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멋진 내 친구 똥퍼>
지난 토요일 나는 검사 슈퍼비전을 받으러 신도림으로 가고 있었다. 노후된 카드도 마침 재발급 중이라서 일회용 교통카드를 구입했고, 미리 대비한답시고 집에 가는 요금까지 충전했다. 그런데 역사 바깥이 낯설어서 표지판을 보니 신대방역이었다. 책을 읽다가 앞 글자만 보고 대충 내린 것이었다. 비상벨을 눌러 상황을 말했더니 왕왕 울리는 스피커 안쪽에서 안내소에 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릴 역에서 물어봐야지 하며 카드를 찍고 들어가 신도림 방면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누가 내 어깨를 툭 친다.
"저... 아까 벨 누르신 분 아닌가요?"
"아.. 네... 맞는데요."
"아이고, 제가 안내소로 바로 오시라고 했는데 이미 나와버리셔서 막 달려왔어요. 아이고, 아까워서 어떡해요. 이미 찍고 나온 건 환불이 안돼요. 다음엔 꼭 안내소로 먼저 오세요."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분은 내가 2,750원을 찍고 두 정거장만 가는 게 진심으로 아까워서 달려오신 거였다. 마치 오랜 친구에게 대하듯 다정하게 말하며 비쩍 마른 손바닥을 부비는 그 역무원을 보면서 나는 순간 시간이 잠시 멈춤을 느꼈다. 촌스럽게 웃는 표정과 친절한 음성에 나는 감동해서 그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가방을 뒤적거렸지만 저혈당 방지용 초콜릿이 없어서 아쉬울 정도였다. 다음엔 그러지 않겠다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러갔고, 내가 서 있던 낡은 신대방역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흘렀다.
'그림엽서'라는 수필에서 작가 곽재구는 시각장애인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때마다 한 편의 그림엽서라고 생각한다. 나도 근무지로 돌아가는 역무원의 뒷모습을 내 마음속 그림엽서에 담았다. 그분이 입고 있던 구겨진 바지며, 오랫동안 다듬지 않은 머리카락, 뻐드렁니를 환하게 드러내어 웃는 얼굴, 근무복 안에서 삐죽이 나온 낡은 셔츠는 그 사람의 품격을 전혀 떨구지 못했다. 오히려 그분의 태도와 마음가짐은 복을 가져다 줄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내 친 구 똥퍼>라는 그림책에서도 비슷한 인물이 나온다. 이 책은 연암 박지원의 '예덕 선생전'을 작가 이은홍이 만화로 그린 작품이다. 어느 날 똥퍼 아저씨가 서당 뒷간의 똥을 치우러 오자 훈장님은 버선발로 마중 나가 손을 잡고 인사를 한다. 더럽고 천한 일을 하는 똥퍼 아저씨를 친구라 부르는 모습을 지켜본 도령 하나가 훈장님의 가르침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며 서당을 떠나려 한다. 그러자 훈장님은 도령에게 똥퍼 아저씨를 가장 좋은 친구라고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내 친구!
너희가 '똥퍼'라고 부르는 바로 그분이니라.
걸음걸이는 호랑이보다 힘찬데
웃는 모습은 꽃잎처럼 부드럽고
밭일을 할 때는 마치 독수리처럼 날래시다.
맛있는 음식을 밝히지 않으시고
멋진 옷을 탐내지 않으신다.
하루 일을 마친 뒤, 그분은 느른해진 몸을 쉬러 집으로 오신다.
흙으로 벽을 쌓고 짚으로 지붕을 덮은 작은 집이지만
아늑한 보금자리라며 소중히 가꾸신다.
설날 아침 동네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나면
다시 지게를 지고 일을 하러 나서시는 분이다.
난 여태껏 그분처럼 부지런히 일하고
욕심도 없으며 늘 즐겁게 사시는 분을 뵌 적이 없다.
부지런히 땀 흘려 일하는 내 친구 똥퍼가
높은 벼슬이나 뽐내며 거들먹거리는 자들보다
백만 배 더 훌륭하고,
그분 몸에서 나는 똥 냄새 땀 냄새가
잔칫상 고기 냄새보다 천만 배 더 향기롭다.
너희에게 내 온 마음을 드러내어 이르노니,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겸손하신
그분을 난 감히 친구라 부르기보다
선생님이라 부르고 싶은 마음이다.
나의 실수로 만난 신대방역의 직원과 훈장님의 마음의 벗인 똥퍼 아저씨가 오버랩 되면서 한동안 마음 한 켠이 따뜻했다. 진심으로 상대를 위할 줄 아는 역무원의 마음, 직업의 귀천에 상관없이 친구를 사귀고 존경하는 훈장님, 자신의 일에서 참된 행복을 느끼는 똥퍼 아저씨까지. 내 마음속 그림엽서에 저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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