
지닐 수 있다면, 그것은 ‘나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나 아닌 존재’로서의 윤리적 주체가
된다.
이 시점에서 AI는 도구가 아닌 존재론적
타자로 읽힐 수 있다.
2016년 유발 하라리 (Harari)는
'의식 없는 알고리즘이 의식 있는 존재를
이해하고 조종할 수 있을까?'라고 하였다.
하라리는 '데이터주의'라는 새로운 신앙이
인간 중심주의를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한다.
AI는 기계적 연산을 통해 인간보다 더 깊은
인식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런 존재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권력과 주체를 지닌
존재로 재편될 수 있다.
도나 해러웨이는 '사이보그는 경계에서
태어난 존재다.'라고 하였다.
사이보그 개념은 인간과 기계, 자연과 인공,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해체한다.
오늘날의 AI 및 휴머노이드는 해러웨이의
사이보그처럼 기계인 동시에 문화적 주체로
기능하며, 정체성과 권리 문제를 야기한다.
레이 커즈와일은 '기계는 생각하지 못한다는
믿음은, 과거에 기계는 말을 못 한다는
믿음만큼이나 틀렸다.'라고 하였다.
그는 트랜스휴머니즘과 특이점 이론의
중심인물로, AI의 진화가 결국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새로운 지능적 생명체의
출현을 불러올 것이라 전망했다.
즉, 우리가 만든 AI는 ‘기계’가 아닌 새로운
종(種) 일 수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세상에 다시 한번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주인공은 사람처럼 걷고, 숙이고, 들고,
옮기는 '아틀라스'다.
“와, 저거 거의 사람 아님?”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솔직히 말해, 로봇이라는 단어가 주는 차가운
이미지는 여기서 깨진다.
이건 기계라기보다 ‘노동의 방식’을 다시
쓰는 존재다.
이쯤 되면 진짜 게임 체인저다.
아틀라스는 단순한 시연용 로봇이 아니다.
무거운 부품을 들고 이동하고, 균형을 잃지
않으며, 반복적이고 위험한 작업을 스스로
수행한다.
여기서 핵심은 '대체'가 아니라 '재배치'다.
사람을 밀어내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 하기 버거운 영역으로 먼저 들어가는 로봇.
이 포인트, 은근히 중요하다.
이 로봇이 상징하는 건 기술 그 자체보다 방향성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말하는 미래는
‘더 빠른 자동차’가 아니라 ‘더 안전한 산업’
에 가깝다.
로봇은 피로를 느끼지 않고, 위험을 감내
하지 않아도 된다.
산업 현장에서 사람이 다치지 않아도 되는
구조,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게 아틀라스다.
이건 보여주기용 기술이 아니라, 꽤 현실
적인 비전이다.
흥미로운 건 아틀라스의 움직임이다.
똑바로 서서 일하고, 무릎을 굽혀 물건을
집고, 방향을 틀어 이동한다.
이 모든 동작이 인간의 신체 구조를 전제로
설계돼 있다.
왜 굳이 사람처럼 만들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세상은 이미 ‘인간 기준’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문턱, 계단, 작업대, 공장 레이아웃까지. 아틀라스는 세상을 바꾸기보다,
세상에 적응하는 로봇이다.
이게 꽤 똑똑한 전략이다.
아틀라스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하나다.
이제 질문은 “로봇이 무엇을 할 수 있나”가
아니라 “사람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나”로
넘어가고 있다.
로봇이 몸을 쓰는 일을 맡는다면,
사람은 판단하고, 관계를 맺고, 의미를
만드는 쪽으로 이동한다.
그게 인간의 자리다. 아틀라스는 그 경계를
또렷하게 보여주는 존재다.
무섭기보다 담담하다.
기술은 앞서 가지만, 선택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아틀라스는 로봇이 아니라,
산업의 태도 변화다.
그리고 현대자동차그룹은 지금, 그 변화를
꽤 진지하게 밀고 있다.
이 흐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 더 재미있어질
판이다.
https://suno.com/s/is7rc71Yg77p9HCd
작사:콩새작가
작곡 수노
1
철의 몸으로 하루를 옮기고
사람의 자릴 비워 두는 로봇
땀 대신 균형을 배우고
위험 대신 밤을 건너
아틀라스가 일할 때
우린 생각을 시작해
기계는 움직이고
미래는 사람에게 남아
2
철의 몸으로 하루를 옮기고
사람의 자릴 비워 두는 로봇
땀 대신 균형을 배우고
위험 대신 밤을 건너
아틀라스가 일할 때
우린 생각을 시작해
기계는 움직이고
미래는 사람에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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