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가까워지면 꽃들이 릴레이를 시작한다. 진달래가 연지 바르고 고운 얼굴을 내민다. 봄의 제왕은 나라는 듯 벚꽃이 무더기로 피어난다. 2주 후 벚꽃 엔딩이 찾아와도 괜찮다. 그 뒤를 이어 철쭉이, 조팝나무가, 수수꽃다리가, 이팝나무가 그리고 지금은 아카시 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5월을 수놓고 있다.
이 화려한 꽃들을 제치고 내가 사진에 담은 건 '논'이다.
5월 8일 송해면
누런 논바닥이 사라지고 논에 물이 가득 찼다.
이 모습이 하도 신기해서 길을 오갈 때마다 눈에 눌러 담았다가 이날은 참지 못하고 차를 세워 사진을 찍었다. 하천이 범람해 논이 물에 잠긴 것 같기도 하고 강화도를 둘러싼 바닷물이 이 깊숙한 데까지 흘러들어왔나 싶다.
알아, 이제 곧 모내기를 할 거잖아.
5월 13일 양사면
물에 비친 초록이 산그림자인 것만은아니다.
모내기가 시작됐다.
잔디밭처럼 보이는 모판더미와 그너머 모내기를 마친 논의 모습까지 올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의 손길을 볼 수 있다.
모내기는 이제 시작이다. 하천과 논바닥이 구분되지 않을만큼 여기저기 물이 가득차있다. 하늘을 비추는 그 말간 땅에 어린 모가 자리를 잡을 거다. 듬성듬성 줄을 선 그 연두 물결이 언제 그랬냐는 듯 무성하게 자라나 빽빽하게 들판을 채울 거다. 바다는 물러가고 초록물결이 내 눈을 사로잡겠지.
벼도 꽃이 핀다. 어린 모가 키가 자라고 꽃을 피우는, 느리고 힘찬 성장을 계속 엿볼 셈이다.
나는 강화도에 살고 있으니까.
강화도에 온 건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게임을 덜하고 개구리 잡으러 다니길 바라서가 아니다. 애들은 어디서나 예쁘다. 그 예쁜 모습을 '내'가 알아봐 주었으면 했다. 훈육하고 다듬어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기를. 화내고 걱정하는 데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 어디 강화도에 오니 달라졌는가?
나는 매일 논을 봐서 좋고 논이 예쁘다는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좋다. 아이들은 양사초를 좋아한다. 모두 강화도를 좋아한다.
나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 겨우 74일째라서 그런 거겠지.
벼꽃이 피기를 기다렸다가 애들에게 보여줘야지. 아름다운 건 같이 보는 사이.
우리가 그런 사이였으면 좋겠다.
5월 17일에 찍은 사진을 첨부합니다.
허리를 숙여 모내기를 하고 계시는 농부
이앙기를 이용해 모내기 하는 모습
도로에서 사진을 찍는 나를 보고 일하시던 아주머니가 다가오셨다. 내가 신기해서 구경하는 거라 하니 아주머니가 웃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