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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미스터리: 그 많던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가짜 노동을 파헤치다

by 바그다드Cafe

직장인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컴퓨터를 켜며 다짐합니다.

"오늘은 정말 일을 해보자!"


아침: 시간이 새는 첫 번째 구멍

8:55 - 출근 직후, 메일함을 엽니다. 숫자 '38'이 보입니다. 어제저녁부터 쌓인 메일들입니다.
"회신이 늦어 죄송합니다"라는 문구를 입력하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이 메일들, 정말 모두 답장이 필요한 걸까요?

오전: 사라지는 시간의 블랙홀

9:30 - 팀 회의가 시작됩니다. "이번 주 업무 공유"가 주제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업무를 설명하지만, 실은 각자 노트북으로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현대판 '일하는 척하기'의 묘기입니다.

10:15 - "이 회의록은 누가 작성하나요?"
잠깐의 정적 후, 막내인 당신에게 시선이 모입니다.
회의는 끝났지만, 이제 회의록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점심: 사라진 휴식 시간

12:00 - 점심시간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잠깐 시간 되세요? 점심 먹으면서 이야기해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그 '런치미팅'입니다.
식사와 회의를 동시에 하면 두 배로 효율적일 거라는 착각 속에서, 결국 식사도, 회의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오후: 가짜 노동의 시작

14:00 - 오후에는 정말 일에 집중해 보려는데...
"이 파일 저장해 두세요" - 아마도 영원히 열리지 않을 파일입니다.
"이 메일 참조 드립니다" - 당신과 전혀 관계없는 내용입니다.
"확인하셨나요?" - 무엇을 확인하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15:00 -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에 마주친 동료가 묻습니다. "우리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죠?"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지만 "네..."라고 답합니다. 이게 바로 '직장인의 조건반사'입니다.

퇴근 전: 가장 바쁜 척하기 대회

17:00 - 퇴근 한 시간 전, 사무실이 갑자기 부산해집니다. 키보드 소리가 더욱 커지고, 마우스 클릭 소리가 잦아집니다. 모두가 "나는 지금 매우 바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17:30 - "오늘 저녁 시간 되시나요?" 이 질문은 보통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1) 야근 2) 회식.
둘 다 달갑지 않지만, "네..."라고 답하게 됩니다.

왜 직장인은 이런 시간 낭비를 반복할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바빠 보여야 한다'는 강박입니다. 실제 생산성과는 관계없이, 바쁘게 보이는 것 자체가 미덕이 된 조직 문화 속에서 우리는 일부러 천천히 일하거나, 불필요한 회의에 참석하거나, 읽지도 않을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여기에 '책임 회피'라는 또 다른 문제가 더해집니다. 나중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문제에 대비해, 우리는 모든 메일에 불필요한 참조를 걸고, 모든 대화를 기록하며, 간단한 결정에도 불필요한 합의를 구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본질적인 업무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눈치'라는 보이지 않는 시간 도둑이 있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어도 먼저 가지 못하고, 점심시간이 되어도 자리를 뜨지 못하며, 불필요한 회식도 거절하지 못합니다. 이런 눈치 문화는 우리의 시간을 갉아먹는 가장 교묘한 도둑입니다.

이제 퇴근 시간입니다.
오늘도 정말 바빴는데, 도대체 뭘 한 걸까요?
내일은 꼭 진짜 일을 해봐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내일도 비슷한 하루가 반복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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