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오늘 / 포토그래퍼 유민
* 용길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만화 그리는 걸 좋아했어. 만화를 그리다가 ‘어, 애니메이션도 재밌다. 근데 영화도 너무 재밌네?’ 그래서 그런 콘텐츠를 많이 접하게 됐어. 옆에서 작품을 하는 친구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일도 같이했는데, 그때 느낀 게 생각보다 영상이 가성비가 좋다는 거야. 내가 초등학교 때도 또래들보다 잔머리가 잘 돌아갔단 말이야. (웃음)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쏟아야 하는 시간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사실 그에 비해서 영상에서는 잔머리를 잘 돌리면 효율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있어. ‘이렇게 하면 더 빨리 찍을 수 있겠다, 이렇게 하면 더 재밌게 찍을 수 있겠다.’ 하면서. 그리고 또 주변에서 잘한다고 해주고 칭찬을 들으면 신나서 계속했던 것 같아.
본인이 느끼는 영화만의 매력이 있다면?
사람이지. 영화를 통해서 사람을 엄청 가까이서 보고, 보여줄 수 있잖아. 그게 매력인 것 같아.
지금의 네가 되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뭐야?
20살 전까지는 그동안 봐왔던 영화들과 시리즈들이 내 많은 부분을 이루었어. 영상을 만들든, 어설프게 음악을 만들든 자꾸 일을 벌여서 거기서 얻는 성취가 단순 입시나 공부보다도 중요했고 나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생각해. 성인이 되어서는 아무래도 회사에서 하는 일들과 만나는 사람들이 주는 것이 가장 큰 영향이었고 현재까지도 그래.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너무 재밌고 유익하지만, 회사는 다른 방향에서 영향을 주었어. 완전히 다른 레퍼런스들을 접하는 것도 신세계였고, 스스로를 갈고닦아도 부족함이 많았지. 책임감도 많이 생기고 그걸 항상 가지고 살았던 것 같아.
창작의 소재나 영감은 어디서 얻어?
회사에서 하는 작업과 달리 내가 완전히 자유롭게 하는 촬영에서는 지금 바로 눈에 들어오는, 하고 싶은 걸 했던 것 같아. 음악을 만들고 싶다 하면 뮤비를 만드는 식으로. 한 번은 학교에서 태국을 보내주셔서 그곳에서 찍은 걸로도 (영상을) 하나 만들고, 작년에는 짧게 뮤지컬 영화를 했어. 음악이 만들고 싶었고, 그 음악이 쓰이는 영상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 당시에 하고 싶은 것, 끌리는 걸 하는 게 너무 재밌었어. 영감을 얻는 것은 노래든, 보고 있는 영화가 됐든 지금 당장 바로 옆에 있는 것에서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아.
피디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시리즈 중 하나인 ‘고등학생 브이로그’ 첫 화를 업로드하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 내가 너무 좋아하고 나를 가장 많이 챙겨주시는 메인 피디님과 주말까지 출근해 작업했는데, 영상 업로드 게이지가 100% 차는 순간이 생생하네. 기존보다 약간은 큰 역할을 맡아 참여했고 운 좋게 직접 출연도 하게 되어 당시 내 세상의 모든 것이었던 한 영상이 세상에 선을 보인다는 것이 긴장되면서도 행복했어. 열심히 도와드리며 촬영한 매 순간이 지금도 많이 생각나. 아무래도 코미디 시리즈였기 때문에 촬영하면서 많이 웃었고 즐거웠던 기억들이 너무 소중해.
<고등학생 브이로그> 마지막 화를 찍을 때 심정은?
실제로 입대 약 5일 전에 찍었어. 몰입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 ‘맑고 청아한 옥상에서의 청춘’ 같은 걸 생각했는데 심지어 그날 비까지 왔어. 비도 오고 정신없고 추웠는데, 연기에 대해서 갑자기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나는 항상 휴대폰으로만 찍었었는데 마지막 화는 촬영팀과 전문 카메라로 찍게 되었어. 그때 휴대폰으로 찍는 게 너무 편했구나 싶었어. 평소 현장에서는 옆에서 잘 알려주시고, 내 연기를 잘 받아주시고, 작은 단위들도 수정해 가면서 촬영할 수 있었어. 그런데 마지막 촬영에서 영화 카메라로 찍을 때는 나 혼자 나와야 하는 상황도 생기잖아. 내가 해야 하는 연기가 사실 굉장히 어려웠고, 그동안 쉽게 생각했다는 걸 알게 되었어.
지금 와서 영상을 보다 보면 2년 동안 같이 일하면서 나의 어벙한 점, 서투른 점을 나쁘게만 보지 않고 품어주고, 영상으로 까지 담아주려고 하신 게 감동이야. 종종 연기하는 걸 좋아하고 관심이 있다고 어필은 했지만 (나를) 써줄 이유가 없잖아. 그런데 배려를 해 주셔서 카메라 뒤에만 있지 않고 기회를 받은 게 행복했지. 내 찌질하고 어벙한 모습을 너무 잘 알아 캐릭터에 잘 녹여주신 팀원분들에게 감사했고, 동시에 스스로 많이 부족했고 내가 더 잘했다면 더 좋은 영상이 나왔을 것 같다는 자책도 하곤 해. 어쨌든 21살에 이런 많은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음에 감사해.
고등학생 용길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탈도 좀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 스스로를 가꾸고, 멋있어지려고도 해 봤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어. 그 당시에는 꾸미지도 않고 내 전공에만 몰두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너무 바르게 살았지. 문제를 일으키진 않더라도 일탈도 한 번씩 해보고 재밌게 놀아볼걸. 그런 것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치가 또 있는데 (경험이) 전무하니까, 너무 바른생활만 했던 게 아쉽네.
요즘 드는 생각은 (전역 후) 바로 회사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거. 그런데 이대로라면 는 게 없이 돌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서 돌아가기 전에 내가 혼자서 작게라도 몇 가지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 그래야지 보탬이 될 수 있고 나도 기분이 좋을 것 같네. 이후는 아직 아무 생각이 없어. 어렸을 때는 ‘나는 영화감독이 되어야지.’ 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정해 놓은 게 아예 없어. 스무 살 이후에는 아직 최종 목표가 명확하지 않아.
미래의 너는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어?
미래의 내 모습은 지금의 나와는 많이 달랐으면 좋겠어. 나는 자존감이 늘 낮았고, 간혹 그 덕에 더 노력하며 미약하게 성장도 이뤄내긴 했지만, 미래의 내가 조금은 더 자신감이 있고 확신을 가졌으면 해. 나를 미워하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니까. 함께 일하는 누군가를 설득하고 신뢰를 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힘들지 않게 한 가지 일을 끝마칠 때까지 스스로를 굳게 믿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리고 무언가 하나에 몰두하고 있으면 참 좋겠네. 그때는 뭐든 편하게, 여유 있고 능숙하게 하길 바라.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어른이 돼서 좋은 건,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거. 어렸을 때부터 여행을 가보고 싶었는데 계획하고 결심에 옮기기만 하면 빠르게 떠날 수 있으니까 너무 행복한 거야. 여행을 가서 계획 밖에 있던 경험을 할 때 가장 행복해.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작년 겨울이야. <이터널 선샤인>에 나온 몬탁에서 낚시를 하겠단 생각 하나로 미국 여행 중 짧은 기차여행을 떠난 적이 있어. 그런데 웬걸, 바다 낚싯배는커녕 강도 다 얼어 시간만 날릴 위기에 처하게 됐어. 설상가상 비까지 내렸고, 다 젖은 채 마을을 돌아다니며 수소문했지만, 답이 없었어. 결국 자전거라도 빌려 몬탁 끝까지 돌아보는 것으로 자포자기하며 계획을 수정했는데, 그것이 인생에서도 손꼽힐 시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아무도 없는 끝없이 펼쳐진 길을 혼자 달리며 자유로움을 느꼈어. 중간중간 광활한 말 농장과 지나가는 사슴들과 함께하고 몬탁의 끝에 가 아무도 없는 해안가에 도착했을 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들었어. 오래 살진 않았지만 살면서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야.
여행지에서 꼭 하는 게 있다면.
나는 현지 마트를 가보는 게 너무 재밌어. 그곳 사람들은 무슨 식재료를 사는지, 무슨 과자를 팔고 무슨 음료수를 파는지 알아보는 건 꼭 해.
좋아하는 단어가 있어?
『헛헛하다』"채워지지 아니한 허전한 느낌이 있다."
최근에는 ‘헛헛하다’라는 단어가 좋아. 뭔가 속이 허하고 공허할 때 잘못하면 안 좋은 생각까지 이어질 수 있는데, 속에서 섞이기 전에 그냥 ‘헛헛~하다’ 한 번 하면 털어지는 기분이야. 귀엽잖아. 말이 재밌어서 툭툭 털 수 있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
인터뷰어 오늘 / 포토그래퍼 유민
2024.11.11 용길 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