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상을 대하는 태도 - 아부가 아닌 처세

마음의 힘, 관계의 흐름

by 류겸

6-1. 아부가 아닌 처세


사람 사이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말보다 태도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꾸미는 말은 쉽지만, 진심을 담되 기품을 잃지 않는 태도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을 잃은 채 세상에 맞추는 사람, 그리고 세상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사람.


바람이 불면 모든 풀은 눕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멈추면 금세 다시 일어서는 풀과, 아예 바람 방향에 따라 몸을 비트는 풀은 다릅니다. 전자는 유연함이고, 후자는 아첨입니다. 바람에 흔들릴 수는 있어도, 뿌리까지 뽑히면 그것은 더 이상 생명력이 아닙니다.


‘처세(處世)’는 바람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지키면서 바람을 통과하는 지혜입니다. 아부는 외부의 바람에 자신을 내맡기지만, 처세는 그 바람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공자는 『논어』 「위정(爲政)」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자는 화합하되 아첨하지 않고, 소인은 아첨하되 화합하지 않는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는 큽니다. 화합(和)은 원칙 속의 조화이고, 아첨(同)은 중심을 잃은 동조입니다. 군자는 마음속 중심을 기준으로 타인과 조화를 이루지만, 소인은 중심 없이 상대의 비위를 맞추며 동조합니다.


맹자도 『진심장(盡心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에게 굽히는 자는 자기 마음을 잃은 자이다.”(屈人者, 喪己之人也.)

즉, 세상에 맞추느라 스스로를 잃는 것이야말로 진짜 위험한 처세입니다.


조선의 정조는 실학자들을 중용하며 개혁을 추진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반대와 모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신들의 말을 모두 경청했으나, 결정은 언제나 자신의 원칙에 따라 내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정은 사사롭고, 의리는 공평하다. 나는 인정보다 의리에 따를 뿐이다.”


정조는 아첨하는 대신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쓴소리를 하는 신하라도 진심이 있다면 끝까지 중용했습니다. 그의 처세는 세상에 맞추기보다는, 공정한 중심을 지키며 세상을 다스리는 길이었습니다.


반면 진시황의 측근 조고(趙高)는 황제의 비위를 맞추며 거짓 보고로 나라를 망쳤습니다. 그는 황제 앞에서 늘 달콤한 말만 올렸고, 현실의 문제를 덮었습니다. 결국 황제가 죽자 조고는 권력을 장악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역사는 증언합니다. 아부는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주지만, 결국 자신과 세상을 함께 무너뜨린다. 아첨의 끝에는 신뢰의 붕괴가 있고 신뢰 없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Human, All Too Human)』에서 말했습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남을 만족시키는 데 있지 않고, 자기 내면의 진실에 충실한 데 있다.”


니체가 말한 ‘진실’은 단순한 솔직함이 아니라, 자기 확신과 책임의 태도입니다. 세상은 때로 사람에게 타협을 요구하지만, 자기 내면의 진실을 잃지 않는 자만이 결국 자유로운 인간으로 남습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아부형 인간을 ‘외적 승인 욕구(external approval need)’가 높은 사람이라 설명합니다. 즉, 타인의 인정이 자신의 가치의 근거가 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사회적 칭찬에 중독되기 쉽고, 비난에 취약합니다.


반면 처세형 인간은 ‘자기 일관성(self-consistency)’이 강합니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정한 성숙은, 외부의 기대와 내면의 신념이 일치하도록 살아가는 것이다.”


아부는 외부의 기준에 내면을 맞추는 삶이고, 처세는 내면의 기준으로 외부를 조율하는 삶입니다. 전자는 불안정한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고, 후자는 자기 존중감(self-respect)에 근거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젊은 시절부터 ‘정의와 인간 존엄’을 지키는 처세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일본 법정에서조차 기개를 잃지 않았습니다. 재판장이 “당신은 왜 이토를 쏘았는가?” 묻자,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한 개인을 쏜 것이 아니라, 침략의 야욕을 쏜 것이다.”


그의 말에는 아부도, 변명도 없었습니다. 진심과 중심이 있었기에 그의 처세는 죽음 앞에서도 빛났습니다. 진짜 처세는 세상의 비위를 맞추는 기술이 아니라, 정의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태도입니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수많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균형을 잡는 일입니다. 모난 돌은 다듬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둥글다 못해 중심을 잃으면 굴러떨어집니다.


공자는 이를 “온유하되 강건하게”라 했습니다.

“온화하되 경계를 지니고, 위엄 있으되 포악하지 않고, 공손하되 스스로 편안하라.”(温而厲, 威而不猛, 恭而安.)


즉, 부드러움 속에 강함을, 겸손 속에 중심을 담는 것이 진짜 처세입니다.

세상과 사람 사이에서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세상과 맞서 싸우는 일이 아닙니다. 아부하지 않되, 교만하지 않고. 부드럽되, 중심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곧 ‘아부가 아닌 처세’입니다.


아부는 일시적인 이익을 얻지만, 처세는 오래가는 신뢰를 남깁니다. 아부는 사람의 눈을 얻지만, 처세는 사람의 마음을 얻습니다.


♣ 마음 연습

· 오늘 하루,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는 말 대신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해보기.

· 비난을 듣는 순간 즉시 반박하지 않고, 내 중심의 기준으로 해석하기.

· “나는 지금 인정받기 위해 말하는가, 진심을 나누기 위해 말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세상은 늘 바람이 붑니다.

아부는 바람에 실려 떠다니지만,

처세는 그 바람을 등지고 나아갑니다.

세상에 맞추되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 ―

그가 바로 중심 있는 인생의 주인입니다.

월요일 연재
이전 18화5.사람 사이에서 단련되는 마음 - 관계 속에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