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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May 29. 2024

힘들어도 좋다는 말의 깊이

인터뷰어 경청 /  포토그래퍼 또트, 지은



* 종로02 김두하 기사과의 인터뷰입니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이름은 김두하고, 2017년부터 종로02 버스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옥외 광고 건설 현장에서 있었던 게 기억나네요. 90년도부터 우리나라 건설 회사들, 현대나 래미안 같은 유명한 곳을 돌아다니면서 전국에서 일을 했죠. 퇴직하고 나서는 버스 기사 일이 정년이 정해져 있지 않길래 시작하게 됐어요. 전에 종로 계동에서 20년 정도 회사를 다닌 적이 있어서 길이 익숙하기도 했고요.  





버스를 보통 몇 시간 동안 운행하시나요? 

 요새는 시간이 조금 달라졌어요. 출근을 오전 5시에 하고 아침을 먹고요. 6시 정도에 출발해서 오후 2시까지 운전을 해요. 이게 오전반이고 오후반은 오후 2시부터 교대를 하거나 3시 20분부터 4시 사이에 출근해요. 보통 그 사이에 식사를 하는데 혹시라도 출근 시간이 조금 늦으면 7~8분 내로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해요. 5분 만에 먹기도 하고요. (웃음) 

 저기 종각역 YMCA에서 11시 30분이 막차예요. 사실 종로02 타시는 분들은 버스 도착 예정 시간과 실제로 도착하는 시간이 몇 분 차이가 나도 아무 말 없으세요. 그런데 종로01 타시는 분들은 뭐라고 많이 하시죠. 이 일 하면서 가장 힘든 건 굳이 듣지 않아도 될 욕을 들어야 할 때예요. 가끔은 승객분들끼리 크게 싸우시기도 하고요. 


- 자녀분들이 걱정하실 것 같아요. 

 애들은 일하지 말라고 하죠. 그럴 때 저는 이 나이에 이렇게 사회생활 한다는 것 자체가 좋다고 해요. 내가 번 돈으로 손자들이 필요하다는 거 척척 사주고, 기분 좋잖아요. 





버스 운행하시면서 가장 행복한 하루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래도 가장 행복한 건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때죠. 자식이 둘 있는데 큰 애는 딸이고 작은 애는 아들이에요. 저는 젊을 때부터 주말만 되면 피곤해도 애들 데리고 나가서 놀이공원도 가고 그랬어요. 그렇게 애들 태어나고 나서부터 매주 주말마다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을 모아뒀거든요. 기차도 타고 버스도 타고 놀러 다니면서 키웠는데요. 지금 보면 큰 애는 그 사진 모아둔 앨범이 자기 보물 1호래요. 성장 과정이 다 나와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큰 애는 주말에 다른 데 안 가고 집에 와요. 아빠 어느 산에 갈 거냐, 오늘 어디 갈 거냐, 하면서요. 결혼하고서도 친구들이랑 놀고 아빠랑 노는 게 좋은가 봐요. 저도 주로 한 주는 밭에 가서 농사짓고, 한 주는 자식들이랑 외식하거나 손자들하고 놀면서 지내요. 평범하지만 그게 제일 좋지 않겠어요.  





버스 기사 일은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사님은 즐거워 보이세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죠. 그래도 예전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환경이 많이 좋아진 편이에요. 그때는 차도 많이 없어서 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오후 11시 반까지 일하고 다음 날 새벽에 출근하고 그랬거든요. 이제 그런 일은 안 일어나잖아요. 사람들이 몰려서 뒷문으로도 타고 할 때는 전부 다 인사를 건네지는 못하지만, 앞문으로 타는 사람들에게는 되도록 전부 인사하려고 해요. 내 한마디로 듣는 사람이 기분 좋으면 다 괜찮은 거잖아요. 저기 원서동에서 뵌 분은 처음에 대답도 안 하시다가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보니 먼저 인사하시기도 하고요. 이런 게 참 좋잖아요, 그렇죠. 

 종로 02 노선 중에서는 성대 종점이 제일 기억에 남고 좋아요. 학생들은 얼굴이 맑아요. 종점에서 출발하려고 할 때 계단으로 열심히 올라오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아마 다른 기사들도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승객분들한테 인사를 자주 건네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원래 이 일을 처음 시작하면 종로01 먼저 운행하게 돼요. 그리고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제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첫 3개월은 무보수로 일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이 일이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즐겁게 일하면 즐거워요. 종점에서 출발할 때 무전기로 내가 즐겁게 한마디 하면, “사십오 분 출발”인데 “사땡분 출발”하고 가면 다른 기사들도 웃을 수 있고요. 승객분들이 인사를 안 받아줘도 아무 상관이 없죠. 내가 인사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요. 

 동네 사람들 태워주고 내려다 주는 게 제 일이에요. 특히 종로01은 노인 분들이 많이 타요. 그분들께는 사실 마을버스가 자가용 같은 존재거든요. 그래서 저도 버스 몰면서 가다가도 힘들게 걸어가고 계신 분들 보면 태워드리기도 하고 그랬죠. 이게 다른 사람 기분을 좋게 해주는 일이 되잖아요. 그게 기쁘더라고요. 종로01에 비해서는 종로02에 학생도 많고 태울 사람도 많아요. 그래도 좋은 점이 하나 있어요. 제가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하면 학생들이 “넹!”하고 가잖아요. 그 대답하는 소리가 정말 듣기 좋더라고요. 너무 예쁘잖아요. 그러니까 힘들어도 좋은 거예요.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 성대 학생이 있나요? 

 버스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린 학생이 있었어요. 사실 기사는 운전하느라 어떤 물건이 버스에 있는지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누가 찾아서 가져다주신 거죠. 그때부터 참 다행이다 싶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제가 주인을 찾아줬을 때도 정말 뿌듯했고요. 택시를 몰 때도 한 번 시청에서 50대 정도 되는 아주머니가 노트북이랑 서류 다 들어가 있는 가방을 두고 내리신 적이 있어요. 이미 출발했는데 그분이 전화가 와서는 미터기를 찍고 다시 시청으로 가져다주실 수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가서 드리니까 인사를 몇 번이나 하시면서 고마워하시는데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자꾸 돈을 주면서 받으라고 하시는데 안 받았죠. 내 물건도 아니고 본인 물건 본인한테 돌려주는 건데요. 그렇게 찾아드리고 나면 그날은 퇴근할 때까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은 거예요.  





택시 일도 잠깐 하셨다고요.

 이 일을 시작하기 직전에는 콜 받고 가는 개인택시를 몰았어요. 대체로 장애인 승객분들 태워드리는 일을 많이 했어요. 택시 회사에서 장애인 승객 분들을 태울 기사를 구해요. 회사에서 저한테 맡겨도 괜찮겠냐 묻길래 당연히 괜찮다고 했었죠. 그때도 인사를 다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두세 번 정도 보는 승객분들하고는 친해지기도 했어요. 저한테 자기소개를 하시기도 하는데 그게 재밌었어요. 그리고 그때 느꼈지만, 우리나라 택시가 다 좋은데 나쁜 점이 하나 있어요. 휠체어 장애인 분들이 타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마을버스는 저상 버스나 전기 버스가 있어서 휠체어 탑승이 가능하게 돼 있거든요. 근데 택시는 그런 게 없잖아요.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셨나요? 

 제가 공고를 나왔어요. 그때 당시에는 화공과가 인기였거든요. 화공과를 나오면 삼성에 들어가고 기계과나 전기과를 나오면 현대 들어가고 이런 게 있었어요. 그래서 시험 쳐서 고등학교 화공과 들어가고 그랬죠. 그렇게 건설하고 기계 만들고 이런 일들이 어떻게 보면 지금 하는 일과도 비슷해요. 옥외 광고 만들 때는 일하다 보면 미대 학생들이 와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걸 지켜볼 일이 많았어요. 그런 학생들 보면 참 대단하고 기특하거든요. 그리고 내가 만든 광고가 건물 높이 걸려 있는 걸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요. 젊을 때 직업이 참 많았어요. 옥외광고 만들기 전에는 정밀기계를 만들었어요. 밀링이랑 선반 기법으로 쇠를 가공해서요. 그게 3D 직업에 들어갈 정도로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도 만드는 일을 참 좋아했던 거 같아요.  





버스 기사 일이 원래 하고 싶으셨던 거예요?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사실 농사예요. 지금도 취미로 하고 있고요.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집에서 복숭아 과수원을 했었어요. 옛날 농촌에는 사무실에도 밭이 있었거든요. 그런 공간에 복숭아나무를 심어 두고 경운기로 수확을 해서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팔았었죠. 그때는 요즘 농부들이 쓰는 트랙터나 기계가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다니다 보면 재밌었던 게 동네 분들이 복숭아 맛보겠다고 하실 때 한두 개 정도는 기분 좋게 드렸어요. 그때부터 그런 일들이 좋았나 봐요.  

 지금은 주말마다 강촌에 있는 밭에 가서 이것저것 심으면서 농사를 지어요. 주말에는 버스 일을 안 하거든요. 그래서 집에서 먹는 거 웬만한 건 다 농사지어서 먹어요. 친가는 멀리 있고 처가에 처형이 두 분 계셔서 야채 심으면 많이 가져다드리죠. 나중에 농사도 못 지을 정도로 나이가 들면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며 사는 게 꿈이에요. (웃음)  





성대 학생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거창한 목표를 내세워서 그걸 성취하는 것도 굉장히 큰 보람일 거예요. 그런데 자식들한테도 항상 하는 말이지만 나는 학생들이 목표보다도 본인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어요. 큰 목표를 쫓아가는 것도 좋지만 나는 뭘 해야 행복한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거예요. 나를 위해서요. 저도 지금 거의 나를 위해서 하는 일들이에요. 헬스장을 한 번 다녀보니 잘 안 나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집에 운동 기구를 가져다 놓고 운동하고 있어요. 건강을 위해서요. 산에 가는 것도 사실 애들 엄마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내가 가고 싶을 때는 혼자서라도 다녀오고요. 주말이 이틀이니까 하루는 가족과 함께 보내더라도 하루는 나를 위해 보내는 거예요.   








인터뷰어 경청 / 포토그래퍼 또트, 지은

2024.05.15 종로02 김두하 기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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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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