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보다 메타인지
종종 상담실에 오는 학생들은 공부가 뜻대로 안 된다며 ‘제 머리가 나쁜가 봐요’라고 말합니다. 오르지 않는 성적의 원인으로 자신의 지능을 탓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 흔하고 익숙합니다. 여러분도 책과 씨름하면서 ‘내가 좀더 똑똑했으면’이란 생각을 수 백번 해봤을 겁니다. IQ로 측정되는 지능은 실제로 거의 변하지 않음을 감안할 때, 이 숫자가 학업성취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무력감을 느끼고 절망할 만도 합니다.
물론 지능이 높으면 공부 능률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같은 내용의 지식도 더 빨리 이해하고, 더 많이 암기할 테니까요.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학업을 성취하는데 있어 지능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게 바로 ‘메타인지(metacognition)입니다.’ 메타는 ‘더 높은 차원에 있는 것’ 인지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메타인지는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죠. 지식 습득할 때의 메타인지는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설명이 제일 와 닿죠?
예를 들어 여러분이 영어 단어를 외운다고 생각해 봅시다. 단어의 개수는 20개, 제한 시간은 5분입니다. 그리고 5분이 지난 후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단어 시험을 보기 전에 몇 개나 외운 것 같은지 물어봅니다. 그러면 10개, 15개 등 각자가 어림잡은 개수를 말할 겁니다. 그리고 단어시험을 보면 결과가 드러나겠죠.
심리학자들의 실험에 따르면 이 단어시험의 성적이 좋은 학생의 특징은 자기자신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단어를 몇 개나 외웠을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죠. 13개쯤 외웠을 거라고 말했다면 14개 정도 맞추는 겁니다. 반면 시험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자신이 외운 단어의 개수를 과대평가했죠. 18개쯤 외웠을 거라고 말하고 실제로는 10개 정도만 답을 쓴 것이죠. 자신에 대한 판단이 정확할수록 단어도 많이 외웠습니다. 어때요? 가지고 싶은 능력이죠?
지능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반면 메타인지 능력은 키울 수 있습니다. 간단한 방법을 하나 소개하면, 스스로 시험을 보는 전략이 있습니다. 하루 배운 걸 복습할 때, 공부한 내용을 백지에 옮겨 적어 보거나, 중요한 키워드가 들어갈 자리를 비우고 암기한 내용을 참고서 없이 직접 채워 넣어보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자신이 뭘 알고 모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중학생쯤 되면 누구나 이런 방법으로 메타인지도 기르고, 공부도 능률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새는 것 없이 배운 내용을 정확히 점검할 수 있다는 것도 알죠. 그러나 보통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저 교과서나 참고서를 반복적으로 읽고 쓰기를 반복할 뿐이죠. 이렇게 시간을 많이 보내고 나면 하루를 열심히 보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눈으로 훑은 내용을 전부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죠. 그러나 성적은 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학생들은 기존의 방법을 반복합니다. 시간만 더 늘려서 말이죠.
자기 점검 과정을 회피하는 이유는 그것이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시험을 보면 분명 틀리는 문제가 있잖아요. 분명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내용들이 드러나는 거죠. 그 자체가 고통이죠. 이런 불편한 감정이 들면 빠진 부분을 보충하게 되고, 그 과정이 사실 제대로 된 공부입니다. 그래서 메타인지를 잘 사용하면서 학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좀 괴로울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 편하고자 하는 본능을 거스르려면 더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에너지 말이죠. 같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요령 있게 공부하는 학생이 더 유리합니다. 그리고 역으로 방법이 비슷하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학생이 당연히 성적이 좋을 겁니다. 지금부터는 더 오래 책을 붙잡고 씨름하게 하는 바로 그 원동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