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

왕초보 클래식 공연장 가다

by 류겸

special.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를 누군가 묻는다면,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도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클래식이 인류 보편적인 정서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고급 예술이니까”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옛 시절의 서양 팝 같은 것”이라고 농담 섞인 해석을 내놓기도 하지만, 그 어디에도 클래식의 본질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는 가장 큰 첫 번째 이유는, 클래식은 반복해서 들어도 결코 지겨워지지 않는 음악이라는 데 있습니다.

가요나 팝송은 감정을 즉각적으로 자극하고 쉽게 흥얼거리기 좋지만,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 순간 포만감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러나 클래식은 반복될수록 의미가 깊어지고, 같은 곡이라도 들을 때마다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줍니다.


왜 그런 걸까.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클래식은 음악 속에 수백 개의 길이 숨어 있어서 들을 때마다 다른 길로 들어가게 되는 음악이다.”

“클래식은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듣는 이의 삶과 기억에 따라 매번 새롭게 살아나는 예술이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한 번 들었을 때는 단지 부드러운 현악기 소리만 들렸던 곡이, 두 번째에는 오케스트라 사이에서 가느다랗게 울리는 플루트가 귀에 들어옵니다. 세 번째에는 그 사이사이 흐르는 정적의 의미가 마음을 붙잡습니다. 이처럼 클래식은 듣는 사람의 그날의 감정, 마음의 상태, 경험의 깊이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으로 태어납니다.


또 어떤 친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클래식은 음악이 아니라 삶의 농도와 함께 배우는 언어 같다.”


그 말처럼 클래식은 단순한 소리를 넘어서 삶의 속도, 마음의 결, 감정의 층위를 반영하는 음악입니다. 같은 교향곡이라도 20대에 들을 때와 50대에 들을 때의 느낌이 전혀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젊은 날에는 에너지와 긴장이 먼저 들리던 음악이 중년이 되면 가만히 스며드는 저음이나 여백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고, 어느 순간 우리는 그 차이를 스스로 알아차리며 음악과 더 깊이 연결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20160527_215433.jpg 〈오케스트라 편성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클래식 음악 연주는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단원들이 곡에 따라 최대 100명까지도 편성되고 각종 악기들이 동원되어 내는 음이 가요나 팝에 비할 바가 아님도 클래식을 깊이 있게 느끼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물론 가요나 팝도 시간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시절 즐겨 듣던 노래가 나이를 먹고 다시 들으면, 새로운 감정으로 다가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클래식은 조금 다릅니다. 가요가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라면, 클래식은 ‘지금의 나’를 비추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가요가 한 시절의 기억과 정서를 불러낸다면, 클래식은 나의 현재 상태와 삶의 결을 따라 항상 다른 얼굴로 다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요와 팝은 대부분 몇 분 안에 감정의 흐름이 완결되지만, 클래식은 때로는 30분, 50분, 혹은 한 시간을 넘게 이어지며 긴 호흡 속에서 감정을 따라가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함께 감정의 층을 통과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층위가 깊고 복합적이어서, 반복해서 들을수록 오히려 더 많이 들리고 전에는 보이지 않던 세부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클래식의 깊이는 단순히 음악의 난해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온 시간만큼 그 음악이 새로운 의미로 바뀌는 ‘경험의 축적’에서 오는 깊이입니다.

곡은 그대로인데, 달라지는 것은 언제나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클래식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잘 들리고, 반복할수록 더 풍부해지는 음악이 됩니다.


나는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감정이 무르익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클래식은 감정을 억지로 끌어올리지도, 어떤 기분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음악이 흐르고, 악장이 전환되고, 긴장과 해소가 반복되는 동안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감정이 조금씩 풀리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감정들이 정리됩니다.


20191030_정읍.jpg 〈세월의 연륜이 배여 있는 한옥 풍경〉
이상하게도 클래식 음악은 우리의 한옥과 의외로 잘 어울린다. 예전에는 한옥에는 국악이 가장 자연스럽다고만 생각했지만,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는 한옥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서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국악이든 클래식이든, 오래된 건축물과 고전음악은 서로의 깊이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며 세월의 숨결이 깃든 공간 속에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는, 앞 절에서도 언급되었지만 한 곡이 길다는 점입니다. 가요나 팝송이 보통 3~5분 안에 완결되는 구조라면, 클래식은 한 악장이 10분, 한 교향곡 전체가 30~50분에 이르기도 합니다. 처음 들으면 “곡이 길어서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오히려 이 ‘길이’가 클래식 감상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가요나 팝은 짧기 때문에 막상 몰입하려고 하면 노래가 끝나버립니다. 감정이 흐름을 타기 전에 음악이 먼저 멈추는 셈이어서 음악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보다는 그냥 듣고 흥얼거리다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클래식은 다릅니다. 곡이 길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이 서서히 열리고 깊어질 시간을 제공합니다. 음악이 조금씩 긴장하고 풀리며, 주제가 나타나고 변주되고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우리의 감정도 자연스럽게 확장됩니다. 몰입이 가능해지고, 음악의 구조적 아름다움도 비로소 드러납니다.


특히 클래식의 길이는 음악적 구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의 교향곡에는 보통 제1 주제가 충분히 제시되고, 그 주제가 변형·변주되며 새로운 색채를 얻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제2 주제가 등장하여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이 주제들이 서로 대화하듯 반복되고 변주되며 악장 전체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30분이라는 시간은 오히려 짧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실제로 긴 여행길에서 클래식 음악 몇 곡만 있어도 시간이 흐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풍경은 반복되지만 음악은 계속 새로운 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지루함보다 오히려 여유와 집중이 생깁니다.

과거 자가용으로 긴 여행을 떠날 때, 클래식 테이프나 시디(CD) 몇 장만 있으면 몇 시간이 금방 지나가곤 했습니다. 가끔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곡이 끝나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클래식이 좋은 이유는 곡이 길기 때문이라고. 그 길이는 지루함의 길이가 아니라, 감정이 깊어지는 시간, 몰입이 가능해지는 시간, 삶의 속도를 잠시 조절해 주는 시간입니다.

클래식의 길이는, 듣는 이의 삶을 천천히 감싸며 음악이 스스로 펼쳐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그 여백과 길이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음악과, 그리고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20190111_123157.jpg 〈석양의 여행길 풍경〉
저녁 무렵, 석양이 스며들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질 때면 장시간의 여행길은 특별한 음악 감상실이 된다. 브람스의 우수 어린 선율이나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그 순간은 어느 공연장에서도 얻기 힘든 소중한 시간이다. 무대라는 시각적 한계를 벗어나 흐르는 풍경과 음악이 조용히 어우러지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감상 공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클래식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럽에서 태어난 음악이지만 국경을 넘어 공감되는 이유는, 기쁨·슬픔·갈등·승리라는 감정 구조가 언어·문화·시대를 초월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의 기쁨이나 브람스의 슬픔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일상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울림을 주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나에게 클래식이 좋은 이유는, 그 음악이 삶의 속도를 조절해 주는 음악이라는 데 있습니다. 바쁘면 바쁜 대로, 마음이 복잡하면 복잡한 대로, 혹은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흘려보내고 싶을 때에도 클래식은 그 순간의 나에 맞는 호흡을 만들어 줍니다.

어떤 날에는 내 뛰는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어떤 날에는 조용히 등을 밀어줍니다. 그리고 반복해서 들을수록 마음은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귀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이렇게 매일 조금씩 더 깊어지는 음악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나는 그래서 클래식을 좋아합니다. 지루함 대신 깊이를 주는 음악, 감정을 흔드는 대신 감정을 정리해 주는 음악, 삶을 복잡하게 만들기보다는 삶 속의 숨길을 만들어 주는 음악. 그 음악이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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