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공연장을 처음 찾던 날 – 소리가 아닌 ‘경험

왕초보 클래식 공연장 가다

by 류겸

2장. 공연장, 막연한 두려움에서 첫 발걸음까지

— 공연장 문을 열기 전까지의 긴장, 그리고 첫 번째 숨의 떨림


처음 공연장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클래식 공연장을 어떤 특별한 세계처럼 상상했습니다. 고급스럽고, 조용하고, 어딘가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공간. 그런 이미지가 머릿속에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막상 공연을 예매하려고 마음먹었을 때조차 설렘보다는 작은 두려움이 먼저 올라오곤 했습니다.


1980년대 초반은 아직 인터넷이 도입되기 전이라 온라인 티켓 예매는 당연히 없어서 현장 매표소에서 직접 티켓을 구입해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다행이라해야할까요?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이라 해도 클래식 전용 공연장은 없었고, 예술의전당이 1987년경 문을 열었기 때문에 다목적홀인 세종문화회관이 유일한 대형 클래식 공연장으로 기능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처음 공연장에 가던 때는 어떤 자리가 좋은 자리인지, 가격 차이는 무엇 때문인지, 초보자는 어디에 앉는 것이 좋을지—그 모든 질문이 나를 한 발짝 물러서게 했습니다. 복장은 또 어떨까요. 격식을 차려야 할지, 편한 복장으로 가도 되는지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 괜히 고민 아닌 고민을 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클래식 음악이라는 장르가 ‘아는 사람들만 듣는 음악’, 또는 ‘전문가들만 즐길 수 있는 음악’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내가 모르는 작곡가, 들어본 적 없는 곡들, 한 번도 본 적 없는 연주자들. 그 낯섦이 공연장 문을 향한 내 발걸음을 몇 번이나 망설이게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하지만 공연장 문을 처음 열던 순간, 나는 그 모든 걱정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공연장 내의 공기는 생각보다 훨씬 따뜻했고, 사람들은 저마다 편안한 얼굴로 그날의 음악을 기대하며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도 나의 드레스코드를 평가하지 않았고, 누구도 나의 ‘지식의 양’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공연장은 나를 시험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저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아주 평범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공연장을 둘러싸고 있었던 나의 막연한 두려움은 문을 여는 단 한 번의 용기로 단숨에 사라졌고, 그 대신 낯설고도 조용한 설렘이 내 마음속에서 천천히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2-1. 공연장을 처음 찾던 날 – 소리가 아닌 ‘경험’이 시작되던 순간


공연장에 처음 갔던 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속에 아주 은은한 빛이 켜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날은 단순히 음악을 들으러 간 날이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음악 감상실과 오디오로 듣던 음악이 비로소 현실의 장면과 이어지던 첫 순간, 그리고 클래식이 제 삶 안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오던 문이 열린 날이었습니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하루의 끝, 그러나 마음은 묘하게 설레었습니다. 그날은 특별한 날도 아니었습니다. 수업이 끝났고, 일상의 소음이 이어지던 저녁이었습니다. 하지만 손에 쥔 작은 표 한 장이 마음을 조금씩 달궈놓고 있었습니다.


티켓 앞면에는 굵은 글씨체로 적혀 있는 글자 하나.

〈KBS교향악단 제319회 정기연주회〉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것은, 그 티켓이 꼭 어딘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국 허가증처럼 느껴졌다는 점입니다.

‘나 같은 초보가 정말 이곳에 들어가도 괜찮을까?’


조금은 망설여졌지만, 그보다 앞선 것은 분명한 설렘이었습니다. 공연장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곳의 분위기는 차분했습니다.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티켓을 확인하거나 혹은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마치 모두가 같은 목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최초의티켓.jpg 〈KBS교향악단 제319회 정기연주회 티켓〉
오래된 사진 앨범에서 찾은 최초의 클래식 공연 티켓. 2026년 내년이면 만 40년 전이 되는 1986년 11월 14일 금요일 저녁 7시 세종문화회관 2급석으로 3층 1열 13번 좌석이었다. (지휘 한스 그라프, 첼로 협연 나다니엘 로젠)


공연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밀도가 조금 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일상의 소음이 뒤로 밀려나고, 공연장 특유의 잔향 섞인 고요함이 천천히 나를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분은 영화관에 들어가던 느낌과도 달랐습니다.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 고요함이 낯설면서도 이유 없이 편안했습니다. 마치 오래전에 잃었던 감각을 잠시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좌석에 앉기까지, 작은 긴장이 이어졌습니다. 처음 공연장을 찾는 초보 감상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도 좌석에 앉기까지 눈치 아닌 눈치를 보았습니다.


“이 정도 옷차림이면 괜찮을까?”

“지금 이 정도 목소리는 괜찮은가?”

“악장 사이에 박수는 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부딪히며 작은 긴장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부담은 음악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존재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연주자들이 하나둘씩 무대에 올라오고, 서서히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가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들이 모여 공연장의 첫 번째 숨결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지휘자가 등장하는 순간, 관객들의 숨이 동시에 고요해졌습니다. 그 정적 속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무언가 엄청난 경험이 곧 시작될 것이라는 예감이었습니다. 그 예감은 결코 틀리지 않았습니다.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서곡. 첫 음이 울린 순간, 그동안 들었던 모든 소리가 재정의되었습니다. 지휘자의 급한 손짓과 함께 오케스트라의 첫 음이 울렸을 때, 마치 내 귀가 아닌 몸 전체가 소리를 듣는 것 같은 경험이 찾아왔습니다. 오디오로 아무리 좋은 장비로 들어도 느껴지지 않던 그 사운드의 입체감, 현악기의 떨림, 목관의 부드러운 숨결, 금관의 강한 울림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소리가 ‘공간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레코드(LP)판으로 듣던 선율들, 감상실에서 스피커를 통해 접하던 곡들이 눈앞의 연주자들의 손끝에서 실제로 흘러나오는 장면은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음악이 ‘재생되던’ 것이 아니라 음악이 ‘살아 있는 시간’이 되어 눈앞에서 펼쳐졌습니다. 그 충격은 작고 조용하지만 분명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클래식 음악을 완전히 다르게 듣게 되었습니다.


특히 메인 연주였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에 대한 충격적이리만큼 벅찬 감동은 약 40년 전의 일이었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뇌리에 새겨져있는 대단한 경험이었습니다. 사실은 이 곡 때문에 공연감상을 시도했던 바였습니다. 그런데 공연장에서 처음 들은 음악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연주되던 음악을 처음부터 깊이 이해하지도 못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음악을 듣는 제 마음에는 그전에는 없던 새로운 감각의 여유가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유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해의 여유가 아니라 열림의 여유였습니다.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조금씩 무언가가 변해 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연장을 나서는 길에서 그 변화가 ‘제 안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조심스럽게 깨달았습니다. 그 작은 변화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공연장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감상자는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사실.


돌아보면, 그날의 공연은 내 인생에서 특별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음악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세워가는 사람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어떤 날, 어떤 공연장에서 자신만의 첫 순간을 맞이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 순간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마음 깊은 곳에 작은 등불이 하나 켜지는 듯한, 그런 은은한 변화입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오래갑니다. 그리고 그 은은한 빛이 우리를 앞으로의 감상 여정으로 이끌어줍니다. 공연장은 음악을 듣는 곳이면서 동시에 ‘마음이 깨어나는 곳’입니다.


세종문화회관(1978년).png 〈세종문화회관 1978년 개관 (출처: 세종문화회관)〉
40여 년 전, 나의 첫 공연 감상을 열어 준 곳이 바로 이 세종문화회관이다. 요즘도 이곳을 찾을 때면, 그날 느꼈던 첫 연주의 감동과 두근거림이 변함없이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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