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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이직 3년째

三을 기억하세요.

by 바그다드Cafe

6월입니다.


매해 6월이 되면 비슷한 감정이 찾아옵니다. 벌써 올해의 절반이 지나갔다는 후회, 뭔가 특별한 성취 없이 시간만 흘러버렸다는 아쉬움, 그리고 지난달에 세웠던 계획 중 얼마나 실천했는지를 되돌아보며 드는 씁쓸한 자기반성의 감정들입니다.


2025년 6월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올해 6월은 저에게는 조금 특별합니다. 단순히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몰아치는 감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중소기업으로 이직한 지 정확히 3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2022년 6월, 30대 후반의 나이로 중소기업으로 이직했습니다. 대기업에서 12년간 일하다가 어떤 이유에 의해 내린 선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대기업 커리어가 찬란했던 것도 아닙니다. 승승장구했다고 말할 수 없고, 화려한 성과를 내세울 것도 없고, 때로는 버텨내지 못했다는 자책감까지 안고 떠나온 자리였습니다.


이직 후 3년.

지금 저는 한 중소기업의 영업, 전략, 구매, 투자, 해외사업, 인사, 총무, 물류, 대외협력까지 정말 말 그대로 ‘이것저것 다 하는’ 40대 팀장이 되었습니다. 대기업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브랜드의 뒤에 숨어 있던 사람이 이제는 사업의 최전선에서, 때로는 고객과 싸우고 때로는 공급업체를 달래며, 한 걸음 한 걸음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이 3년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직 초기에, 저는 이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내가 여기서 버틸 수 있을까?”

“여기서 일하는 게 과연 내 경력에 플러스가 될까?”

“혹시 큰 실수를 한 건 아닐까?”


특히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일하는 방식부터 사람이 움직이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다릅니다. 대기업에서야 보고 체계, 시스템, 인프라, 심지어 부서별 경계가 명확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한 사람이 세 부서 몫을 해야 하고, 때로는 팀장이 인사 문제, 급여 문제까지 손수 챙겨야 합니다. 정신없이 뛰다 보면 내년 계획은커녕 이번 주 계획도 눈앞이 깜깜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왜냐고요?

결국 버티다 보면 보이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직을 고민하는 후배나 동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중소기업으로 이직한다면 숫자 3을 기억하라.”


첫 번째 3: 3개월 안에 결정하라


이직한 중소기업에서의 첫 3개월은 신혼여행과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새롭고, 눈에 보이는 게 전부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3개월이면 슬슬 그 회사의 진짜 얼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리더십은 어떤지, 재무 상태는 괜찮은지, 회사 문화는 존중과 협업의 분위기인지, 아니면 각자도생인지.


여기서 중요한 건 ‘감’을 무시하지 않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이건 아니다” 싶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접어야 합니다. 여기서 더 억지로 버티면, 그만큼 커리어에 상처가 생기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무너집니다.


저 역시 처음 3개월 동안은 눈을 부릅뜨고, 이 회사가 정말 내 인생의 다음 챕터로서 의미 있는지 매일같이 고민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3개월은 정말 치열한 자기 검증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3: 버티기로 결정했다면 최소 3년은 다녀라


‘라면집 개도 3년이면 불닭볶음면을 끓인다’ 옛 현인들의 말씀처럼, 최소 3년은 버텨야 실력이 쌓입니다. 단순히 연차만 채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중소기업의 작은 환경 안에서

진짜 일꾼이 되려면, 업계의 맥을 읽으려면, 그리고 다음 기회를 도모하려면, 적어도 3년은 그 세계 안에서 몸으로 부딪혀야 합니다.


대기업에서 배우는 건 ‘시스템’입니다. 반면 중소기업에서 배우는 건 ‘현장’입니다. 실제 사람, 실제 돈, 실제 리스크, 실제 프로젝트. 이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1~2년으로는 부족합니다. 3년쯤 되어야 겨우 업계의 얼굴이 보이고, 내 이름을 걸고 일을 해낼 수 있는 역량이 생깁니다.


저도 처음엔 이런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저 힘들고, 바쁘고, 오늘을 겨우 넘기는 데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주변에서 “팀장님, 이건 어떻게 하면 좋아요?” 하고 물어오고, 업체에서 “팀장님이니까 얘기할게요”라고 말해올 때 비로소 3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제 저는 대기업 12년, 중소기업 3년을 지나 앞으로의 커리어를 다시 그려보고 있습니다. 숫자만 보면 전자가 훨씬 길지만, 밀도나 농도로 보면 이 3년이 훨씬 더 뜨겁고, 맵고, 치열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떤 ‘3년’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긴장됩니다.


혹시 지금 중소기업 이직을 고민 중이라면, 숫자 3을 꼭 기억해 주세요.


3개월 안에 빠르게 감을 잡고, 버티기로 마음먹었다면 3년을 묵묵히 채워 보세요.


그 3년은 커리어의 마이너스가 아니라, 분명히 당신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자산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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