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오늘 / 포토그래퍼 은영, 조아
* 민채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첫 단편영화 연출작이 거의 완성됐다고 들었어.
어떤 이야기를 담았어?
원래 시놉시스는 도둑질하면서 쾌감을 느끼던 청소년의 이야기,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을 조명하는 이야기였어. 상당히 사회 고발적인 내용이었지. 그런데 재미가 없고 단편 영화가 담기에 너무 거창한 주제인 것 같아서 방향을 틀었어.
최종적으로 바뀐 내용은 이래. 도둑질을 통해서 쾌감을 얻는 주인공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어른을 만나고, 그 어른에게 보답하려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실패하는 이야기. 영화 제목이 <궤도>인데 ‘괴도키드’의 ‘괴도’와 (발음이) 똑같잖아. 괴도가 결국에는 궤도에 안착하는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
제목의 ‘궤도’는 어떤 의미야?
궤도라는 말 자체에 집중했어. 도는 길이잖아. 어떤 큰 사건이 있으면 그 궤도가 틀어지기도 하지만 보통 궤도는 정해져 있고, 행성들이 그 궤도에 맞춰 돌지.
나는 ‘사람의 인생에도 궤도와 같은 부분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어. 사람의 삶이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어떤 기질적인 것과 본성적인 것,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적인 요인은 사실 바뀌기가 쉽지 않잖아. 그 바뀌기 쉽지 않은 것들이 궤도 같다고 느낀 적이 있거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과 정해진 길을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 그런 것에 대해 얘기하는 거지.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인생의 한 단면이 되는 거고.
그런 점에서 내 영화 <궤도>의 주인공은 환경이 안 좋은데 그런 환경들이 모여서 그 친구의 삶의 궤적을 만들고, 그 궤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면 사회는 그 친구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개인은 이걸 보고 무엇을 느끼면 좋을까?라는 이야기야.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느꼈으면 하는 게 있다면?
주인공을 동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누군가를 불쌍하고, 도와줘야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감정이라 여겨지지만 나는 이걸 지양하면서 살고 싶어. 영화 속 주인공은 일반적인 기준에 비춰봤을 때 충분히 불쌍하고 사는 게 힘든 친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동정받지 않으면 좋겠네. 동정 대신 응원을 받아도 좋겠어.
영화를 접하게 된 계기가 있어?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이 찾아올 때 무턱대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봤어. 영화관에 혼자 앉아 있다 보면 영화 속의 세계로 내가 편입되고 현실의 권태와 긴장은 2시간 동안 잊히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
나를 실제의 세계에서 끄집어낸 다음 새로운 감정들, 이를테면 기쁨, 공포, 슬픔 따위를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느끼게 해 주는 것도 너무 좋았어. 현실에서는 그다지 기쁠 일도, 무서울 일도, 슬플 일도 없었거든. 그냥 무기력하기만 했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직접 만들어 볼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서 평범하게 공부를 하다 보니 영 재미가 없더라고. 지금이라도 좀 재미있는 걸 해 볼 수는 없을까? 못 하면 좀 어때, 그냥 눈 딱 감고 질러버리면 안 되나? 고민하다가 수능을 다시 봤어.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상학과에 입학하게 된 거야.
영화를 볼 때 감정소모가 큰 편이야?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적인 부분이 가장 잘 와닿을 때는 나의 개인적인 일과 겹칠 때지. 그래서 감정 소모가 엄청 커. 그 인물이 놓인 상황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인물과 함께 생각을 쭉 따라가다 보니까 느껴지는 게 커서 그런 것 같아. 그렇지만 그게 싫지 않고, 오히려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인 것 같아.
감정이 압도되는 감각이 좋아. 완전히 내 것이 아닌 인생을 체험하는 기분도 들고. 배우들이 연기를 하면서 여러 인생을 경험해 본다고 하잖아. 그런데 나는 영화에 몰입만 한다면 관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해.
힘들어도 계속 나가게 되는 촬영장의 매력은 뭐야?
결과가 바로바로 눈에 보이는 게 좋아. 예를 들어 촬영장에 가서 미술을 해. 내가 그 공간을 꾸미면 바로 카메라가 들어오고, 카메라에 내가 꾸민 것, 미술을 친 곳이 금방 보이잖아. 그러면 잘했다거나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바로 평가가 되지. 그 일련의 과정이 좋아. 성취감도 있고. 그런데 못하면 바로 티가 나니까 그만큼 스트레스도 크긴 하지. 게다가 나 혼자 티 나고 마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공개되잖아. 그래도 스트레스가 큰 만큼 잘했을 때 성취감도 커서 양날의 검 같은 느낌이야.
그리고 (촬영장에 나가는 것이) 학업적인 것보다 비 학업적인 경험에 가깝잖아. 나름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해. 앉아서 자격증 공부를 하는 건 어렵지만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런데 촬영은 인생에서 경험하기 쉽지 않은 콘텐츠지. 그런 특별함이 좋은 것 같기도 해. 이것 또한 내 인생에 어느 순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어. 그리고 간간히 촬영이 끝나고 고생한 사람들과 다 같이 술 먹는 것도 좋아. (웃음)
행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위해 해주는 게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아. 감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의식적으로 노력해.
감정적으로 자립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홀로 받아들이고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걸까?
정확해. 내가 슬픈 일이 있다고 무조건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혼자 이겨낼 수 있는 사람. 엄청 행복한 일이 있어도 떠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조금은 의연하게, 스스로 칭찬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감정적으로 의존적인 사람이 되면 내가 의지하는 사람은 피곤하니까 나를 떠나고, 나는 다른 누군가를 찾아 물색해. 나를 받아줄 사람을 찾으면 그 사람에게 기대고, 그 사람은 또 떠나고. 정말 악순환이더라고.
부정적인 감정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지. 정신없이 일을 해야 감정이 무뎌지는 사람이 있고, 아니면 그냥 쉬어야 하는 사람도 있고. 나 같은 경우에는 아무도 안 만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되더라. 이것도 경험인 것 같아. 자기의 방식을 찾아가는 경험이지. 살면서 평생 즐겁기만 할 순 없잖아. 언젠가 한 번쯤 우울한 시기가 올 거고, 약이 아니더라도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 뭔가 해봐야 하는데, 그 무언가를 어떻게 할지는 부딪쳐봐야지.
실질적으로 추천하는 아주 쉬운 방법은 행복한 영화를 보는 거야. <알라딘>, <맘마 미아!> 이런 영화를 틀어 놓고 한 2시간 멍 때리면 괜찮아지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보통 우울하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잘 없으니까 한 번쯤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아니면 내가 옛날에 하던 건데, 너무 우울하면 영화관에 가서 엄청 슬픈 영화를 보는 거야. 그걸 보고 우는 김에 나 울고 싶은 것도 울고, 영화 보는 2시간 동안 털고 나오는 거지.
미지근한 삶의 장점에 대해 말해줘.
다들 열심히 사는 게 좋은 거라고 말하잖아. 그런데 난 그렇지도 않다고 생각해. 나도 얼마 전까지는 행함으로써 그 의미를 다 한 일들이 있고, 착하게 살면 복이 오고, 온 마음을 바쳐 무언갈 하면 잃는 게 있을지언정 얻는 것보다 크진 않을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살다 보니 사실, 그렇지도 않더라고. 결과가 없으면 행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슬픈 경우들이 있고, 착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그건 진짜로 착한 게 아닐 수도 있으며, 마음을 전소시키는 행위는 너무 위험하다는 걸 알았어.
나는 전심전력의 기조를 언제나 경계하고 싶어. 한 가지 일에 미쳐 살고 모든 걸 열심히 하는 사람들 있잖아. 좋지. 근데 나는 그런 방식이 잘 안 맞아. 영화 하나를 봐도 이렇게 감정적으로 동화가 되는데 어떤 걸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고 모든 마음을 바친다고 무조건 잘 되는 게 아니잖아. 살다 보면 최선을 다해 정말 열심히 해도 결국에는 실패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몇 번 해보고 깨달았어. 나는 그러고 나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
그래서 그냥 미지근하게, 흘러가듯, 너무 안달하거나 타오르지 않으며 살고 있어. 그랬더니 마음이 훨씬 편안해. 소중한 게 없어져서 조금 외롭기는 하지만. 여튼, 모든 것을 챙기는 삶이 너무 피로하고 슬프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내려놓고 살아도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
인터뷰어 오늘 / 포토그래퍼 은영, 조아
2024.11.03 민채 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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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