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로 변동불거(變動不居)가 뽑혔다.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한다는 뜻이다. 12·3 비상계엄, 대통령 탄핵, 정권 교체 등 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나온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이보다 적확한 말도 없어 보인다.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었던 격동의 시간 속에서 우리 사회는 늘 불안정한 흔들림과 거센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연 변화가 유독 심하지 않았던 해가 있었던가. 어느 시대인들 안정과 평온만으로 설명될 수 있었을까. 오늘의 혼란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변화 그 자체보다, 그것을 감지하고 전달하는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발달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세계 반대편의 사건까지 실시간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과거라면 몇 달이 지나서야 알았을 변화가 이제는 몇 초 만에 우리 삶의 정서와 판단을 흔든다. 변화는 늘 존재했지만, 우리는 그 변화의 한복판에 과거보다 더욱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을 뿐이다.
사실 변화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본질이다.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변하고, 사회는 잠시도 정지하지 않으며, 개인의 삶 또한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화를 늘 불편해한다. 불확실성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익숙했던 질서가 무너질 때 깊은 불안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심리적 회복 탄력성과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통찰적 안목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우리는 늘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그 파도를 맞닥뜨린다.
그렇다면 이 격변의 시대에 우리는 그저 변화를 관망하기만 해야 하는가. 수동적인 관조는 우리 삶을 한 발자국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한다. 세상이 급격히 변하는 와중에도 우리는 각자의 고유한 삶을 살아내야 하고, 그 삶을 가능한 한 단단하고 행복하게 가꾸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며, 더 나은 방향으로 공동체를 움직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게 애써도 세상은 좀처럼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내가 기대했던 변화가 온전히 호의적이고 만족스럽게 다가왔다고 확신할 수 있는 순간은 지극히 드물다. 노력은 했지만 결과는 늘 불확실하고, 신념은 흔들리며, 때로는 깊은 허탈함만 남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 즉 변화의 주도권을 외부에서만 찾으려 했던 시도가 한계에 부딪힐 때, 우리는 자연스레 시선을 바깥의 소음에서 내면의 질서로 돌리게 된다.
레프 톨스토이는 “사람들은 세상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자신이 변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문장은 우리 삶이 왜 쉽게 불행해지는지를 정확히 짚어낸다. 세상은 언제나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속해 있다. 반면 나 자신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내가 책임지고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내가 변하면 삶을 바라보는 해석의 틀이 달라지고, 해석이 달라지면 같은 현실도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느낄수록, 이 진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자신이 좋아질 때 비로소 삶도 좋아진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하루의 리듬을 조금 다르게 가져보는 일, 생각의 방향을 수정하는 일, 반복되는 습관 하나를 바꾸는 일에서 진정한 변화는 시작된다. 우리가 새벽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 변화할 삶을 상상하고, 그 하루를 조용한 수련의 시간으로 성실히 채워 나간다면, 각자는 분명히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변한 한 사람의 존재가 곧 공동체의 변화이며, 국가를 혁신하는 동력이 된다.
자기 자신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감동시키지 못하고, 누구도 올바르게 이끌지 못한다. 이는 리더십의 문제이기 이전에 삶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의 문제다. 변화의 중심은 언제나 외부가 아닌 ‘나’에서 시작된다. 바깥의 소음에만 반응하며 흔들리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의 거센 흐름 속에서도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을 세워가는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지난 삶의 궤적을 조용히 돌아본다. 한 기도문의 간구처럼,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려는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평온함이 내 안에 얼마나 깊이 깃들어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세상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요동칠 것이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변화의 중심에서 내가 어떤 무게중심을 잡고 서 있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끝)