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공부할때 들었던 클래식의 비밀

왕초보 클래식 공연장 100회 기록

by 류겸

1장. 처음 클래식을 들었던 날

— 음악이 삶의 뒤편에서 앞으로 걸어 나오기까지


클래식 음악을 처음 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말하라고 하면, 사실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을 명확히 떠올리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음악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의 중심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뒤편에서 조용히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 그 시절, 나의 삶은 공부와 각종 과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늘 탁상등이 켜져 있었고, 노트 위로는 연필이 바쁘게 움직이던 시간들이 이어졌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서 클래식 음악은 무언가 특별한 예술이라기보다는 말없이 흐르는 공기 같은 존재였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문제를 풀다가 잠시 멈췄을 때, 갑자기 라디오의 FM 방송을 통해 방 안에 흘러나오던 낯선 선율 하나가 제 귀를 아주 조용하게 흔들었습니다. 베토벤인지, 모차르트인지, 아니면 어떤 이름도 모르는 곡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음악이 제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붙잡고 흔들었던 느낌만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의 클래식 음악은 지금처럼 ‘감상’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한 음 한 음을 분석하려 하지도 않았고, 누가 연주했는지 궁금해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저 단순히 집중의 배경, 책상에 오래 앉아 있기 위한 조용한 파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나는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려고 시도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 음악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나 역시 음악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필요한 만큼만 스쳐 지나가던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배경에 머물던 클래식 음악은 아주 천천히 내 일상의 전면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 존재를 특별히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공부하는 시간의 길고 단단한 벽을 그 음악이 조금씩 부드럽게 만들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불안했던 마음이 잠시 진정되거나, 좁은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넓어지는 것만 같은 순간들이 찾아왔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클래식 음악이 내 삶의 뒤편에서 앞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것은 큰 감동이나 드라마틱한 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주 소박하고 작은 경험들의 반복이었고, 그 반복이 쌓여 어느 날 문득 “아, 나는 클래식을 좋아하는구나”하고 깨닫게 된 것뿐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저는 비로소 알았습니다. 음악은 때때로 우리의 인생에 문을 두드리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곁에 오래 머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삶의 결을 바꾸어 놓는다는 사실을.



1-1. 공부할 때 들었던 클래식의 비밀


학창 시절, 공부를 하다 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리듬을 찾게 마련입니다. 친구들은 대개 팝송이나 가요를 들으며 공부에 들어갔습니다. 학교에서 야간자습 시간에는 이어폰으로, 집에서는 라디오나 카세트를 통해 누군가는 잔잔한 발라드를, 누군가는 신나는 팝을 틀어 놓으며 집중의 시간을 버텼습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스웨덴 그룹 아바(ABBA)의 앨범을 반복해 들으며 ‘Dancing Queen’이나 ‘Fernando’를 흥얼거리곤 했습니다. 가을 학예제 때, 아바(ABBA)의 “Super Trouper” 곡에 맞춰 단체로 허슬 춤을 추기도 하였었고, 존 레논의 ‘Imagine’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그가 만든 세계 속에서 잠시 도피하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영화 ‘친구’의 배경이 되었던 그 시절 부산에서 검은 교복을 입고 다니던 고교 때의 풍경이 음악과 함께 아주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당시 RCY(청소년적십자) 활동을 하면서 학예제 부스에서 LP 음반 전시를 준비했던 기억도 있고, 학교 합창단에 뽑혀 고교대항 전국 합창대회에 나갔던 일도 있었습니다.


〈제17회 고등학교 학생예능실기대회 - 데레사여고 강당, 1981년〉
부산 데레사여자고등학교는 내 학창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범일동에서 통학하던 나는 매일 아침, 검은 교복에 하얀 칼라를 단 데레사여고 학생들의 활기찬 등교길을 지나쳐 학교로 향해야 했다. 처음에는 여학생들의 그 활기와 소란스러움에 조금 당황하기도 했지만, 데레사여고 정문 옆에 위치한 범일성당에서 성경 공부를 하고 미사를 드리면서 그 공간과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데레사여고는 영화 〈친구〉에 등장하는 2본 동시상영의 삼성·삼일극장이 큰 도로 맞은 편에 위치하고 있어 영화를 보며 추억에 잠기게도 한 곳이다.


대학입시라는 무거운 현실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관심과 참여만은 놓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시절의 나는 음악을 ‘잘 알지도, 깊이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음악은 항상 내 곁에 있었습니다. 공부의 무게가 벅차던 날에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빈 교실에서 어쩐지 외로움이 밀려오던 순간에도 음악은 조용한 동반자로 제 일상 속에 스며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음악들은 내게 집중의 리듬을 만들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가사가 있는 음악은 자꾸만 마음의 손목을 잡아끌어 내 생각을 저 멀리 이끌고 가곤 했습니다. 수학 문제를 풀다가도 어느새 노랫말의 분위기에 따라 마음이 산만해지고, 상상도 엉뚱한 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어쩌면 그 시절 나는 음악 속 ‘말’과 ‘이야기’가 주는 감정의 파동을 너무 잘 받아들였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우연히 클래식을 틀어 놓고 공부한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의 경험은 지금도 잔잔한 파문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클래식은 다른 음악과 달랐습니다. 음악은 분명 흘러가고 있는데 그 소리가 나를 붙잡지도, 흔들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옆에 놓여 있는 것처럼, 가만히 내 공간을 함께 채우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사가 없다는 사실이 주는 그 홀가분함도 컸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아도 되었고, 내 마음이 불필요하게 끌려다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음악이 내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배경처럼 흐르지 않고 깊은 울림을 남기는 것이 그때는 참 신기했습니다. 그 조용한 동반자는 어느새 내 공부 시간의 흐름을 잡아주는 리듬이 되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샤프심이 종이를 긁는 소리, 창가로 들어오던 오후 햇빛과 천천히 움직이는 클래식의 선율이 하나의 작은 풍경처럼 겹쳐졌습니다.

그 순간들을 지나며 나는 조금씩 클래식을 생활 속에 두기 시작했습니다. 클래식은 특별한 음악이 아니라 하루를 정돈시키는 자연스러운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책상 앞에서 흘러가던 그 작은 익숙함이 훗날 내 삶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결국 공연장이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이끌게 될 줄을.

그런데 다시 돌아보면, 클래식은 갑자기 등장해 나를 사로잡은 낯선 예술이 아니었습니다. 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가 인식하지 못한 채 삶의 여러 구석에서 조용히 나와 함께하고 있었던 음악이었습니다. 지하철 출입문이 열릴 때 흘러나오던 짧은 선율, 학교 졸업식장에 울리던 엘가(Elgar)의 〈위풍당당 행진곡〉, 카페에서 책을 펼칠 때 배경으로 흘렀던 드뷔시의 〈달빛〉, 그리고 상점이나 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들리던 익숙한 클래식 멜로디의 조각들.

나는 그 음악들의 이름을 몰랐고 작곡가도 알지 못했지만, 그 선율들은 어느새 내 일상을 부드럽게 감싸며 클래식을 ‘낯선 음악’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음악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클래식은 내가 찾아간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삶 속으로 들어와 조용히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스며듦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나를 공연장으로 이끄는 힘이 되어 있었습니다.


〈횡단보도 신호음과 클래식 음악 모티브〉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던 클래식 음악들


클래식 음악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특별한 예술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 곳곳에는 이미 수많은 클래식 선율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만나는 것이 횡단보도의 보행 신호음입니다.

초록불이 켜지면 들리는 “띠-띠-띠-띠이─” 하는 신호음은 “짧게, 짧게, 짧게, 길게”로 이어지는 리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리듬은 클래식 음악에서 매우 유명한 모티브와 닮아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첫 동기를 떠올리곤 합니다. 물론 실제 신호음이 그 곡을 직접 차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 귀는 익숙한 리듬을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음악적 이미지를 연결합니다. 그래서 길을 건너는 평범한 순간에도 우리는 어느새 클래식의 한 조각을 떠올리며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작은 감각의 울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음악들은 때로는 우리 생활 속 여러 안내 멘트 뒤에서 조용히 흐르거나, 우리가 움직일 때 길목에서 잔잔한 배경이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비록 곡명과 작곡가는 잘 모르더라도, 우리는 오래전부터 클래식 음악을 ‘듣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하철역에서 환승을 알리는 멜로디 역시 클래식에서 따온 경우가 많습니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나 비발디 〈사계〉의 짧은 구절이 편곡되어 신호음처럼 사용되곤 합니다.

클래식 음악의 멜로디에 익숙한 이유는 음원을 들어서가 아니라, 이미 우리의 생활 환경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해 ‘소리의 풍경’을 구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차량의 후진 시 들리는 베토벤 피아노곡 ‘엘리제를 위하여’ 멜로디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상가에서 흔히 들리는 ‘엘리제를 위하여’의 변형 멜로디나,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인사’가 단순화된 음향으로 들려오는 것처럼, 클래식 선율은 어느새 차량이나 설비 장치의 안전 경고음과 일상적 신호의 언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가사가 없고, 구조가 명확하며, 짧은 구절만으로도 상황을 빠르게 인지시키는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클래식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보편적인 음악적 정서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학교나 교육기관에서도 클래식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하루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졸업식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던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입학식과 행사에서 흘러나오던 파헬벨의 〈캐논〉, 아침 조회 시간에 교내 방송을 통해 들리던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는 우리의 성장기 속에 은근히 클래식의 향기를 스며들게 했습니다. 그 순간들은 ‘공연 감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미 클래식을 낯설지 않게 만들어 준 무수한 작은 경험들이었습니다.

카페나 서점, 백화점에서도 클래식은 자주 등장했습니다. 쇼팽의 느린 악장, 드뷔시의 〈달빛〉, 사티의 〈짐노페디〉는 공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음악으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이 음악들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차를 마시거나 책을 고르던 평범한 순간에 우리의 호흡을 자연스럽게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텔레비전의 광고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비발디 〈봄〉이나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에 나오는 ‘캉캉’처럼 익숙한 클래식 선율이 빠르게 장면의 분위기를 설정해 주곤 했습니다. 때로는 진지함을 강조하고, 때로는 코믹한 장면을 만드는 데 사용되며, 그 선율들은 화면의 감정을 부드럽게 이끌었습니다.

이 모든 경험을 떠올려보면, 클래식 음악은 생각보다 훨씬 일찍, 그리고 훨씬 깊이 우리의 삶 속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우리가 클래식을 ‘의식적으로 감상하기 전’부터 이미 클래식은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클래식 공연장을 처음 찾는 경험이 전혀 생소하지 않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비록 그 선율의 이름을 몰랐을 뿐, 그 음악들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하루 곳곳에 스며들어 귀를 열어주고 마음을 준비시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곡인도교야경.jpg 〈서울 강남구 세곡교의 야간 조명〉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때로는 밤 산책 중 다리 난간의 알록달록한 조명만 봐도 마치 멜로디처럼 음악적 분위기가 연상되며 운치가 느껴지기도 한다.


음악은 흔히 큰 계기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옆에 서 있다가, 어느 순간 우리가 준비되었을 때 조금씩 앞으로 걸어 나옵니다. 학창 시절의 작은 습관이 나도 모르게 클래식을 내 일상으로 스며들게 했고, 그 스며든 익숙함은 시간이 지나 공연장이라는 또 다른 세계로 나를 부드럽게 이끌었습니다. 그 작은 익숙함이 내 삶의 흐름을 바꾸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책상 위에서 흐르던 클래식은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된 ‘예고 없는 초대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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