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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다이어트 허언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by 바그다드Cafe

"내일부터 다이어트한다"

대한민국 중년 직장인은 체중계에 올라서 숫자를 보며 한숨을 내쉽니다. 작년보다 10kg이 늘었네요. 거울에 비친 모습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합니다.

"오늘부터가 아닌, 내일부터 진짜 다이어트 시작이다."

직장인 3대 허언 중 두 번째, '내일부터 다이어트한다'가 왜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평생의 숙제가 되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죄수의 딜레마보다 독한 점심시간의 딜레마


오전 11시 47분, 사무실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점심 메뉴를 정하는 시간입니다. 회사 근처 식당들은 이미 머릿속에서 분류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건강하게 샐러드 먹을까?"

그러나 옆자리 동료가 외칩니다. "오늘 새로 오픈한 마라탕 집 가보자!"

다른 동료가 합세합니다. "오, 좋지! 오늘 점심 거기로 가자!"

(당신의 머릿속: '아침에 다이어트 결심했는데... 그래도 한 번쯤은 괜찮겠지? 내일부터 진짜 시작하면 되니까.')

그렇게 샐러드는 내일의 점심 메뉴가 됩니다. 오늘, 그리고 내일, 그리고 또 내일... 또또또 내일... 내일이 계속되는 한, 다이어트도 계속됩니다.

"위로의 식사"라는 함정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식사는 단순한 영양 섭취가 아닙니다. 그것은 위로이자 보상,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입니다.

야근 끝내고 집에 가는 길, 편의점 도시락으론 허전합니다. 배달앱을 열고 버튼 하나면 치킨과 맥주가 배달됩니다. 힘든 하루를 견뎠으니 이 정도 위로는 당연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급한 프로젝트를 끝냈을 때, 중요한 발표를 마쳤을 때, 스트레스받는 상사와의 회의를 마쳤을 때... 우리는 음식으로 자신을 달래는 법을 배웠습니다.

"오늘 정말 힘들었어. 달달구리 먹어야겠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다이어트 시작해야지."

식사가 정서적 위로 수단이 되면, 다이어트는 자신을 괴롭히는 행위로 인식됩니다. 이미 직장에서 충분히 고통받는데, 식사마저 제한한다면 남은 기쁨은 무엇일까요?

카페인과 당 중독의 악순환


오전 8시, 출근길에 아메리카노 한 잔. 오전 11시, 회의 전 라테 한 잔. 오후 2시, 졸음을 쫓기 위한 에스프레소 석 잔. 오후 4시, 당 떨어짐을 방지하기 위한 달달한 디저트 한 조각.

현대 직장인의 하루는 카페인과 당분의 지속적인 공급으로 유지됩니다. 장시간 업무, 수면 부족, 스트레스는 에너지 고갈로 이어지고, 이를 빠르게 채우는 방법은 카페인과 당분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 습관이 악순환을 만든다는 점입니다. 카페인은 잠시 각성 효과를 주지만, 곧 더 피곤해지는 리바운드가 찾아옵니다. 당분은 빠른 에너지를 제공하지만, 인슐린 반응으로 곧 더 심한 당 떨어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다음 한 잔의 커피, 다음 한 조각의 케이크를 찾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다이어트를 시작한다는 것은 마치 약물 중독자에게 금단 증상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내 간식의 유혹


현대 기업들은 직원 복지의 일환으로 다양한 간식을 제공합니다. 사내 탕비실에는 쿠키, 초콜릿, 과자 같은 간식들이 늘 준비되어 있습니다. 팀원의 생일이면 케이크가 돌고, 회식이 아니더라도 수시로 단체 간식 주문이 이루어집니다.

"오늘 제 생일이에요. 케이크 좀 드세요."


"프로젝트 중간 점검 기념으로 간식시켰어요!"

"금요일이니까 다 같이 달달구리 먹어요."

이런 환경에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것은 사회적 유대감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거절하면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 되고, 혼자만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퇴근 후의 '나만의 시간'


많은 직장인들에게 저녁 시간은 하루 중 유일하게 자신을 위한 시간입니다. 출퇴근, 업무 시간을 제외하면 남는 건 몇 시간뿐입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취미 생활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합니다.

식사는 이 '나만의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넷플릭스를 보며 먹는 야식, 게임하며 먹는 과자,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며 먹는 치킨과 맥주... 이런 소소한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이미 빡빡한 일상에서 마지막 낙을 버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하루 정말 고생했어,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야."

"주말인데 뭐,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 진짜 다이어트 시작할 거야."

회식 문화와 접대의 의무


첫 번째 허언인 '내일부터 술 끊는다'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회식 문화는 다이어트에도 큰 장애물입니다. 회식 자리에서 건강한 메뉴를 고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삼겹살, 치킨, 족발... 모두가 함께 즐기는 음식을 홀로 거부하는 것은 '튀는' 행동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특히 고객 접대나 비즈니스 미팅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 음식 안 드세요?"라는 질문에 "다이어트 중이에요"라고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비즈니스보다 개인적인 일을 우선시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일의 나"에게 미루는 책임


"다이어트"라는 단어에는 '절제'와 '포기'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작을 항상 미룹니다. 오늘의 즐거움은 누리고, 고통스러운 절제는 '내일의 나'에게 미루는 것이죠.

심리학자들은 이를 '현재 편향'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미래의 이익보다 현재의 만족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장의 맛있는 한 끼와 몇 달 후의 건강한 몸 중에서 선택해야 할 때, 대부분은 전자를 선택합니다.

"오늘 이 치킨을 먹지 않으면 내일 무슨 일이 달라질까? 한 끼 정도는..." "이번 주말까지만 먹고 다음 주부터 진짜 시작해야지."

점심시간의 작은 반란, 그리고 해방


그런데 최근 저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아 결심한 일이었습니다. 바로 점심을 종종 거르고 그 시간에 산책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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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이 "같이 먹으러 가요?"라고 물을 때마다 "오늘은 패스할게요. 산책 다녀올게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그들의 표정에는 의문이 담겨 있었습니다. 40대 팀장이 왜 점심을 거르는지, 건강 문제가 있는지...

하지만 적응은 생각보다 빨랐습니다. 오히려 점심 식사 후에 느끼던 졸음이 사라졌고, 사무실 주변을 걷는 30분이 생각보다 유익했습니다. 생각이 정리되고 오전에 해결하지 못했던 업무 문제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남의 시선에 덜 신경 쓰는 것'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타인의 기대와 시선에 맞춰 결정을 내립니다. 건강한 식습관조차도 사회적 관습에 맞추게 됩니다.

점심을 거르는 제 선택은 제 몸과 건강을 스스로 관리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진짜로


"내일부터 다이어트한다"는 말이 허언이 되는 이유는 단순히 의지력 부족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직장 문화, 식습관, 심리적 메커니즘, 사회적 압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에서 알게 된 것은, 변화는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작은 실천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찾을 용기입니다.

"내일부터 다이어트한다"는 더 이상 허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점심을 건너뛰는 작은 변화가 제 삶에 가져온 긍정적인 영향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내일이 아닌 오늘, 거창한 계획이 아닌 작은 실천으로 시작하는 것. 그것이 직장인 3대 허언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 그런데 내일은 팀 회식이 있네요. (이미 캘박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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