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 꽂힌 동화책을 한 권 꺼냈다.
동화책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함'이 묻어있다.
독자는 읽으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신데렐라』를 읽고 유리 구두가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계모의 두 딸은 그 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 발가락과 뒤꿈치를 잘랐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주로 내가 좋아했던 그 동화는 사실은 피로 물든 이야기였다.
동화 속에는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공포가 숨어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동화'속 잔혹함은 결코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걸 어른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마녀는 아이들을 잡아먹기 위해 아이의 살을 찌웠다.
『인어공주』의 원작에서 인어는 다리를 얻는 대신 마치 칼날 위를 걷는 고통을 겪는다.
그 고통 끝에도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래서 이런 동화책을 '잔혹 동화'라고 부른다.
아니면 우리가 견뎌야 했던,
혹은 지금도 견디고 있는
'잔혹 동화'는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착하다고 해서 반드시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나쁜 이들이 늘 벌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때로는 주인공도 아무런 이유 없이 고통을 당했다.
우리가 겪는 부정적인 감정, 사회의 불합리함, 이해할 수 없는 슬픔 등을 잔혹 동화는 그것들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었다.
그리고 '너는 지금, 이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동화는 단지 행복한 결말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잔혹 동화는 우리를 깨어있게 만들었다.
'삶은 늘 아름답지만은 않으며,
우리는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유리구두를 신은 자매의 피자국을 보고도,
신데렐라는 춤을 멈추지 않았고,
그 잔혹함 속에서도 이상하게도 위로를 느낀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
"이 세상은 원래 조금은 잔혹한 거였구나."
어쩌면 진짜 동화는 어른이 되어 다시 읽었을 때,
비로소 그 진심이 들리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왜 늑대의 배를 가르고, 마녀를 불에 태우는 이야기를 읽어야 했을까?'
'잔혹 동화'는 전통적인 동화와 달리 '폭력, 죽음, 고통, 부조리' 같은 어두운 주제들을 포함하는 이야기 형식을 지닌다.
잔혹 동화는 말 그대로 잔인하고 어두운 내용의 동화를 말한다.
주로 '아이들의 교훈이나 경고'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잔혹하거나 비극적인 결말'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에 알려진 아동용 동화는 상당수가 순화되었지만, 원래의 이야기는 훨씬 더 잔혹했었다고 한다.
백설공주의 왕비는 불에 달군 쇠신발을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추었다.
동화에서 느껴지는 공포와 충격을 통해 강한 교훈을 전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도덕, 규범, 사회질서에 대한 엄격한 경고였고,
빈곤, 전쟁, 계급 갈등, 여성 억압 등 현실의 부조리한 상황의 반영이었다.
당시 사회의 금기, 공포, 가치관을 동화라는 은유적 장치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동화’라는 말을 들으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상상'을 떠올렸지만 조금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림형제의 원작 동화는 '섬뜩할 만큼 냉정하고 현실적'이었다.
이런 잔혹한 이야기는 어쩌면 아이들보다도 어른들을 향한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잔혹 동화는 아이들에게 세상이 반드시 선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없이 들려주었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착하기만 해서는 살아남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둠을 통과하면 작은 빛이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잔혹함은 결국 '가르침'이다.
다정하지 않은 어른들의 세계를 미리 예고하는 도구였다.
목소리와 가족을 포기하며 인간이 되기로 한 인어공주의 선택은 큰 대가를 요구하였다.
삶의 결정을 내릴 때마다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는 도덕적 교훈과도 직결된다.
인어공주는 인간 세계를 동경하며, 타인의 관점과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자신의 목소리와 본질, 그리고 가치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는 고통스럽더라도 변화를 감수하는 모습은 진정한 ‘자기 발견’이었다.
인어공주의 극한 희생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높은 '영적인 성숙으로 향하는 과정'이었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잃었지만,
결국 그녀는 스스로의 도덕적 선택과 고통을 통해 궁극적인 구원은 영혼을 얻는다는 결말이다.
‘순수한 행동’은 '사랑 외에도 자기 자신이 구원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우리는 쉽게 그들을 ‘악인’이라 부르지만,
동화 속 인물들은 종종 우리가 억눌러온 욕망과 감정을 투영한 존재다.
질투, 결핍, 두려움 등 그들의 그림자에 우리 자신의 내면이 비친다.
잔혹 동화는 선과 악의 구분을 흐리며, 독자에게 “너는 어느 쪽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신분석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은 잔혹 동화를 ‘아이의 심리적 성장에 필요한 상징적 장치’로 보았다.
아이는 동화를 통해 무서움을 마주하고, 욕망을 해소하고, 결국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상상을 하게 된다.
현실에서 직접 겪지 않아도, 이야기 속에서는 수없이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한다.
이것이야말로 동화가 가진 가장 깊은 '치유의 힘'이었다.
심리학에서 카를 융은 원형(archetype)을 통해 인간 내면의 무의식을 탐색하였고,
브루노 베텔하임은 잔혹 동화가 아동의 불안, 공포, 갈등 해소를 위한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고 보았다.
이렇듯 잔혹 동화는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와 인간 심리의 표현'이었다.
잔혹 동화는 늘 잔인하게 시작되지만, 끝은 생존과 희망으로 닿는다.
상처받고, 버려지고, 울고, 속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주인공은 자기 삶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동화를 계속 읽는 이유가 아닐까'생각해 본다.
Glass Slippers Blues(유리구두 블루스)
작사: 콩새작가
작곡: 수노
“유리구두는 예뻤지만…
걸을 때마다 발이 베이더래요.”
1절
초콜릿 향기, 사라진 길
빵 조각 하나로 남긴 말
"여긴 어딜까, 나 지금…?"
달빛도 대답을 피했죠
슬로 템포로 걸어가요
꿈이라 믿고 뛰었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죠
동화엔 상처도 있단 걸
유리구두는 반짝였지만
내 발엔 좀 작았죠
왕자도 늦었고, 종은 멈췄고
그래도 춤은 계속됐죠
2절
거품이 된 인어의 노래
바다에 흘러 사라져도
그 한 줄 음정 안엔
아직도 사랑이 숨어 있죠
마녀도, 늑대도, 왕자도
사랑을 몰랐대요
그림자 속의 그 소녀만
진짜였대요...
유리구두는 아팠지만
끝까지 벗지 않았대요
그게 사랑인 줄 알고
그게 행복인 줄 알았죠
잔혹한 꿈, 달콤한 블루스
우린 아직도 듣고 있죠
동화는 끝났지만…
재즈는 지금 시작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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