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오디오 감상 경험 – 소리를 통해 나를 알아가기

왕초보 클래식 공연장 가다

by 류겸

1-3. 오디오 감상 경험 – 소리를 통해 나를 알아가던 시간


음악 감상실을 드나들던 시절이 지나자 나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집에서도 ‘더 좋은 소리’를 찾아 듣기 시작했습니다. 음악 감상실을 통해 많은 음악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레코드점에 들락날락거리는 횟수도 늘어나고 서울 살 동안에 청계천 레코드점은 주말이면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부산으로 내려와 살 때는 국제시장 오디오상가 레코드점이 또한 참새가 들리는 단골 방앗간처럼 되었습니다.


오디오 감상은 공연장이나 감상실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였습니다. 레코드(LP)판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살짝 올리는 그 짧은 순간부터 이미 음악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큰 공간에서의 울림이 아닌, 가까운 거리에서 듣는 순수한 소리의 질감, 악기의 배치, 음색의 결을 스테레오라는 작은 공간에서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ar_xa.jpg 〈1960년대 AR-xa 턴테이블〉


내가 본격적으로 오디오에 빠져들었을 때는 아날로그 레코드와 시디(CD)가 공존하던 과도기였습니다. 레코드(LP)판 특유의 따뜻한 질감과 시디(CD)의 선명한 사운드는 서로 비교하면 어느 하나가 더 우월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레코드(LP)판은 시간의 결이 묻어 있었고 시디(CD)는 소리의 윤곽이 분명했습니다. 이 둘을 오가며 듣는 동안, 나는 음악이 ‘재생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스피커를 바꾸었을 때, 처음 들었던 음악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합니다. 현악기의 선율이 조금 더 따뜻하게 들리는지, 금관의 울림이 넓게 퍼지는지, 피아노의 타건이 섬세하게 들리는지에 따라 음악이 주는 감정도 달라졌습니다. 오디오 감상은 결국 ‘더 나은 장비’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내 마음이 어떤 소리를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공연장이나 감상실은 ‘일부러 찾아가는 공간’이었다면, 오디오는 일상 속의 음악이었습니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불빛을 낮추고 음악을 틀어 놓으면 세상과 마음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며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음악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나를 정돈하고 회복시키는 하나의 생활 리듬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학생 시절과 달리, 성인이 되고 난 후 클래식은 더 이상 배경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음악 감상실’이라는 공간이 존재했고, 어두운 조명 아래 소리 좋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을 들으면 세상이 잠시 고요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좋은 소리라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스피커 하나가 바뀌면 소리가 다르게 들리고, 소리를 증폭시키는 앰프의 성격에 따라 음악의 무게감이 바뀐다는 사실은 하나의 취미이자 작은 연구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본격적으로 더 나은 소리를 찾아 헤매었고, 오디오를 통해 음악의 결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Audio] 2005년 AV_hifi시스템.jpg 〈2005년 필자의 가정용 음악실〉
2000년대 초반에는 AV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가정에서는 하이파이(Hi-Fi) 오디오 시스템과 병행하여 5채널-AV 시스템도 함께 갖추었다. 하이파이로는 일본제 아큐페이즈(accuphase) 앰프와 덴마크제 다인(Dynaudio) 스피커, AV로는 일본제 로텔(Rotel) AV리시버와 영국제 미션(Mission) 스피커, 삼성 와인형 TV가 보인다.


그 시절의 나는 클래식을 ‘듣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과정은 오히려 음악이 아닌 ‘소리’를 쫓았던 시간이기도 합니다. 음악에 가까워지는 길이지만, 정작 음악 자체는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길목에 내가 오래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공연장을 찾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오디오 감상의 단점 중 하나가 음악(音樂: music)보다는 음질(音質: sound)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디오 감상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었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결국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울림’을 듣는 것이라는 사실을.

오디오가 아무리 좋아도 연주자의 손끝에서 음이 떨리는 순간, 악기 사이로 지나가는 공기의 흐름, 무대 위에서 생겨나는 미세한 템포의 변화, 이런 살아 있는 요소들은 결코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이 깨달음은 결국 나를 공연장으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나는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음악의 본질’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20160617_224837.jpg 〈LG아트홀, 강남구시대〉
강서구로 이전한 LG아트센터 뮤직홀의 강남구 시대 무대. 바로 앞에서 연주자의 손끝 떨림을 보게 되면, 다시 공연장을 찾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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