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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스꾸 May 22. 2024

부드럽고 단단하기

인터뷰어 지민 / 포토그래퍼 민경



* 예림 과의 인터뷰입니다.




    조금 우유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정확히는 제 마음 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나 행동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는 걸 기피한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상대에게 진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상대가 그 말을 들었을 때 상처 받거나 혹은 제 조언대로 했을 때 결과가 좋지 않은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진지한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속으로만 수 백 번을 고민하느라 그 순간에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서 제 의도와는 달리 상대방을 더 화나게 한 적도 많았어요.


    요즘 말하는 ‘회피형’의 특징을 가진 게 아닌가 생각하긴 하는데, 단순히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내가 이 말을 해서 우리 관계가 끝난다면?’, ‘내 마음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상대가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지?’ 같이 제가 누군가의 결과가 되는 게 두렵더라고요. 특히 사람들의 말투나 표정 같은 것에 예민한 편이라서 더 그런 건가 싶어요.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고 부드러운 표현이지만 할 말은 하는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게 제 목표예요.





    부끄럽지만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내는 편이에요. 제가 집순이인 것도 있고, 주로 유튜브나 SNS, 넷플릭스를 보는데 그 시간 동안은 다른 생각이 안 들어서 좋거든요. 

    평소에 저는 생각이 많다고 느껴요. ‘ㅇㅇ이한테 어제 했던 말은 좀 심했나?’, ‘그때 이렇게 받아쳤어야 되는데’, ‘어제 봤던 옷 살까 말까’, ‘그때 했던 행동은 너무 부끄럽다’ 등 짧게는 오늘 있었던 일부터 길게는 초등학생 때 있었던 일까지 마구 떠올려요. 무언가를 집중해서 하고 있는 동안에는 이런 생각이 안 들지만, 휴식 시간에는 특히 잡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싶을 때 눕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다이어리 꾸미거나 소소한 디저트 만들기, 네일아트, 그림그리기를 열심히 해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저한테 돈과 시간, 에너지를 모두 들이는 일은 휴식이 아니라고 느껴졌어요.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걸 해야 쉬는거야!’라는 강박도 생기고요…. 요즘은 디지털 디톡스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서 짧게라도 혼자 산책하거나 강아지랑 노는 시간을 늘이고 있답니다.





    지금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계속 연락하는 사람이 되어 있으면 좋겠어요. 인간 관계가 좁은 편이라서 지금 친구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거든요. 대학에 와서 만난 친구들이 같은 전공 안에서 비슷한 진로,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저의 여러가지 모습들까지 이해해주는 소중한 존재들이에요. 또 그때에는 제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정말로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가능하다면 미술교육 쪽에서 근무하면서요. 교육 기획보다는 실제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돈에 연연하기 보다는 제 나름대로 삶의 밸런스를 잘 맞춰 나가는 방법을 깨달은 커리어 우먼이 되어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시간이 가장 소중하게 느껴져요. 이전까지는 잘 못 느꼈었는데 스무 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또 작년에 제가 정말 좋아했던 선생님이 작고하시면서 많은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로 제가 가진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게다가 대학 졸업이 가까워지니까 코로나 동안 못 해봤던 활동들, 기회가 있었지만 시간이 많다고 생각해서 안 해 봤던 것들이 후회되더라고요. 대학 생활 중에 학생회를 했던 시간들이 제일 기억에 남고 소중한 추억인 것 같아요. 평생 집순이로만 살 줄 알았는데 이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단체 생활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어요. 마음은 아직 학생인데 조금만 있으면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계속 학생이고 싶기도 하고, 아직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어떡하지 싶기도 하고요. 어른들이 20대 초중반 대학생 때가 제일 좋은 시기라고 말씀을 많이 하셨었는데, 이제 곧 사회인으로서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원하던 걸 성취했을 때 기쁜 것 같아요.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게 제 삶의 원동력이거든요. 원래는 타인에게 인정받는 게 인생에 1순위였어요. 상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는 왜 이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라는 답답함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작년에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 한 선생님께서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좋은 태도이긴 하지만, 타인을 의식해서라도 나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괜찮은 것 아닐까?”라고 말해주셨어요. 그렇게 노력해서 좋은 사람이 되면 스스로도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라고요. 가볍게 조언해주신 건데도 순간적으로 많은 위로가 되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긍정적으로 사고하려고 노력 중이라 무언가를 해냈을 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귀찮음을 이겨내고 나가서 운동할 때 등등 내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면 작은 일이라도 해 보려고 해요.


인터뷰어 지민 / 포토그래퍼 민경

2024.05.22 예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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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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