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영원처럼 살아낸다는 것

by 정용우

우리는 매일 아침, 어제와 비슷해 보이지만 결코 같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하루를 맞는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이 다시 우리를 포근히 감싸 안기기까지, 하루라는 짧지만 깊은 여정이 펼쳐진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여정의 의미를 잊는다. 눈앞의 일에 매달리고, 서두르고, 판단하고, 때로는 화내며, 건네오는 작은 기적들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린다.


정채봉 시인은 “오늘 내가 나를 슬프게 한 일들”이라는 시에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 소중한 순간들을 흘려보내는지를 일깨워 준다. 새소리도 듣지 못하고, 밤하늘의 별도 세어 보지 못하며, 미운 사람을 떠올리느라 내 마음을 괴롭게 했던 일들,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손편지를 받고도 무심한 메시지로 대답했던 일들. 우리는 이런 순간들을 마음속 어딘가에 스쳐 지나가듯 묻어 두었다가, 뒤늦은 후회로 꺼내 들곤 한다.


돌아보면 그 순간들은 아주 작았다. 작은 미소 하나, 작은 인사 하나, 작은 배려 하나. 하지만 그 작은 것들을 놓친 하루는 생각보다 훨씬 무겁고 길게 남는다. ‘왜 그때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을까’ 하고 마음이 저려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는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구상 시인은 ‘오늘’이라는 시에서 오늘의 가치를 이렇게 밝힌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오늘은 어제에서 흘러와 내일로 이어지는 단순한 시간의 조각이 아니라, 영원과 직접 연결된 신비로운 순간이다. 우리는 죽음 이후에만 영원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영원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도 달라져야 한다. 하루를 영원처럼 대하며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을 실천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바람이 건네는 인사에 잠시 귀를 기울이고, 저녁노을의 붉은빛 앞에 한 걸음 멈춰 설 것. 휘영청 밝은 달빛이 나를 비출 때 휴대폰 대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볼 것. 지나는 길모퉁이의 들꽃 이름을 궁금해하고,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 누군가를 기다려 주며, 아이의 웃음에 함께 웃어주고, 배달원의 수고에 고맙다는 한마디를 더할 것. 여기에 더해 꽃밭을 스쳐 지나치지 말고 잠시 향기를 들여 마시며, 이어폰 너머로 들리지 않았던 낙엽 밟는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에도 귀를 열어 볼 것.


이 모든 것은 거창한 노력도 특별한 의지도 필요하지 않다. 단지 마음을 조금 더 열고, 조금 더 느리게 걸으며, 눈앞의 세계와 사람들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러한 작은 움직임이 쌓이면 하루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결을 띤다.


조금 더 맑은 마음으로, 조금 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만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느끼며 살 것인가’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오늘은 우리에게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우리가 매일 맞이하는 하루는 거저 주어진 시간이 아니다. 어제와 내일 사이에 잠시 놓인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나의 삶이 가장 생생하게 흐르는 바로 그 자리, 그 순간이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는 이렇게 살아 보면 어떨까.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내가 받은 감사의 마음에 감사로 답하며, 눈앞의 풍경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말하고, 기쁨을 느낄 때는 체면보다 마음을 우선하는 것.


이 작은 실천은 우리의 하루를 바꾸고, 그 하루가 모여 우리의 삶을 바꾼다. 결국 우리 삶은 우리가 어떻게 오늘을 살았는지의 총합이 될 것이다.


오늘 나를 슬프게 하는 일을 줄이고, 오늘을 영원처럼 깊게 살아내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오늘 하루를 살아야 할 모습일지 모른다.


이제 나는 노년 세대에 접어들었다. 내 삶의 여정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이러한 작은 실천들을 더욱 간절하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 나는 자신에게 조용히, 그리고 간절하게 묻는다. “오늘을 어떻게 살겠느냐”고. 그 질문에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대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영화 <버드맨 오브 알카트라즈>를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