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주문
요즘 다음 커리어 준비를 위해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글을 쓸 수 있게 영감을 준 직장 상사 P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회사에서 직장 상사가 하는 말 중 은근히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바로 “토 달지 마.”
말끝마다 그 주문을 외우는 직장 상사가 있습니다. “토 달지 마”는 그의 방패이자 무기이지요. 회의에서 누군가 의견을 내면, 그는 곧바로 말합니다.
“토 달지 마. 그냥 하라는 대로 해.”
업무 방향에 의문을 제기하면, 또 같은 말이 돌아옵니다.
“토 달지 마. 이미 다 정해졌어.”
그에게 토를 단다는 건 불필요한 잡음, 귀찮은 저항일 뿐입니다. 문제는, 그 순간 회의실의 공기와 함께 사람들의 생각도 멈춰 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토 달지 마”라는 말에는 사실 두 가지 심리가 숨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권위가 흔들릴까 두려운 마음입니다. 부하 직원의 질문이나 의견을 허용하는 순간,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드러내야 하는 공포입니다.
둘째, 시간을 아끼고 싶다는 조급함입니다. 빨리 결론을 내고 자리를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대화와 토론을 ‘사치’로 여기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심리는 결국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사고의 빈곤을 낳습니다. 안타깝게도 의견이 묻히고, 창의적인 대안은 싹부터 잘려나갑니다.
AI 시대에,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토 달지 마”라는 말은 더욱 부적합합니다. 사람이 기계와 다른 점은 ‘토를 다는 능력’—즉, 질문하고, 반론하고, 다른 길을 제시하는 힘에 있습니다.
“토 달지 마”는 결국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나는 새로운 생각이 두렵다.”
“나는 내 답을 확인받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요즘 같은 시대에 “토 달지 마”를 자주 외친다는 건, 시대에 역행하는 일입니다. 오히려 회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건 “토를 달아줘”라는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압니다. 상사에게 대놓고 의견을 내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요. “토 달면 괜히 찍히지 않을까?” 하는 불안, “차라리 조용히 넘어가는 게 낫지” 하는 체념이 매일 교차합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말해야 합니다. 작은 토를 다는 사람이 있어야 회사는 살아 움직입니다.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 회의실은 고요한 무덤입니다.
AI가 대신 답을 내주는 시대에, 사람에게 남은 가치는 질문과 반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 달지 마”를 외치면, 시대를 역행하는 고전적인 매력이 생깁니다. 단, 회사가 함께 역행한다는 점은 덤입니다.
언젠가 그 상사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싫어하는 그 ‘토’가, 사실은 오염된 회사를 살리는 흙(土) 일지도 모른다고(요).“
‘토 달지 마’ 대신, ‘한 번 더 들어보자’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지는 직장을 꿈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