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짜리 소설

3호-비밀번호의 주인

by 벼리

나의 비밀번호는 011로 시작한다. 그렇다. 전화번호 10자리다. 이 번호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지금은 전화를 걸 수 없는 그녀는 그저 번호로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나의 집 비밀번호로 남아있다. 나는 전화번호 10자리로 민을 기억하고 싶었다.

예전에 민에게 전화를 걸면 수화기에서 들려오던 노래가 있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그 노래를 들으면 나는 한여름 낮에도 가을을 느낀다.

가을, 민을 처음 만난 계절. 그때 민이는 우연히 계양역에 있었다고 했다. -민은 종종 길을 헤맸다.

나는 그때 무슨 일로 거기 있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민이 창 옆 의자에 작은 가방을 놓아두고 책 한 권으로 햇빛을 가리며 창밖을 향해 서 있던 것이 떠오른다. 나는 엽서에 나올 것 같은 민을 향해 서 있었다.

-나는 민을 만나기 위해 거기 있었던 것 같다.


(배경 음악: 로맨스가 필요해 OST (Piano Ver.): http://youtu.be/bLSlcSKl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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