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평생 아내앞에서 큰소리치는 남편으로 사는방법

by 최규상의유머학교

아내 앞에서 늘 큰소리치는 남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내 한마디에 아내가 꼼짝도 못 하고 꼬리를 내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결혼 21년 차! 드디어 아내를 완벽하게 제압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토요일 아침. 밥을 다 먹자마자 아내에게 보란 듯이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보! 오늘 아침 설거지는 내가 할게!"


생각보다 아내를 제압하는 방법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내가 할게!' 이 한마디면 언제 어디서든 아내를 꼼짝 못 하게 합니다. 아내의 미소까지 터뜨리게 합니다. 이 한마디를 터득하기까지 수많은 잔소리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유사 이래 대한민국의 남자의 DNA에는 살림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습니다. 집안일은 아내의 일, 돈 벌어오는 것은 남자의 일이라는 이분법에 철저하게 세뇌되어 온 남편들에게 가정 안의 모든 일은 그저 소 닭 보듯 하는 그저 아내의 일일 뿐입니다.


당연히 우리 부부도 집안일 때문에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소한 집안일로 말다툼을 하게 됐는데

아내가 잠깐 소파에 앉으라 하더니 준비한 종이를 꺼내서 읽기 시작합니다.

“결혼은 평생 3만 5000번의 식사 준비를 하고, 1~3만 번의 이불을 정리하고, 7000번의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합니다. 아기 기저귀를 4320번 갈아야 하고, 빨래는 만 번을 해야 하는 일입니다."


어디서 저런 어리바리한 통계자료를 얻었는지는 몰라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숫자에 유독 약한 나에게 천 단위, 만단 위는 큰 위압감으로 다가옵니다. 멍하니 듣고 있는데 아내의 마지막 질문 한마디가 날카롭습니다.

"당신 이 말에 어떻게 생각해?"


순식간에 치고 들어오는 질문에 잔머리를 굴릴 새도 없이 그냥 모범답안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알았어, 나도 열심히 도와줄게!"


곧이어 아내는 내 대답을 예상이라도 했듯 꼼꼼하게 파고듭니다.

"도와주는 게 아니라 당신일을 당신이 하는 거예요!

결혼하기 전에 다 당신일이었는데 결혼 후에 내가 대신해준 것뿐이니!

앞으로 절대 도와준다는 말 하지 말고 내가 할게라고 말해요! 알았죠?"


한마디로 집안일은 아내와 남편의 공동의 일이라는 거죠! 자신의 일을 자기가 하는 건데 도와준다는 생색 좀 그만 내라는 겁니다. 아내의 서슬 퍼런 논리 앞에 고개만 끄떡였지요. 하지만 이게 한번 지적받는다고 말투나 행동이 바뀌는 게 아니더라고요. 마음속에서는 왠지 손해 보는 것 같고, 한번 밀리면 평생 생고생(?)을 할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핏속의 DNA는 아주 격렬하게 저항하는 듯 쉽사리 바꾸지가 않더라고요.

"여보, 빨래하는 거 내가 도와줄게"

"도와주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할게라고 하는 거야!"


도와준다고 인심 한번 쓰려다가 된통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말 한마디 바꾸는 게 쉽지 않습니다.

"여보 내가 거실은 내가 청소해줄게!"

"청소해 주는 게 아니라 그냥 당신이 살았던 공간을 청소하는 거야! 그러니 내가 할게라고 말해야죠!"


어느 날도 아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길 때 조용히 다가가서 연습했던 말을 작정하고 토해냈습니다.

"여보, 설거지 내가 할게!"


아내가 빙긋 웃으면서 고무장갑을 벗더니 슬그머니 뒤로 물러섭니다. 엉덩이를 토닥거리면서!

"에고.. 우리 얘기 다 컸네! 도와준다고 생색 안 내고 자기 일을 자기가 다 할 줄 알고!"


얼마 전 세탁기가 빨래를 끝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뛰어가 빨래 바구니에 옮겨 담아 빨래대에 이쁘게 널었습니다. 아내가 그걸 보면서 빙그레 웃으면서 말합니다.

"우와.. 우리 신랑 철들었네! 말 안 해도 자기 일을 척척 할 줄 알고!"


네.. 맞아요. 오랜 갈등과 부딪힘 끝에 제 생각과 말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내가 할게" 한마디를 혀에 붙이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지금도 종종 긴장도가 살짝 떨어지면 '내가 도와줄게"라는 말이 무의식 중에 튀어나와 아내의 잔소리를 듣긴 하지만!


내가 내 일을 알아서 하다보니 집안살림은 함께 하는 거였지, 도와주는 게 아니었어요! 이런 저를 보고 공처가니 애처가니 말하지 마세요. 이 생각 하나 바꿨더니 부부싸움의 거의 90%는 사라졌거든요. 그리고 아내를 언제나 미소 짓게 하는 방법도 개발했어요. 바로 사랑받는 남편의 30초 살림법인데요. 딱 30초만 집안일을 하는 겁니다. 서재방 30초 책자리에 놓기, 화장실 샤워 후 30초 청소, 거실 청소 30초! 30초만 몸을 움직여도 눈에 띄게 깨끗해지고 정돈됩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아내가 혼자서만 독박 살림을 할 때는 '고작', '그까짓'이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실제로 내 몸을 움직여서 해보니 "무려"였습니다. 아내를 이해하게 되고, "내가 할게"라는 말로 내 일을 내가 하게 된 것은 끊임없는 아내의 참교육과 참 잔소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니즘에 온 에너지를 쏟아붓고 집에 들어오면 남편은 쉬고만 싶어 집니다. 모든 집안일을 애써 모른 척하고 싶어 집니다. 체력이 성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체력이 방전되면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집니다. 정말 힘들어서 가정일을 분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꽤 많은 상황에서 알아도 모르는 척할 때도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정말 아내가 그렇게 애쓰고 힘든지 눈치채지도 못했던 감성맹이었습니다. 아내가 꾸준히 쉬지 않고 이야기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평생 남과북처럼 평행선을 달렸을 겁니다.


그런 남편을 변하게 하는 것은 끊임없는 역할분담에 대한 한마디였습니다. 아내는 '도와주는 게 아니라' '당신일을 당신이 하는 거야!'라면서 DNA를 서서히 변화시켰습니다. 그것이 서서히 생각 속에서 익어가기 시작했고, 행동의 물꼬를 틀어주는 삽질멘트였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효과가 없는듯한 삽질이지만 어느 순간 태산을 옮겨버릴 정도로 강력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남편은 '내가 할게'라는 말로 진정한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보, 내가 할게!"

"여보, 마트 내가 갔다 올게!"

"여보, 내가 얘 데리러 갈게!"

"여보, 밥 할게!"


어때요? 이 한마디면 당신은 정말 언제나 큰소리치는 대장부가 될 겁니다 무슨 만주 벌판에서 일본 놈들만 때려잡아야 대장부가 아니잖아요! 내 옆에 혼자서 애쓰고 있는 아내를 챙길 줄 아는 남편이 바로 사내대장부 아닐까요? 그나저나 오늘 이야기는 너무 막 나갔나? 이러다 대한민국 남편들의 공적이 되는 게 아닐까? 기분이 살짝! ㅋㅋ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