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수수 / 포토그래퍼 조아
* 가은 님과의 인터뷰입니다.
가은의 대학 생활은 어떻게 만들어졌어?
이거 좀 재밌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가벼운 마음들이 내 대학 생활 전부로 남았어. 그냥 그 순간의 직감을 믿는 것 같아. 재미를 느꼈던 바로 그 일이 다음 단계의 힌트가 되어줬거든. 그런 경험들이 다시 다음을 건너갈 원동력으로 모이고 모여서 내 대학 생활이 됐어.
물론 ‘조금 더 일찍, 이때 이걸 했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나 후회도 한 적 있어. 그렇지만 내 대학 생활은 서투른 첫 음부터 후련한 마지막 음까지 최선을 다해 부르고 연주한 무대 같아.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대도 다시 이만큼을 해낼 용기가 없는, 그냥 이대로만 기억되고 싶은, 그래서 앙코르 요청을 거부하고 싶은 공연이랄까. 언젠가 왜 이 부분에서 이런 바보 같은 삑사리를 냈을까 후회가 되고 창피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부르고 싶다는 욕심이 들 수도 있겠지만, 끝나버린 노래는 그렇게 끝난 채로 두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어.
특히 내가 1년 휴학했을 때가 기억에 남네. 당시 내 휴학의 계기는 공부가 너무 싫어서였어. 코로나 학번으로 입학해서 경험할 수 있는 대학 생활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지 못했는데, 일단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억제해 가며 공부만 했어. 그런데 고등학생 때부터 쭉 공부만 하면서 지내다 보니 딱 2학년 끝나고 나서 현타가 온 거야.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나 대학생 맞아?’ 이런 마음에서 휴학을 했던 거란 말이야. 그래서 한 학기 동안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했어. 지나고 나서 그때 차라리 학회를 했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교환 학생 준비를 해봤음 어땠을까 그런 후회가 될 때도 분명 있었는데, 그런데도 내가 ‘앙코르 요청 안 받아. 나 돌아가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 순간의 선택이 결국 지금이 되었기 때문이야. 그때 차라리 교환 학생으로 가지 못해서 그때 학회 경험을 하지 못해서 그 이후에 또 다른 나의 새로운 경험들이 탄생한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모든 순간이 의미 있고 내가 돌아가서 그때 다른 선택을 할 기회를 얻게 돼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
휴학할 동안에 했던 직감적 선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야?
유럽 여행에서 메일링 서비스를 했던게 정말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어. 당시에 친구가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나보고 오라는 거야. 나 유럽 여행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떠났지. 메일링 서비스를 접한 계기는, 내가 그때 한창 좋아하는 작가가 있었거든. 한국 에세이 작가인데 그분의 여행 에세이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와중이었어. 알고 보니 그분이 어렸을 때부터 일상을 지내고 여행하면서 든 생각들을 메일링 서비스로 연재해 왔다더라고. 에세이에 담긴 이야기 중 몇 편은 메일링 서비스에서 연재했던 거고. 그래서 그분의 메일링 서비스도 구독해서 읽곤 했었어.
그러다 새벽 감성에 문득 여행은 진짜 좋은 이야깃거리인데 나도 메일링 서비스를 연재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밤 12시부터 한 4시간 만에 메일링 서비스를 연재할 모든 그림을 구상하게 된 거야. 그리고 360명 정도 되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구독을 해주셨어. 나도 모르게 어떤 책임감을 가진 채로 글을 하나씩 연재해 나갔던 것 같아. 그렇게 여행 내내 글을 쓰게 됐는데 여행이 너무 재밌고 여행에서 오는 영감이 좋아서 글 쓰는 게 즐거웠어. 똑같이 사실적으로 무언가를 묘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베를린이라는 이유로, 런던이라는 이유로 내 글이 다르게 색다르게 느껴지는 게 그 자체로 너무 신선한 거야. 주변에 나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내가 알 수 없는 언어들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안에서 찾는 과자 같은 것들도 생소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공간에 놓였을 때의 그 감각을 글로 표현하는 게 정말 재밌었던 것 같아.
원래 나는 그전까지 내 글이 조금 서툴다고 생각했고 그 서툰 글을 남한테 보여주기는 더 싫어하는 사람이었거든. 그럼에도 그때는 편지 쓰는 마음처럼 그 글들을 다른 사람한테 얼른 내보이고 싶더라고. 메일링 서비스로 돈을 번 것도 아니고 엄청 대단한 상을 탄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글에 재미를 붙인 게 지금의 나한테 큰 영향을 미쳤어.
가은에게 글은 어떤 의미야?
보통 여행에서 글을 쓴다고 하면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가 주가 되어야 하잖아. 나는 여행 글에서도 내 주변 사람과 집, 일터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글은 나에게 마음을 전하는 도구인 것 같아. 나는 무뚝뚝한 편이라 입 밖으로 다정의 말들을 잘 뱉지 못하는데, 글로는 그게 편해. 그래서 계속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아. 내가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는 한 글은 계속 쓰지 않을까?
지금 나에게 있는 것 중 단 한 가지만 가지고 태어날 수 있다면 남기고 싶은 것도 내 글에 대한 마음, 글쓰기에 대한 마음이야. 이제까지 걸어온 내 삶 전반에서, 비단 대학 생활뿐만이 아니라 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글 쓰는 걸 되게 좋아했거든. 초등학생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고 방송부에서 작가도 했었어. 그리고 중학교에 가서는 백일장을 정말 열심히 썼어.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국어 교과목 선생님이셨거든. 선생님의 제안 덕에 주로 우리 할머니와 내 고향인 제주를 글감으로 이런저런 글을 썼지. 그리고 대학교에 와서도 그 글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 많은 경험을 열어줬고. 글을 대하는 마음에서 내디뎠던 걸음들이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 있어서 항상 유의미한 걸음이었던 것 같아서 내가 다시 태어나도 글을 여전히 좋아하고 글을 계속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네.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지금과 비슷한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정가은다운 글이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줬으면 좋겠어?
내 글은 생각보다 진지하고 나는 생각보다 생각이 더 많은 사람이란 말이지. 그래서 나는 내 진지한 모습을 글로써 솔직하게 전달하고 싶어. 그러나 진지하되 아주 조금의 유머도 가미된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막학기를 마쳤는데,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고
사회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에 있는 요즘의 감정은 어떤지 궁금해.
대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닌 이 경계가 재밌다고 생각해. 나를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싶고, 학업이나 학회로 포기해야 했던 여러 재미있는 일들을 조금씩 해볼 생각에 신이 나. 괜찮은 회사에 다니는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달려오기는 했지만, 그걸 ‘지금 당장’ 하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나 조급함도 없진 않지만, 그런데도 지금의 나는 기대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아. 앞으로도 멋들어진 계획을 세울 생각은 없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마지막으로 고민하게 될 시간들이 정말 기대돼.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시점에 대부분의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잖아.
1년 전 가은이, 이 비슷한 시기에 했던 걱정이나 두려움이 뭐였어?
완전 기억나는 게 있어. 최근에 오랜만에 책장 옆에 있는 내 일기장을 열어봤거든. 그때 내 제일 큰 걱정은 뭐였냐면 대학 생활은 1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나는 항상 적당히만 하려고 한 것 같다는 거였어. 음 뭔가 치열하게 살아본 경험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거지. 난 밤새우는 것도 진짜 싫어하고 고생고생하면서 내가 못 하는 일에 매달리는 거 별로 선호하지 않았거든. 근데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제까지 밟아온 모든 선택이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이어져 온 것들인 거야. 그런 것들만 쌓이니까 취업해야 할 시기는 다가오는데 내가 뭔가를 잘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역을 너무 한정 짓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더라. 이렇게 내가 4년을 살아왔다고 하는 생각 때문에 조금 슬펐어.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예를 들어 취업을 하려면 다양한 공고들을 보고 그 공고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이 중에서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공고는 정말 좁은 영역의 한두 개 분야에 해당하는 것들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너무 컸어. 그래서 작년 이맘때쯤의 나는 길지만 또 너무 짧은 남은 1년 동안 어떤 걸 해내야 유의미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어. 지나고 보니 참 웃긴 게 이 걱정들이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는 거야.
새내기 정가은과 현재의 정가은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부분은 뭐라고 생각해?
노래 취향. 웃기지? 그런데 이게 많은 걸 설명해 준다고 느껴. 새내기 시절엔 언제나 새로운 음악을 찾아다녔거든. 최대한 남들이 안 듣는 걸 발굴하고 싶고, 새로운 곡을 만날 때마다 무척 신났어. 그 덕에 한 곡을 여러 번 듣는 일은 드물었지. 또 다른 노래를 찾아야 했으니까. 그런데 25살을 앞둔 지금은 좋아하는 노래들만 들어. 내가 좋아한다고 진정으로 믿는 것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그 노래들을 반복해서 들어. 어릴 때는 취향이든 경험이든 무한하게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 이제는 나에게 맞는 것, 내가 아끼는 것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힘과 담대함을 갖게 된 거라고 믿어.
인터뷰어 수수 / 포토그래퍼 조아
2024.12.29 가은 님 인터뷰
*휴스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umans of skku]
휴스꾸(Humans of skku)는 201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의 교수, 직원, 학생과 근처 상권까지 인터뷰 대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장문의 인터뷰 본문, 깊이 있는 사진과 휴스꾸를 꾸려나가는 운영진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휴스꾸의 모습을 담아내려 합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모토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균관 공동체 속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