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마음의 간격, 오해와 화해 - 어긋난 대화

마음이 닿는 순간들1 - 연인관계

by 류겸

어긋난 대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저녁, 두 사람은 작은 국수집에 마주 앉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눅눅한 공기와 함께 퍼져오는 달큰한 국물 냄새가 코끝을 감싸왔다. 습기가 가득한 공간 속에서 뜨거운 김이 피어올라 창가를 희뿌옇게 덮었고, 희뿌연 유리 너머로 네온사인이 빗방울에 번져 흔들리고 있었다.


빛은 물기를 타고 흘러내리며, 마치 누군가의 감정을 흘려보내듯 유리창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졌다. 바깥 거리에서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신발이 물보라를 일으켰고, 그 잔잔한 소리가 식당 안으로 스며들며 마치 대화의 배경음처럼 이어졌다.


테이블 위에는 막 담긴 뜨거운 국수가 놓여 있었다. 국물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은 공기 중에 작은 안개처럼 퍼져 나갔고,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을 희미하게 가려 주었다. 젓가락을 들었다 놓으며 지현은 오랜만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오늘 회사에서 말이죠, 그 동료 있잖아요. 늘 괜히 장난치는 그 사람…. 결국 또 사고를 쳐서 다들 한참 웃었어요.”


지현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흥분이 섞여 있었다.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렸을 이야기를,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나누고 싶었다. 작은 해프닝 하나에도 의미를 두고, 그것을 전하고 싶어졌다.

말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동료와의 오해로 잠시 마음이 불편했던 일, 혼자서는 좀처럼 털어내기 어려웠던 불안한 감정, 심지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스쳐간 사소한 생각까지. 지현은 그날따라 말이 많았다. 어쩌면 “오늘은 조금 더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는 용기가 마음속에서 은밀히 자라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맞은편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고개와는 달리 눈길은 국수 그릇 위를 맴돌다가, 창밖의 네온사인으로, 다시 테이블 구석으로 옮겨 다녔다. 젓가락으로 국수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면서도, 그의 표정에는 집중의 기운이 부족했다. 대화의 흐름을 놓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어딘가 멀리 떠 있는 듯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요 며칠 쌓인 업무 걱정이 여전히 무겁게 얹혀 있었다. 다음 주에 다가올 발표 준비, 해결되지 않은 문제, 상사와의 갈등. 그런 생각들이 대화의 틈마다 불쑥 고개를 들며, 지현의 목소리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했다.

설명할 힘조차 없어, 그는 그저 습관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지현은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다. 마치 말을 건네는 상대가 앞에 있는데도, 그 말들이 허공에 흩어져 아무 데도 닿지 않는 듯한 기분. 그녀는 애써 웃음을 섞으며 물었다.


“내 얘기… 듣고 있어요?”

그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

“듣고 있죠. 그냥… 별거 아닌 얘기 같아서.”

순간, 그 한마디는 바늘처럼 가슴에 박혔다.

‘별거 아닌 얘기…?’


지현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오늘 하루를 버텨낸 무게,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어렵게 꺼낸 마음이 그에게는 그렇게 사소한 것이었을까.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며 흘러나왔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 마요. 나한텐 중요한 얘기였으니까.”

그는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치며 난처하게 웃었다.

“그런 뜻 아니었어요. 그냥, 너무 사소한 걸로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해서….”

하지만 이미 말은 빗나가 있었다.


전하려던 진심보다 먼저 내뱉어진 말의 모양이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지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끄덕임은 이해의 표시라기보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식당 안 공기는 여전히 뜨겁고 습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냉기가 스며들었다. 국수 그릇 위의 김은 잠시 피어오르다가 허공에 흩어졌고, 그것은 마치 대화도 어디론가 흩어져 닿지 못하는 모습을 닮아 있었다.


창밖의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몰랐다.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서로의 길을 잃고 엇갈려 내려가듯, 두 사람의 말도 서로의 마음에 닿지 못한 채 미끄러져 내렸다. 작은 말 한마디가, 관계를 미묘하게 어긋나게 만들고 있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마음을 가장 멀리 밀어낸다.”
“때로는 진심보다, 말의 모양이 먼저 마음에 닿는다.”

□ 마음 궁합 □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보다 ‘전달된 마음’이다.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이 상대에게는 무게가 될 수 있다.

마음 궁합은 서로의 언어를 ‘어떻게 듣는가’에서 깊어진다.

궁합은 완벽한 표현에 달려 있지 않다.

다만, 서로의 마음을 잃지 않고

다시 맞추려는 진심 속에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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