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작은 계기들

왕초보 클래식 공연장 가다

by 류겸

1-5.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작은 계기들


돌아보면,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거창한 감동이나 특별한 사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순간들, 일상의 틈새에서 스며들어온 경험들이 조용히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것에 가깝습니다.

그 계기들은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책상 앞에서 문제집을 푸느라 정신이 없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클래식 한 구절이 문득 낯설게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 음악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때의 고요하고 안정된 공기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학교 복도에서 들리던 조회 음악, 졸업식장에서 연주되던 〈위풍당당 행진곡〉, 도시락을 먹으며 쉬던 점심시간에 교내 방송실에서 틀어주던 잔잔한 피아노곡. 그 순간들은 그저 지나가는 배경음으로 여겨졌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클래식과 처음 연결된 무수한 끈들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의 기억도 내 음악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조각이었습니다. 검은 교복을 입고 다니던 그 시절, 교내 합창단에 들어가 대회를 준비하던 시간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입시 준비 속에서 드물게 찾아온 숨구멍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특히 김재호 작사, 이수인 작곡의 가곡 〈고향의 노래〉를 연습하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 고향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합창 연습을 위해 음악실로 향하던 그 발걸음은 당시에는 단지 할 일을 하러 가는 길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내 감성의 결을 형성해 준 결정적 경험이었습니다. 그 시절 가곡은 나에게 하나의 세계였습니다. 정서가 깊고, 서정성이 살아 있으며, 말과 음악이 자연스럽게 결합된 그 울림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어느새 ‘가곡’은 내 안에서 절대적 지위를 가진 장르가 되었고, 감성적 분위기가 필요한 순간마다 떠오르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외워 부르던 가곡이 100개를 훌쩍 넘을 만큼 가곡은 내 학창 시절과 함께 깊이 녹아 있었고, 그 친숙함은 훗날 오페라와 성악 무대를 자연스럽게 즐기게 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20181023_183745.jpg 〈한국 가곡 301집〉
한국 가곡이 300곡이 넘는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중 100곡을 외워 부르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더 신기하다. 당시 지구레코드에서 발매된 ‘한국 가곡집 1~5집’ LP는 지금도 내게는 소중한 보물처럼 간직된 음반들이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경험이 언뜻 작은 사건처럼 보이지만, 그 조각들이 하나둘 쌓이며 클래식이라는 세계를 향한 문을 조금씩 열어주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하고, 서울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그 작은 계기들은 조금씩 다른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명동의 필하모니 음악감상실, 종로의 르네상스, 대학로 인켈 오디오월드—조용한 어둠 속에서 스피커 앞에 홀로 앉아 듣던 음악은 마음의 틈새를 조용히 메워주는 은근한 위로였습니다. 그때는 그저 ‘편안하다’, ‘좋다’는 감정이 전부였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은 공연장을 향한 내 감각을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단련시키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큰 계기는 역시 오디오 음악감상이었습니다. 요즘처럼 유튜브에서 세계적인 연주자의 무대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그 시절 음악을 쉽게 접하는 방식은 대부분 라디오와 카세트였습니다.

눈으로 보는 정보가 거의 없는 만큼, 우리는 자연스럽게 귀로 듣는 감각을 더 예민하게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각적 정보의 부재는 오히려 특별한 장점이 있었습니다. 시선이 붙잡히지 않으니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음악을 온전히 ‘듣기’만 하는 시간이 가능했고, 그 시간 속에서 귀는 점점 더 섬세해지고 음악의 질감·색채·흐름을 감지하는 능력이 조금씩 자라갔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잡음,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갈 때 나는 작은 기계음, 아날로그 특유의 따뜻한 소리—그 모든 것들이 당시에는 단순한 배경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클래식 감상의 문을 열어주던 소중한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던 오디오의 세계는 내게 일상의 도피처였고, 고성능 하이파이(Hi-Fi) 시스템을 통한 스피커 음압의 미세한 차이, 확실하게 좌우를 분리한 스테레오 기술 덕분에 알게 된 악기의 배치, 기계장치를 통한 음색의 깊이 등을 느끼기 위해 스스로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습니다.

하이파이 오디오 세계에서는 이러한 음질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할 줄 아는 훈련된 귀를 ‘황금의 귀(Golden Ear)’라고 부릅니다. 그 귀의 습관이 쌓이며 음악을 듣는 감각은 조금씩 정교해졌고, 이후 공연장에서 실제 악기가 울릴 때 그 차이를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그 시절의 오디오 감상은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되는 데 결정적인 기초를 만들었고, 공연장에서 들을 라이브한 생음(生音)의 충격을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적 토대를 조용히 다져주고 있었습니다.

도로나 지하철에서 들리던 보행 신호음, 카페에서 흐르던 ‘달빛’, 서점에서 조용히 깔리던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 생활 속에서 만난 클래식의 조각들은 나에게 클래식을 전혀 낯설지 않은 음악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비록 곡명을 알지 못해도, 그 친숙함은 공연장에서 느끼게 될 감동을 훨씬 부드럽게 받아들이도록 내 마음을 미리 준비시키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단 한 번의 강렬한 사건이 아니라, 수십 개의 작은 경험들이 조금씩 이어져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책상 위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 학교와 거리의 소리풍경, 감상실의 은은한 조명과 레코드(LP)의 잡음, 오디오에서 들리던 기계적이지만 안정적인 음향, 그리고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들었던 익숙한 선율까지. 그 모든 작은 조각들이 한 방향을 향해 모이고 있었다는 사실은 한참 뒤 공연장을 처음 찾았을 때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클래식은 어느 날 갑자기 내 마음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내 삶 속으로 걸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느리고 조용한 발자국들이 지금의 나를 클래식 공연장으로 데려온 진짜 계기들이었던 것입니다.


20181228_143525.jpg 〈전봇대 위의 까마귀들, 울산시〉
어느 순간 전봇대 위 까마귀들이 악보 위 음표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는 진정한 클래식 감상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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