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여정 Dec 15. 2021

고이는 시간에서 흐르는 시간이 되었다.


남편의 육아휴직 전 일상은 이랬다.


아침에 밥을 챙기고 다 먹으면 치운다. 설겆이를 한다. 고무장갑을 벗음과 동시에 청소를 하고 빨래를 정리하며 입으로는 아이들 등교를 챙긴다. 시간이 덩어리가 되어 흐른다.

갑자기 둘째가 말한다.

"나 배아퍼"

얼음!

땡! 순간 아이의 아픔만큼 내 일상에 파지직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응가 해볼까? 배에 따뜻한걸 대어볼까?"

아직 15분의 시간이 있다. 자! 의사로 변신!

"엄마손은 약손~~" 배를 만져주며 원적외선을 대어준다.

"아직 아픈거 같아~~~~~" 하는 아이의 칭얼거림에 남편이 천사같은 말투로 말한다.

"아궁~ 우리 아들, 오늘 하루 쉴까? 아빠가 올때까지 아프면 약 사올께"

"뭐라고?? 난 어떻게 하라고!!! 내 일을 뭘로 아는거야. 왜 아빠는 아이가 아파도 출근하고 엄마는 쉬어야 되는거야? 내가 일할께 아빠가 쉬어!!"

나야말로 주저앉아 울고 싶고 배가 아플지경이다.

이 외침은 나의 짜증 정도로만 들렸나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는 출근을 한다. 나의 재택근무 범위와 업무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수업이 있거나 고객 약속이 있으면 아이를 안고 가거나 취소해야한다. 그 민망함과 미안함도 고스란히 나의 몫이다.

당연히, 아이가 아프면 걱정된다. 내가 대신 못 아파주지 못해 마음이 아플지경이다. 그런데 그 마음만큼, 마음가득 화가 밀려온다

오전시간은 내 휴대폰에 불이 나는 시간이다. 수차례의 전화와 메세지가 오고간다. 전날의 퇴근 후부터 아침까지 쌓인 일들을 해결하고 당일의 일정을 소화하게 교통정리를 해야한다. 전날의 잔업이나 실수의 뒷처리가 아니다. 하루 업무가 시작되면 나에게 떨어지는 오더이다. 화장실 볼일도 두번갈꺼 총알처럼 뛰어 한번에 간다.


누나가 학교에 가고 혼자 남은 시간, 둘째가 언제 그랬냐듯 나아졌다. 일을 하기 위해 아이에게 TV를 틀어준다. 그런데 TV도 혼자보면 재미없나보다. 한두시간이 최대다. 놀아달라, 친구보고싶다, 선생님보고싶다, 누나보고싶다 칭얼거린다. 아~~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차가 없어 데려다주지도 못하고 택시를 타도 왔다갔다 삼십분,.. 오늘따라 전화는 더 많이 온다. 전화를 끊을 때마다 '죄송합니다' 가 입에 붙어버렸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니 집이 난리다. 나에게 점심시간은 따로 없다. 20년가까이 점심시간이라고 시간을 정해놓은 적은 없다. 오늘도 밥먹기는 틀렸다. '그래, 언제 점심 꼬박꼬박 챙겨먹었다고, 좀있다 배고플때 - 먹어치워야 할거 - 먹지뭐' 하며 현관에서 내 방까지 가는 길이라도 주섬주섬 치우며 돌아온다. 갑자기 맥이 풀린다.

점심때 전화하시는 분들~ 제발 "점심 식사하셨어요?" 라고 물어보지 마세요. 먹으면서 전화받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굶는다구요~


일에 집중하여 밀린 일들을 헤치운다. 드디어 끝났다. 이렇게 3시간이면 정리될 일이었는데, 아이가 집에 있으면 하루종일 하게 된다. 머리속이 엉킨 실뭉치가 된것 같다.

오전만이라도 온전히 일에 집중하게 해주면 원래의 위치에서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된다. 그 루틴이 깨졌을 때, 그날 하루는 '고이는 시간' 이 된다. 3시간 욕심이 엄마의 매정함이 되어 '일 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만든다. 물론 내 일이 3시간만에 끝나는 일은 아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급하고 중요한것만 걸러내어 해결하는 시간이 세 시간이다. 나머지는 아이들이 잠든시간 해야한다.


알람이 울린다. 오후 4시 10분, 아이들이 올 시간이다. 몇시간 못 봤다고 보고싶다. 아이들을 데릴러 나간다. 팔벌려 안아준다. 동시에, 전화벨이 울린다. "애들아, 집에 얼른 가자 엄마 일해야되~"

저녁에 퇴근하고 온 남편은 아이들을 팔벌려 안아준다. 내가 약 사다 달라고 전화 안하니 괜찮은걸로 알고 하루종일 전화 한통 없었다.

'그래, 밖에 나가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하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말해준다.

하루를 묵혔더니 마음가득 찼던 불같은 화가 안쓰러움과 고마움으로 사그라졌다. 그렇게 내 저녁시간은 (저녁차리기, 설겆이, 다음날 아침 준비해놓기, 씻기, 집정리, 아이 책읽어주기, 큰아이와 대화하기, 양치) 고이지 않고 흘러간다.



남편의 육아휴직 후.


그동안 하루 하루 묵혔던 마음이 곰 삭았었다는 걸 알았다. 퇴근 후 바로 집에 오는 고마움만큼 '나도 가정에 충실했고 수다떨며 놀아본적 없다' 는 당당함과 억울함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어떻게 알았냐면.

남편이 정해놓은 하루 일정이 - 등산, 교육, 컴퓨터 작업, 집안일 -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아프거나 집안에 일이 있으면 차질이 생긴다. 그러면 한숨을 푹푹 쉰다. 그때마다 "나도 그랬어, 어쩔수 없어, 버티는거야, 그동안 편하게 살았지?" 라는 말을 무한 반복한다. 멈출 수 없다. 말 할때마다 속이 조금씩 시원해진다. 행주질이라도 해줄까 싶지만 관둔다. 못됐다 싶지만 '당해봐~' 하는 마음보다. 아직도 쪼금 남았다. 이렇게 젓갈이 되어 있을줄이야.


남편이 하루 세끼를 다 차린다 해도 아침이면 내가 빨래를 정리하고 집을 치우고 아이들 코로나 건강체크라도 해야 남편의 아침이 흘러가는 시간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휴직은 집안일하고 아이들 키우고 '잠을 잔' 고인 시간이 된다.


흘러가는 시간이 우리 부부에게 얼마나 큰 부가가치를 줬는지는 후에 말씀드리겠다.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 부부, 아이을 혼자 키우는 엄마 또는 아빠는 넘사벽이다. 대단하고 존경받아 마땅하다. 재택근무로 전쟁같은 하루를 치우는 치루는 직장맘으로써 박수, 큰절, 엄지척 해드린다.

작가의 이전글 아내에겐 남편의 육아휴직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