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의 진짜 의미

왕초보 클래식 공연장 가다

by 류겸

1-4.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의 진짜 의미


음악 감상실에서의 시간과 오디오 감상 경험을 거치며 나는 클래식의 세계와 조금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가장 자주 떠올랐던 말이 하나 있습니다.


“클래식은 아는 만큼 들린다.”


이 문장은 초보 시절의 나에게는 난감한 조언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말의 진짜 의미를 조금씩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내가 음악과 관계를 맺는 태도 자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는 만큼 들린다”는 이 말은 처음에는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는 부담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클래식과 함께한 여러 해의 경험을 돌아보면, 이 말은 결코 지식을 강요하는 문장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릴 것이다”라는 조용한 격려에 가깝게 들렸습니다. 음악은 빠르게 이해하는 예술이 아니라 천천히 마음에 스며드는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선율이 좋을 뿐이었습니다. 작품의 배경도, 작곡가의 생애도, 악장의 구조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들리는 대로 듣고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익숙한 곡 속에서 작은 변화가 느껴지고, 전에는 들리지 않던 음 하나가 마치 내게 말을 걸 듯 다가오는 때가 있습니다.


20180818_233941.jpg 지휘자 상 (예술의전당)
예술의전당(예당)에 지휘자상이 있다. 공연감상을 위해 예당에 들락날락했었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사실 지휘자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 어떤 곡을 연주할지에만 관심이 있는게 당연한 것이다. 그러다가 동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안내판을 찾아보듯 음악감상도 그렇다.


왜 여기서 분위기가 전환되는지, 지금 울리는 악기는 어떤 악기인지, 지휘자의 손끝이 왜 저렇게 움직이는지,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바로 이 순간이 귀가 열리는 과정이며, 감상자가 성장하는 첫걸음입니다.


공연장에서의 경험은 이러한 성장을 더욱 깊게 만들어 줍니다. 오디오라는 기계장치로는 인간의 귀에 들리는 가청주파수 영역에 해당하는 20~20,000Hz 특정 주파수만 재현되기 때문에, 20Hz 미만 초저역이나 20,000Hz 이상 초고역 같은 귀에 들리지 않지만 몸으로는 느끼는 영역이 제거됨으로써 소리의 입체감이 다소 제한될 수 있지만 공연장은 다릅니다. 무대 위의 악기 움직임과 연주자의 호흡, 지휘자의 손짓과 몸의 긴장이 모두 시각과 청각을 통해 동시에 들어옵니다. 그기에 더해 초저역과 초고역의 귀로는 들리지 않지만 몸이 느끼는 소리가 몸 전체로 다가오는 순간, 음악은 단순히 들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고 느끼는 예술’로 변합니다. 나는 여러 공연 감상의 경험을 통해, 오랫동안 오디오로만 상상해 왔던 소리와 실제 연주 장면이 하나로 겹쳐지는 경험을 하며 음악을 훨씬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지식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음악을 여러 방식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공부할 때 흘러나오던 잔잔한 배경음, 감상실에서 LP를 뒤적이던 설렘, 비 오는 날 커피 향과 함께 듣던 선율, 오디오 장비를 바꾸며 미묘한 음색 차이를 느끼던 작은 즐거움, 마음이 복잡한 날 위로가 되었던 현악기의 떨림까지, 이런 사소한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어느새 나는 클래식에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공연장을 처음 찾았을 때, 그동안의 모든 경험이 나를 그 자리로 이끌어준 것임을 분명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확신합니다.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은 지식을 채워야 한다는 요구가 아니라, 시간과 경험이 감상자의 귀를 천천히 열어준다는 약속 같은 문장입니다. 음악은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면 멀어지고, 있는 그대로 느끼려 하면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결국 클래식 감상의 본질은 귀의 성장 이전에 마음의 성장입니다. 들리는 만큼 듣고, 느껴지는 만큼 느끼는 것, 그 과정을 존중하는 것이 음악과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입니다.


이렇게 음악과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면서 나는 비로소 공연장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소리만 듣던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실제 연주자와 악기의 움직임, 공연장의 공간감, 그리고 그 안에서만 느껴지는 감정의 진동을 직접 경험할 차례가 찾아온 것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내가 처음 공연장을 찾았던 순간, 그날의 공기와 감정, 그리고 그 경험이 제 감상 여정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인간 청각의 40-phon 등청곡선(민감도 곡선).png 〈인간 청각 민감도와 주파수 대역 관계〉
인간 청각 (40phon) 등청 곡선에서, y축이 아래로 내려갈수록(값이 작을수록) 작은 소리도 잘 들리는 구간, 즉 민감한 영역이고, 대략 1kHz~5kHz에서 가장 아래로 떨어져 있어 이 구간이 가장 잘 들리는 소리 대역이다. 이를 악기·음성·스피커 대역으로 비교해 보면,
피아노(약 27.5Hz~4,186Hz)는 거의 저역부터 중·고역까지 광범위하게 커버하고, 바이올린(약 196Hz~3,136Hz)은 사람 귀가 민감한 중역대(kHz1~3kHz)에 상당 부분 걸쳐 있다. 첼로(약 65Hz~988Hz)는 저·중역 중심으로 따뜻하고 두툼한 영역이며, 플루트(약 262Hz~2,093Hz)는 밝고 맑은 중·고역 중심으로 분포한다. 사람의 경우, 남성 음성(기본+배음 약 85Hz~4kHz)과 여성 음성(기본+배음 약 165Hz~5kHz)으로 둘 다 귀가 민감한 대역(1kHz~4kHz)을 깊게 파고들기 때문에 말소리, 노랫말이 잘 들리고, 거슬릴 때는 또 굉장히 거슬리게 들린다.
오디오 장치로는, 하이파이 스피커(대략 40Hz~20kHz), 보급형 스피커(대략 80Hz~15kHz), 이어폰(명목상 스펙: 20Hz~20kHz)로 실제 체감은 설계·품질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 그래프에서 읽을 수 있는 포인트로는, 악기와 사람 목소리 대부분이 귀가 가장 민감한 영역(1~5kHz)에 핵심 정보가 모여 있고, 하이파이 스피커나 이어폰은 가청 주파수의 전 영역을 커버하려 하지만, 음악적 ‘핵심 감동’은 사실 중역대(특히 500Hz~4kHz)에서 많이 만들어진다. 극저역(20~40Hz)과 초고역(15~20kHz)은 귀로 듣기보다는 피부로 ‘느끼는’ 영역 혹은 공간감이나 공기감을 더해주는 역할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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