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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Jun 05. 2024

그 사람다움

인터뷰어 현수 / 포토그래퍼 누비



* 성균관대학교 랑(은미) 과의 인터뷰입니다.






    나를 잘 아는 게 큰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좋아하는 걸 정리한 노트를 만들고, 하고 싶은 것만 적은 노트를 만들고, 이런 거에 엄청 열성이거든요. 좋아하는 음식도 그저 피자, 파스타 이렇게 적는 게 아니라 할머니가 만드신 고추장물 아니면 익지 않은 피망은 못 먹는다 이런 식으로 세세하게 나를 분석해요. 누가 나한테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물었을 때 바로 대답할 수 있을 만큼 나를 잘 알고 싶어요.






    10살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엄마가 공연을 보여주셨는데 보러 가기 전에는 너무 싫었어요. 장난감이 받고 싶은데 들어보지도 못한 공연을 갑자기 보여준다고 하니까 짜증 내면서 갔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객석의 웅성거림이 사라지고 오케스트라 소리가 나오는 순간 너무 벅차오르더라고요.
 

    평소에 현재를 산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나갈 과거를 살고 있다고 자주 생각하거든요. 공연을 볼 때는 정말 오롯하게 그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그리고 공연은 완성된 걸 보는 게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보는 거잖아요. 그게 영화랑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는 감독의 시선대로 조합된 완전한 작품을 보는 거라면 뮤지컬이나 공연은 무대 위에 배우들의 실수, 호흡 한 번 아니면 오케스트라의 음 하나에 따라 모든 분위기가 달라지니까요. 또 관객이 무대를 볼 때 어디를 볼지 결정할 수 있잖아요.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데 다 다른 걸 보고 있다는 게 가끔 신기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공연을 보면) 좀 숨 쉬는 기분이 드는 것 같아요.






공연을 정말 좋아한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나요?


    스물두 살 겨울에 힘들어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너무나 무기력하고, ‘내가 왜 이 지금을 생존해 오고 있지?’라는 질문이 자꾸 들더라고요. 공연도 안 보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한 공연을 보게 됐어요. 좀 과하게 말하면 구원받았다 싶을 정도로 ‘그 공연을 보기 위해서 내가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힘든 시기였는데도 하루 종일 일한 다음 저녁에 공연 보고, 밤새고 또 공연 보고, 이거를 거의 두 달 동안 반복하면서 다시 힘이 생긴 것 같아요. 공연으로부터 얻는 에너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이건 나한테 단순한 취미나 기호의 수준을 넘어서 어떤 의미를 갖는구나 라는 생각이 크게 들더라고요.
 
 




    다른 사람한테 왜 음악이 좋은지 묻는 건 나랑 비슷한 음악을 듣는 사람을 자꾸 찾게 돼서 그런 것 같아요. 그전에는 그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 안 해봤거든요. 그런데 자우림 콘서트에 갔을 때 김윤아 씨가 같은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비슷한 결핍을 공유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어쩌면 내가 나랑 비슷한 결핍이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서로 공감하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비슷한 음악을 듣는 사람을 찾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휴스꾸에 들어올 때 지원서에 썼던 문장을 실제로 해볼 수 있어서 무척 뜻깊었어요. 사람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삶에는 정말 수많은 방향이 있다는 걸 아는 시간이었어요.


    사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결국 나를 구성하는 일부잖아요. 사람들의 생각이나 했던 말들이 나한테 와서 내가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시간을 지나서 여기 있게 됐고, 어떤 감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 항상 궁금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거나 대체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증이 계속 있었어요.


    왕할머니가 어릴 때 밤에 화장실을 가면 건너편 산에 호랑이의 눈빛이 보였대요. 일제강점기 때 일본 건너가셨다가 돌아오시고, 6·25 전쟁도 겪으셨거든요. 그런 이야기는 책에서만 봤는데, 실제로 겪은 사람이 나의 옆에서 생생하게, 진실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내가 살지 못한 시간을 내가 들을 수 있는 것도.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자꾸 궁금해하고, 그걸 통해서 나는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까 기대도 하는 것 같아요.






    나의 예민함을 좀 더디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서 다른 사람이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했을 때 자꾸 이유를 붙여주려고 하고 있어요. 자꾸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거고, 내가 함부로 판단했다가 이유가 있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될 때 너무 견디기 힘드니까요.

     

    잘 안되더라도 ‘그럼에도’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세상이 좀 밝아지는 것 같달까? 요즘은 사람들이 다양하니까 이해를 못 하는 지점들이 엄청 많아지고 있잖아요. 거기에 한 번씩이라도 ‘그럼에도’를 붙이면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놓지 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래봤자 안 변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더 경계하는 편이에요. 적어도 내 주변은 조금 바뀔 수 있으니까 그런 마음을 안 놓으려고 해요. 





    우리나라는 만석 지하철이면 사람들이 엄청 힘들어 보이잖아요. 그런데 런던 지하철이 너무 신기했던 게 거기도 퇴근 시간이고, 분명 다들 힘든 몸을 갖고 들어왔을 거고, 심지어 더 좁거든요. 정말 비좁았는데 문 쪽에 서 있던 사람들이 웃으면서 ‘미안해요. 잠깐만 내릴게요.’ ‘하하. 내리세요.’ 이러고 갑자기 스몰 토크를 시작하더라고요. 이렇게 밝은 마음을 잃지 않았을 때 결국 분위기 자체가 바뀔 수 있구나. 이렇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 수는 없는 건가 그 지하철 안에서 많이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는 어떻게 여유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고, 그걸 기점으로 삶을 너무 가득 채워서 살지 않으려고 하게 된 것 같아요. 타인을 살펴볼 여유 정도는 항상 두고 싶어요.






    ‘은미답다’라는 말에 온통 반대되는 것도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유럽 여행 다녀오면서 굳이 다 벗어 던지지 않아도 일상에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서는 다들 나를 모르는데도 제가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굳이 다음을 기약하지 않고 지금 당장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처음 만난 사람한테 말을 걸어서 친해지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여행 갔다 와서는 그냥 말을 걸게 됐어요. 국숫집에서 국수 먹다가 옆자리에 외국인이 앉아 있으면 얘기하다가 친해져서 같이 여행하게 된 것처럼요. 이런 일들이 멀게만 느껴졌는데 마음을 달리 먹으니까 바로 할 수 있구나 싶어서 나답지 않은 행동을 굳이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더라고요. 나다움을 언젠가는 알게 될까요? 평생 모르는 것도 재밌을 거 같아요. (웃음)


    예전에는 이상향을 정해놓고 그것에 맞춤형인 나를 가꿔 나가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면, 요즘은 매 순간에 새로운 블록을 갑자기 가져가서 이어 붙이는 기분으로 살고 있네요. 그저 나를 띄워놓고 흘러가고 있는데, 대신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계속 인지하기로 생각을 바꿨어요. 쉽게 되지는 않지만.






랑(은미)만의 사전 인터뷰 방식이 궁금해요.


    저는 인터뷰이랑 *라포르 형성이 안 되면 인터뷰이도 이야기를 안 들려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나 봐요. 학보사 하면서도 좀 생긴 것 같고요. (웃음) 그 과정을 이메일로 하기는 어려우니까 가능한 한 대면으로 찾아봬서 간단하게 한 5분, 10분 만이라도 얘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시작은 미화원님이었어요. 명함을 드렸는데 컴퓨터를 다루기 불편하다고 하셔서 그러면 대화를 해도 상관없다고 하며 시작하게 됐거든요. 저도 사전 인터뷰를 대화로 하는 게 훨씬 편하고, 인터뷰이도 본 인터뷰 때 얘기를 더 많이 들려주시더라고요. 아마 연령대나 인터뷰이들의 특성도 조금 있지 않을까 싶지만, 인터뷰이들이 응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사실 인터뷰를 위해서 두 시간씩 시간을 내주신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잖아요.




*라포르: 두 사람 사이의 공감적인 인간관계 또는 그 친밀도를 의미한다.






스스로를 위해서 해주는 것이 있나요?



    걷는 거, 햇볕 쬐는 거, 공연 보는 거, 맛있는 거 먹는 거. 오늘도 케이크 먹었어요. (웃음) 그리고 도서관 가서 누워 있는 거,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거, 아침 잘 챙겨 먹는 거. 사람들 만나는 것도.


도서관에 누워 있는 건 어떤 점에서 좋나요?


    도서관을 정말 좋아해요. 책이 가득해서 단정한 공간을 보고 있으면 나도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좀 새로워지고 싶기도 하고요. 나를 잘 돌봐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 공간이라서 도서관에 가는 것 자체도 나를 위한 행위라고 생각해요. 햇빛이 나를 향해 쏟아지고 거기에서 나른하게 누워 있을 때 오는 충족감이 정말 좋거든요.






인터뷰어 현수 / 포토그래퍼 누비

2024.05.25 랑(은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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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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